서울 성북구 돈암동에 사는 이모(35)씨는 지난 15일 오전 2시 참다 참다 성북구청 종합상황실로 전화를 걸었다. 공사장 드릴 소리와 진동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던 것이다. 낮엔 보도블록 공사 때문에 단지 앞 2차선 도로가 꽉 막히는 바람에 외출도 포기한 상태였다. 이씨는 이날 오전 3시 30분 성북구청에서 “서울시설관리공단의 내부순환로 방음벽 설치 공사 때문에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야간 공사를 하는 것이 원인이었다. 이달 30일까지 한다는데 공사 자제를 요청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이씨는 “도로 양옆을 따라 아파트가 늘어서 있는데 밤샘 공사를 하면 인근 주민들 수면권을 침해하는 것 아니냐”며 “이튿날엔 광화문 회사로 출근하는데 세종대로 공사 때문에 버스 노선이 갑자기 바뀌어 두 정거장 전에 내려 10분 더 걸어 출근해야 했다. 일상이 공사에 파묻혔다”고 분통 터뜨렸다.
연말이 가까워지며 서울 곳곳의 크고 작은 공사로 불편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실제로 공사가 많아진 걸까, 기분상 많아졌다고 느끼는 걸까. ‘아무튼, 주말’이 살펴봤다. SM C&C 플랫폼 ‘틸리언 프로(Tillion Pro)’에 의뢰해 서울·수도권에 거주하는 20~60대 남녀 1527명에게 연말 공사에 대한 생각도 물었다.
◇12월 공사 금지… 11월에 몰려
“연말에 서울이 이렇게 난장판인 건 청계천 복원 공사 이후 처음 같다. 공사 안 하는 곳이 없다. 광화문에서 서울역 사이가 제일 밀리고, 강변북로·올림픽대로도 얼마 전까지 일부 구간에서 한 차선씩 막고 공사하는 바람에 체증이 심했다. 코로나 때문에 차도 많이 가지고 나오는 데다 공사 여파까지 겹쳐 심각하게 막힌다.” 20년 경력 택시 운전사 이모(50대)씨가 하소연했다.
설문 결과 “연말이 되면서 공사가 많아진 것 같다”고 답한 응답자가 74.2%였다. “예년보다 올해 공사가 많아졌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엔 ‘비슷하다’가 59.3%로 가장 많았고, ‘늘었다’가 21.7%, ‘줄었다’가 19.0%였다. ‘아무튼, 주말’이 각종 통계를 취합한 결과, 사람들의 체감은 맞았다. 전체 공사 건수는 예년과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연말에 몰린 공사 수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서울시 도로관리과에 요청해 지난 3년간 월별 ‘도로 굴착 공사 건수’를 집계해 봤다. ‘도로 굴착 공사 건수’는 공공기관과 민간에서 발주한 전기·가스·통신 등 도로상 각종 공사를 포함하는 데이터다. 올 들어 공사 수(11월 25일 기준)는 2만7750건. 12월 한 달이 남은 것을 감안하면 전체 수는 2018년 3만311건, 2019년 3만2164건과 비슷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에서 발주하는 서울 시내 대형 공사도 11월 현재 85건으로 2019년(84건), 2018년(85건)과 비슷했다.
총량은 비슷한데 왜 사람들은 연말에 공사가 많아졌다고 느낄까. 전체 건수는 비슷하지만, 11월 공사 쏠림이 있었다. 서울시는 연말 예산 털기용 공사를 줄이자는 취지에서 지난 2012년 ‘보도공사 클로징(Closing) 11’을 시작했다. 11월 말까지만 보도 공사를 하겠다는 방침이다. 그 영향으로 최근 3년간 월별 ‘도로 굴착 공사 건수’를 보면, 10~11월 3000건대를 기록하다가 12월~2월 동절기엔 공사 건수가 900~1000건으로 뚝 떨어지는 패턴이 나타났다. 문제는 12월에 공사를 못 하니 11월에 몰아서 하는 분위기가 생긴 것. 서울 시내 모 구청 관계자는 “단순 보수 공사는 연중에 끝내지만, 설계 용역이 필요하거나 보상 관계가 얽힌 공사는 동절기를 앞둔 11월에 급하게 몰아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또 다른 구청 관계자도 “예전 12월이 지금의 11월로 한 달 앞당겨졌다고 보면 된다. 과거만큼 심하지는 않지만 11월에 도로 유지·보수로 예산을 터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조삼모사(朝三暮四)인 셈. 11월 도로 굴착 건수는 25일 현재 2944건이다.
