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 ‘우향 박래현 판화전 with 운보 김기창’ 展
두 마리 다람쥐가 석류 나무 위에서 노닌다. 석류가 익을 대로 익어 쩍 벌어졌다. 한국화 거장 운보 김기창(1913~2001)은 1969년 ‘석류와 다람쥐’를 그려 아내에게 선물했다. 아내는 평생 이 그림을 애지중지했다. 바로, 화가 우향 박래현(1920~1976)이다.
박래현은 대지주의 장녀로 태어나 부유하게 생활했다. 일본 도쿄 여자미술전문학교 재학 도중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특선, 시상식 참석차 귀국했다가 운보의 그림에 반해 그의 집에 찾아갔고, 이내 사랑에 빠졌다. 운보는 가난한 데다 청각장애까지 있었다. 박래현은 이에 아랑곳없이 “결혼 후에도 그림을 그리게 해달라”는 조건으로,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1947년 혼인했다.
‘운보의 아내’라는 무거운 수식어에 가려졌으나, 박래현은 동양화부터 추상화·태피스트리까지 아우른 선구적 화가였다. 1967년 상파울루 비엔날레 참석을 계기로 중남미를 여행한 뒤 미국에 홀로 남아 판화를 배웠다. 주로 동판화 작업에 매달려 에칭·콜라그래피 등의 기법을 한 작품에 구사했다. 1974년 귀국해 동양화에 판화 기술을 접목한 새 작품을 제작했지만, 갑작스러운 간암 발병으로 뜻을 펼치지 못했다. 그런 아내를 기리며 남편은 애절한 시 한 수를 남겼다. “예술을 위해 가시밭길을 밟고/ 지금은 십자가를 진 당신/ 나와 아이들을 위해 또 한 개의/ 십자가를 지고 간 당신/ 불러도 불러도 대답 없는 그대여!/ 내 못다 운 울음을 우느냐···.” 제목이 ‘나의 아내 박래현’이다.
‘우향 박래현 판화전 with 운보 김기창’ 전시가 서울 강남구 신사동 청작화랑에서 12월 5일까지 열린다. 박래현의 희귀 동판화 23점과 운보의 한국화 등 총 31점이 전시된다. ‘석류와 다람쥐’는 부부의 자녀가 소장해오다 이번에 처음 공개된다. 무료 관람.
◇공연 | 에어포트 베이비
‘김밥도 천국이 있는데/ 날 위한 천국은 없네/ No Heaven For Me/ 내가 쉴 곳은 없네···.’ 한 살 때 미국 유태인 집안에 입양돼 자란 스물두 살 청년 ‘조쉬 코헨’(최재림·조상웅), 한국 이름 ‘김승수’의 노래가 흑인 영가처럼 애절하다. 우여곡절 끝에 목포로 찾아가 생모를 만난 곳은 흔한 이름의 동네 분식집. 관객은 입 꾹 다문 생모 표정만 보고도 그 아픈 마음 다 알아채지만, 조쉬는 자길 보고 웃지도 울지도 않는 ‘엄마’를 이해 못 한다.
이야기도 노래도 매끈하게 잘 뽑은 창작 뮤지컬. 뿌리를 찾는 젊은이의 여정에 입양인을 향한 편견에 대한 풍자, 여장 남자 ‘딜리아’(김용수·강윤석)와의 우정 등 웃음과 눈물 요소를 잘 버무렸다. 내년 1월 31일까지 신한카드 FAN(판)스퀘어 라이브홀.
◇클래식 | 신창용 피아노 리사이틀
음악계를 밝히는 ‘샛별’에서 무게감 있는 연주자로 도약을 꿈꿔온 피아니스트 신창용(26)이 그간 흘린 땀을 밀도 있게 눌러담은 무대를 준비했다. 21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IBK체임버홀에서 열리는 리사이틀은 클래식의 고전 베토벤의 소나타부터 ‘스페인의 쇼팽’ 그라나도스의 곡까지 다채로운 레퍼토리로 펼치는 그만의 음악 세계.
2016년 미국 카네기홀에서 데뷔 무대를 가졌고, 2018년 미국 지나 바카우어 국제 아티스트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이번 무대에서 그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0번과 쇼팽 발라드 3번, 라벨 ‘밤의 가스파르’와 그라나도스의 고예스카스 모음곡 중 1번 ‘사랑의 속삭임’ 등을 들려준다.
◇영화 | 런
하반신 마비에 천식·당뇨로 고생하는 딸 클로이(키에라 앨런)는 집을 벗어날 수 없다. 엄마 ‘다이앤’(사라 폴슨)의 보호 속에서 자라온 그녀는 우연히 수상한 초록색 알약 병을 발견한다. 분명 자신이 먹는 약인데 엄마의 이름으로 처방된 약병. 딸은 엄마를 향한 의심을 품고 숨겨진 비밀을 파헤친다.
영화 ‘런’은 실종된 딸을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추적하는 영화 ‘서치’로 세계적 성공을 거둔 아니시 차간티 감독의 신작이다. 휠체어를 타 혼자서는 집 밖으로 벗어날 수 없는 주인공의 한계를 설정하고 좁은 공간 안에서 제약들을 영리하게 활용한다. 주인공 클로이는 집 안에서 부딪히는 장애물들을 재치 있게 돌파해 나간다. 한없이 다정해 보이던 엄마와 그 사랑을 의심하게 된 딸의 지독한 싸움이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넷플릭스 | 상견니
‘상견니(想見你)’는 ‘너를 만나고 싶다’는 뜻의 대만 드라마다. 현지 방영 당시 동시간대 시청률 1위, 드라마 평점 1위 등 지난해 대만 최고작 중 하나. 국내에서는 왓챠, 웨이브 같은 OTT로 먼저 공개됐는데 지난 10월부터 넷플릭스로도 볼 수 있게 됐다. 사고로 연인을 잃은 여자 주인공 황위쉬안이 어느 날 배달된 카세트 플레이어 때문에 시간 여행을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상견니를 보기 전으로 시간 여행 하고 싶다’는 평이 나올 정도로 국내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마니아층이 형성되고 있다. 대만 드라마 특유의 달달함에 조금 오글거릴 수 있는데, 일단 3회까지만 참고 보길 추천한다. 팬들 사이에서는 “8회부터는 밤새 보게 된다”는 말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