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구로구 고척근린시장에 있는 ‘쌈바닭강정’ 점주 전형일(59)씨. 전씨는 약 13㎡(4평) 남짓한 가게에서 닭강정과 통닭을 판다. 20여 년간 경기 광명시와 서울 등지에서 장사해 왔는데, 2020년은 그가 최고 매출을 찍은 해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가 터지기 전만 해도 하루에 전씨 가게를 찾는 손님이 40여 명이었다. 이제는 하루 평균 70~80명이 온다. 하루 30만~40만원 벌었는데, 코로나19 이후 수입은 60만원으로 뛰었다. 전씨는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코로나 덕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구로구 고척동에 있는 고척근린시장. 77개 점포에서 상인 80여명이 이곳에서 장사를 한다.

코로나 사태로 대형마트 등이 하나둘씩 문을 닫는 와중에 비교적 선방하는 곳이 있다. 바로 라이벌, 동네 전통시장이다. 밀폐된 곳을 피하겠다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면서 어느덧 전통시장이 대형마트 손님들을 빼앗아 오는 상황이 됐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지난달 전통시장의 체감경기지수(BSI)는 73.3을 기록했다. 지난해 10월(68.7)보다도 높다. 체감경기지수란 상인들에게 현재 자신이 느끼는 경기 상황을 묻고 수치화한 것이다. 전통시장 상인들은 코로나19가 터지기 전보다 경기가 나쁘지 않다고 느낀다는 얘기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이도열 실장은 “작년보다 수치가 높다는 점은 실제로 경기가 나쁘지 않다고 느끼는 전통시장 상인들이 있다는 뜻”이라며 “특히 동네 주민과 밀접해 있는 전통시장의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고척근린시장의 경우 2018년 한 해 매출액(상인회 추산)은 122억원이었는데, 코로나가 영향을 끼친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10월까지 매출액은 132억원으로 뛰었다. 하루 평균 시장을 찾던 손님들도 4000여 명에서 5000여 명으로 늘었다. 서울 방학동에 있는 도깨비시장도 지난해 월평균 3만5000여 명이 찾고 월평균 매출액이 29억원이었는데, 올해는 월평균 4만여 명이 36억원어치 음식을 먹고 물건을 사갔다.

이처럼 전통시장이 선방하는 것은 뚫린 공간이라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고 상인들은 말한다. 코로나19가 유행한 이후 소비자들이 대형마트처럼 밀폐된 곳을 피해 물건을 직접 살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전통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겨간다는 것이다. 고척근린시장이 잘나가는 것과 달리 약 2.5km 떨어진 롯데마트 구로점은 이달 말 폐점을 앞두고 있다. 롯데마트는 코로나 여파로 천안점·의정부점·도봉점 등을 비롯해 12개 점포의 문을 올해 안으로 닫을 예정이다. 방학동 도깨비시장 반경 2km 안에도 이마트와 홈플러스, 하나로마트 등이 있는데, 김창희 상인회장은 “대형마트로 가던 사람들이 시장으로 오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재난지원금이 일조했다는 해석도 있다. 소비자가 전통시장에 가진 인식 가운데 하나가 카드 결제가 안 된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각 지방자치단체는 전통시장에서 카드 사용을 끌어올리기 위해 카드 수수료 등을 지원하고, 카드 결제 단말기를 보급하기도 했다. 서울시의 경우 349개 전통시장에서 신용카드를 쓸 수 있는 곳의 비율은 약 70%에 이른다. 이런 와중에 재난지원금을 카드로 쓰게 되면서, 난생처음 전통시장 문을 두드린 사람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김용욱 고척근린시장 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단장도 “재난지원금이 한번 풀리고 난 뒤, 전통시장에 처음 온 사람들이 다시 찾다 보니 전통시장이 나름 선방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전통시장 이용자도 많아졌다. 방학동 도깨비시장의 경우 코로나 이전만 해도 카드 결제 비율이 10% 수준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매출의 약 90%로 치솟았다.

이 밖에 전통시장이 온라인 시장에 뛰어든 점도 영향을 끼쳤다. 일부 전통시장은 소비자가 홈페이지를 통해 점포별 물건을 주문하면, 한꺼번에 물건을 담아 집으로 보내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서울 강동구 암사종합시장은 지난해 9월부터 온라인 장보기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당시 주문 건수는 한 달 15건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데 지난달 주문 건수는 80여 건으로 크게 늘었다.

하지만 코로나 직격탄을 맞은 전통시장도 많다. 관광객이 주 고객인 서울 남대문시장이나 통인시장 등이 대표적이다. 서울 남대문시장 문남엽 상인회장은 “우리는 잘나갈 때 하루 외국인 관광객 1만여 명이 찾을 정도로 외국인에 대한 의존도가 큰데, 지금은 외국인 관광객이 한 명도 없기 때문에 힘들 수밖에 없다”며 “주택가 전통시장 상황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했다. 서울 종로구 통인시장 상인회 관계자도 “한때 90%까지 매출이 떨어질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라며 “서울 종로구나 중구에 있는 전통시장 상당수는 비슷한 처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서울 서대문구 주택가에 있는 영천시장 유문희 매니저는 “우리도 코로나19로 손님은 줄었지만, 관광객이 주 고객이 아니어서 그나마 좀 낫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