그러나 서울시 보행정책과 관계자는 “과거 예산 털기식 보도블록 뒤집기와는 다른 차원”이라고 말했다. 그는 “10월 말 기준 서울시 예산 중 보도 관련 예산 집행률은 30% 정도다. 보통 전년도 11~12월 시에서 예산을 편성하면, 자치구에서 3월까지 시비가 투입되는 도로에 대한 정비 계획을 결정해 시에 제출한다. 최근 민원을 방지하기 위해 주민 설명회 등을 오래 하다 보니 시간이 두 달 정도 소요되고, 여기에 공개 입찰과 사업자 선정까지 거치고 나면 6월이다. 여름은 태풍과 장마 때문에 공사를 못 해 대부분 공사가 9~11월에 집중된다”고 했다. 그는 “올해는 특히 여름철 기록적 폭우로 연기된 공사들이 연말에 몰려 11월에 공사가 더 많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했다.
◇동맥경화 걸린 서울역~광화문
서울 이촌동에서 광화문 회사까지 자가용으로 출근하는 박모(53)씨는 “20년 넘게 이 길로 다녔지만 요즘처럼 공사가 많은 적은 없었다. 서울역부터 시작해서 남대문, 세종대로까지 공사 펜스가 없는 곳이 없다”고 했다. 박씨는 “중앙선, 직진 차선, 좌회전 차선이 수시로 바뀌어 차선을 잘못 들어가는 바람에 사고 날 뻔한 적이 있다. 나처럼 이 지역이 익숙한 사람도 헷갈리는데 초행자는 더 아찔할 것”이라고 했다.
광화문부터 서울역까지 서울의 심장부가 공사로 동맥경화에 걸릴 지경이다. 서울역 앞은 지난 7월부터 시작된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A노선 공사로 차선과 버스 승강장이 수시로 바뀌고 있다. 이어지는 서울역 교차로~숭례문~시청 앞~세종대로 사거리 1.5㎞ 구간은 지난 7월 시작한 ‘세종대로 사람숲길’(12월 완료 예정) 공사로 굴착기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기존 도로에서 차로 2~3개를 줄여 보행 공간으로 바꾸는 공사다. 여기에 지난 16일엔 ‘광화문광장’ 재정비 사업까지 시작됐다. 청계천 일대엔 자전거 도로 공사까지 진행 중이다.
서울시 건설 정보 관리 시스템 ‘건설알림이’(공공 발주한 서울 시내 공사 규모 2000만원 이상 건설 공사 집계)에 따르면 25일 현재 서울 시내에서 진행 중인 공공 발주 공사는 3079건. 구별로는 세종대로와 광화문광장이 속한 중구(145건), 종로구(140건)가 각각 4, 6위였다. 가장 많은 곳은 성동구(395건), 가장 적은 곳은 광진구(68건)였다. 도시기반시설본부 관계자는 “전체 공사 수가 늘진 않았지만 지역별 편차가 있다. 특히 서울역~광화문 일대에 대형 프로젝트가 집중돼 있어 이 지역이 생활권인 사람들은 공사가 많아졌다고 느낄 것”이라고 했다.
세종대로 공사, 광화문 광장 재조성 사업은 서울시가 ‘클로징 11’을 스스로 어기는 모양새다. 서울시 관계자는 “세종대로 공사는 대규모라 동절기에 중단하면 주민 불편이 더 커지는 점을 고려해 12월 말까지 최대한 빠르게 공사를 마무리하는 게 낫다고 판단해 예외로 뒀다”고 했다. 광화문 광장은 현재 편도인 광장 동쪽 차도를 양방향으로 바꾸는 공사가 한 차로 통제한 상태에서 지난 16일 시작됐다. 이 공사는 내년 2월 말까지 계속된다. 서울시는 “세종대로 사람숲길 사업과 연계할 필요성에 따라 동쪽 차도 공사분만 동절기에 우선 시행해 최대한 클로징 11에 위배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클로징 11’과 관련, 서울시 도로굴착·복구업무 처리규칙 제11조 5항엔 ‘우기와 동절기에는 굴착 공사 중지를 원칙으로 하되, 천재지변이나 돌발적인 사고로 인한 긴급 굴착 공사와 주민 생활에 직결되는 소규모 굴착 공사는 예외로 둔다’는 규정이 있다. 일부에선 “세종대로 공사, 광화문 광장 사업은 천재지변이나 돌발 사고, 주민 생활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데 서울시가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공사와 불편한 공생
불편은 결국 시민 몫. 틸리언 설문에서 응답자 절반이 넘는 53.5%가 “최근 도로나 보도 공사로 불편을 겪었다”고 말했다. ‘어떤 종류의 불편을 겪었느냐’는 물음(복수 응답)엔 통행 위험(58.8%)이 가장 많았고, 그다음이 교통 체증(48.6%), 먼지(34.8%), 소음(33.8%) 순이었다.
