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개화역 앞 공영차고지에 공항리무진 소속 공항버스 100여개가 주차돼 있다. 한 공항버스 기사는 "코로나 이전에는 새벽 1시는 돼야 볼 수 있던 풍경"이라며 "가끔씩 정비사가 시동을 걸어준다"고 말했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16일 오후 서울 강서구 개화역 앞 공영차고지에는 공항버스들이 가득했다. 6000번, 6030번, 6021번···. 공항리무진 소속 공항버스 100여대가 서 있었다.

공항리무진은 22개 노선에서 버스 254대를 운행한다. 서울 공항버스 업체 4곳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진 지난 2월부터 조금씩 감차(減車)를 시작해 4월 16일에 사실상 올스톱됐다. 인천공항공사에서 운송 원가를 지원받는 심야 노선 하나(N6002번)를 빼곤 모두 시동이 꺼졌다. 봄에 시작된 동면(겨울잠)이 여름, 가을을 지나 겨울까지 이어진 셈이다.

◇코로나는 건강 아닌 생계 문제

17년차 기사 민용철(49)씨는 약 9개월 동안 일을 하지 못했다. 마지막 근무는 지난 3월 9일. 그날 아침 6시 20분 운행을 시작해 밤 9시에 엔진을 껐다. 공항버스 6012번을 운전하는 그는 구파발 차고지에 버스를 세울 때까지 휴직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

“한두 달 쉬면 회복되겠거니 했습니다. 과거에 메르스, 사스 등을 경험했으니까요. 4월부터 유급 휴직에 들어갔습니다. 월급은 평소의 70%를 받는데 100만원쯤 줄어 200만원이 안 돼요.”

어떤 이들에게 코로나는 건강이 아닌 생계 문제다. 공항버스는 항공·여행업과 직결돼 타격이 더 크다. 항공업은 화물, 여행업은 국내 여행으로 매출이 일어나지만 공항버스는 국제선 여객기가 안 뜨면 길이 없다. 출국자는 거의 없고 입국자도 자가 격리 의무화로 공항버스를 탈 수 없다.

공항리무진은 연간 800만~900만명을 실어 나르며 860억원 매출을 올렸지만 현재는 한 달 수입이 3600만원으로 오그라들었다. 기사 500여명은 휴직 중이다. 박진우 공항리무진 총무부장은 “그동안은 정부에서 고용 유지 지원금(최장 240일)을 받아 유급 휴직으로 버텼는데, 11월 26일로 종료돼 무급 휴직(평균 임금 50%)에 들어간다”며 “숨만 쉬고 있는 형편이다. 끝이 보이지 않아 더 괴롭다”고 했다.

정류장에는 ‘공항버스를 운행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물론 모든 공항버스가 멈춘 건 아니다. 경기도 고양에서 인천공항을 오가는 3300번은 운행 중단이 하루도 없었다. 명성운수 관계자는 “감차를 절반 이상 했고 승객은 80%쯤 줄었다”며 “적자 노선이지만 그래도 공항 상주 직원분들이 있으니 최소한으로 운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공항리무진 노조 사무실은 휴직 중인 기사들이 모여 시끌시끌했다. 평소라면 인천국제공항을 오가는 승객을 부지런히 실어 나를 시간이었다. 걱정과 불평, 푸념이 쏟아졌다. 전동호 노조위원장은 “50대 기사들이 대부분인데 대출이 있거나 자녀 학자금 지출이 많은 경우 월급이 삭감돼 생계 곤란을 호소한다”며 “대낮 차고지에서 공항버스들이 잠자는 모습을 보면 속이 새까맣게 탄다”고 했다.

코로나 사태가 10개월째 이어지며 사실상 강제 휴직 상태이던 20대 항공사 승무원이 최근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참좋은여행은 지난 23일 내년에 출발하는 동남아·유럽·미주 노선 패키지 여행상품 판매를 재개했다. '트래블 버블' 기대감이 높은 홍콩·대만·싱가포르·태국·베트남·일본은 예약 가능 출발일이 3월 1일로 가장 빠르다. /참좋은여행 홈페이지 캡처

◇그래도 희망은 있다

인천공항에 있는 서점 K북스는 정부 지원금과 임차료 감면으로 버티고 있다. 책 판매는 예년 대비 95% 이상이 사라졌다. 윤병수 K북스 인천공항점장은 “인천공항에 입점한 식당과 면세점도 사정은 비슷하다”며 “앞으로 1~2년 더 버텨야 정상화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지금 정부가 ‘무착륙 해외여행'을 추진 중이잖아요. 전세기를 띄워 일본이나 중국 상공에 갔다 돌아오는 식인데, 기내식을 먹으며 국제선 비행기를 타고 싶어하는 욕망에 부응하는 겁니다. 영해를 벗어날 경우 공항 면세점 쇼핑도 가능해요.”

한국관광협회중앙회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으로 아웃바운드(내국인의 해외여행) 여행사는 8963곳으로 올 들어 503곳(5.3%)이 줄었다. 지난 6월부터 무급 휴직 중인 국내 1위 여행사 하나투어는 12월부터 내년 3월까지 무급 휴직을 4개월 더 연장했다. 현재는 직원 2300명 중 300명만 일하고 있다.

해외여행을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14일 자가 격리다. 하나투어 정기윤 이사는 “외국 갔다 오면 14일 자가 격리를 하는데 그것이 완화되지 않는다면 백신이 나와도 별 도움이 안 된다”며 “방역이 우수한 국가를 방문할 경우 격리 조치를 제외하는 ‘트래블 버블(travel bubble)’ 협약 같은 추가 지원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참좋은여행은 지난 23일부터 내년에 출발하는 동남아·유럽·미주 노선 패키지 여행 상품 판매를 재개했다. 트래블 버블 기대감이 높은 홍콩·대만·싱가포르·태국·베트남·일본은 예약 가능 출발일이 3월 1일로 가장 빠르다. 예약금은 기존 10만원에서 1만원으로 낮췄고 취소할 경우 100% 환불 조건을 걸었다.

고용 유지 지원금을 받으며 휴직 중인 사람들은 부족한 수입을 아르바이트로 메우고 싶어하지만 불가능하다. ‘일용직 근로도 하면 안 된다’는 조항 때문이다. 극소수는 몰래 대리운전 등 기록이 남지 않는 일을 한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공항리무진 기사 민용철씨는 “처음에는 휴직을 휴가다 생각하고 잘 놀았는데 길어지니까 우울증이 생기더라”며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노후 준비도 할 겸 택시운전 자격증, 화물운송 자격증, 지게차 자격증 등을 따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 사태로 긴 동면 상태에 빠진 공항버스들. 들어오고 나가는 차가 없고 활기도 잃었다. 업계 관계자는 "숨만 쉬고 있는 형편"이라고 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