77.1%는 ‘불필요한 공사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유(복수 응답)는 예산 털기용 공사로 보여서(63.4%)가 가장 많았다. 그다음이 공사 후 개선을 못 느껴서(36.6%), 전시성 행정으로 보여서(29.4%), 주민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아서(20.6%) 순으로 나왔다. ‘공사를 위한 공사’가 많아 보인다는 얘기다.
최근 ‘서울해법’을 펴낸 김성홍 서울시립대 건축학과 교수는 “런던은 1801년 인구 100만 도시에서 129년 만인 1930년에 800만, 뉴욕은 1873년 100만에서 127년 만인 2000년에 800만이 됐다. 도쿄는 1883년 100만에서 76년 만인 1959년 800만명이 됐다. 반면 서울은 1942년 100만에서 46년 만인 1988년 800만명도 아니고 1000만명을 돌파했다. 초고속 성장의 후유증이 지금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다. “1960년대부터 압축 성장으로 급격한 도시화를 겪으며 주먹구구로 만든 주거·도로 인프라가 40~50년 되니 여기저기 보수가 필요해졌다”는 얘기다. 그는 “끊이지 않는 도심 공사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겪는 성장통”이라고 했다.
서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도시에서 공사는 수술이다. 서울은 이제 완전히 몸을 개조하는 대수술이 필요한 도시는 아니지만 염증 제거 수준의 작은 수술은 여전히 필요한 도시”라며 “보행자 중심 도로 만들기 등은 장기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 어느 정도 불편함은 감수해야 하지만, 대규모 공사를 한꺼번에 몰아 하기는 피해야 한다”고 했다.
◇광화문 광장 첫 삽 뜨자, 평균 차량 속도 절반으로 뚝
시속 6.5km. ‘아무튼, 주말’이 지난 25일 오후 6시 서울시 교통정보 시스템 ‘TOPIS’에 들어가 확인한 ‘세종대로 사거리~광화문’ 구간 차량 통행 속도다. 서울시가 지난 16일 광화문 일대 재정비 공사에 들어가면서 광장 동쪽 6차선 도로 중 한 차선 통행을 막자 이곳은 출퇴근 시간마다 극심한 정체가 빚어지고 있다.
TOPIS에 따르면 공사가 시작되기 전인 지난 10월 평일 오후 6~7시 이 구간의 평균 차량 통행 시속은 약 13.75km였다. 한 차선을 막았을 뿐인데 차량 속도가 절반으로 떨어진 것이다.
서울시는 광화문 광장 동쪽 6차선 도로를 한 차선 넓히면서 양방향 통행으로 바꾸는 공사를 내년 2월 말까지 진행하고, 이후 서쪽 6차선 도로를 내년 10월까지 광장에 편입한다는 계획이다. 공사에는 예산 791억원이 투입된다.
공사 때문에 생긴 일시적 교통 체증일까. 아닐 가능성이 높다. 공사가 끝나면 기존 왕복 12차선이 7차선(주행 차로 기준)으로 절반가량 줄어든다. 서울역~세종대로 사거리도 12월 말 ‘세종대로 사람숲길’ 공사가 끝나면 기존 9~12차로에서 7~9차로로 줄어들게 돼 연쇄적인 영향이 예상된다. ‘차선이 줄어들면 교통 체증이 더욱 심각해지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서울시 관계자는 “신호 제어, 우회로, 주차 정책 등으로 교통 수요를 적절히 분산할 계획”이라며 “차로가 줄어드는 만큼 차량 수요도 조절해 공사 이전과 비슷한 통행 속도를 유지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 얘기는 다르다. 시가 제시한 정책만으로 교통 수요를 분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세종대로의 교통 수요를 분산할 마땅한 우회로가 없는 게 문제”라며 “구체적 대안 없이 차선을 줄이면 차량 통행 속도는 당연히 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고준호 한양대 도시대학원 교수는 “서울은 도심을 거점으로 도로가 설계된 방사형(放射形) 도시인데, 세종대로는 서울의 핵심 도로 중 하나”라며 “도심 내부로 진입하는 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외곽 도로를 확대하는 등 거시적 대안을 함께 설계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시의 사전 교통 영향 분석 결과에 따르면 ‘세종대로 사람숲길’ 공사로 세종대로 통행량은 14% 줄고, 가로 구간 평균 통행 속도는 종전 최고 시속 27.8㎞에서 19.3㎞로 30%가량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는 광화문 광장 재정비 사업과 관련해서도 사전 교통 영향 분석을 했다고 밝혔다. 관련 자료를 요청했지만, 시 관계자는 “어떤 변수를 넣느냐에 따라 예측 결과가 달라져 예상 통행 속도를 선뜻 공개하기 어렵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