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후반 동갑내기 부부 A·B씨는 얼마 전 이혼했다. 부부는 재산 분할과 위자료 문제에 대해서는 일찌감치 합의했지만, 함께 키우던 고양이를 누가 키울지는 끝까지 합의하지 못했다. 가정법원을 찾은 둘은 결국 ‘고양이는 아내가 키우되, 남편이 고양이 양육비의 절반을 부담하고 대신 정기적으로 고양이를 면접 교섭할 수 있다’는 취지로 조정에 합의했다.

남편 측 변호를 맡았던 정문이 이혼 전문 변호사(법무법인 비전)는 “과거에는 이혼 과정에서 동물을 물건으로 여겨 대개 재산 분할 과정을 거쳤지만, 최근에는 마치 자식 양육권을 다루듯 반려동물도 ‘양육권 조정’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반려동물 양육 인구 1500만 시대. 동물을 둘러싼 분쟁이 늘면서 법조계에도 ‘동물 바람’이 불고 있다. 반려동물 전담 그룹을 둔 로펌이 생기는가 하면, 동물권 신장 운동을 펼치는 변호사 단체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신(新) 직업, ‘동물 변호사’의 등장이다.

지난해 11월 서국화(왼쪽에서 둘째) PNR 공동대표가 시민단체 '동물권행동 카라' 등과 함께 서울고법 앞에서 '개 전기 도살 유죄판결 환영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PNR은 동물권 신장을 요구하는 변호사 단체다. /동물권행동 카라

◇‘동물 전담팀’ 꾸린 로펌

신수경 변호사(법률사무소 율다함)는 얼마 전 ‘강아지 반환 청구 소송’을 진행했다. 유기 동물 보호 단체에서 강아지를 분양받은 여성 C씨가 강아지를 제때 치료하지 않아 강아지 건강이 악화하자, 해당 동물 단체에서 “강아지를 돌려달라”며 소송을 낸 것. 법원은 분양 시 작성한 계약서를 근거로 동물 단체의 손을 들어줬다. 신 변호사는 “강아지 분양이 늘어난 만큼 이와 관련된 분쟁도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법무법인 청음은 지난해 국내 로펌 중 처음으로 사내에 반려동물 전담 변호사 5명으로 구성된 ‘반려동물 로이어그룹’을 만들었다. 올해 2월에는 한국애견협회와 MOU를 체결하고, 법률 자문도 수행하고 있다. 청음 문강석 변호사는 “개 물림 사고뿐만 아니라 동물병원 내 의료 사고, 애견 카페·호텔에서의 동물 학대 문제 등 의뢰 범위가 매우 넓다”면서 “강아지를 입양 보냈는데, 너무 그리워서 되찾아오고 싶다는 의뢰인도 있다”고 했다.

아직 ‘동물 전문 변호사’는 없다. 대한변호사협회가 관리하는 전문 분야 61개 중 ‘동물’ 카테고리가 없기 때문. 동물법을 연구하는 변호사 모임 ‘동물법학회’ 김태림 회장은 “동물 관련 소송은 소가(訴價)가 낮아 실제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드물고, 전문성을 인정받기도 쉽지 않은 분야”라면서도 “동물 소송을 경험해본 변호사를 찾아 자문하는 의뢰인은 크게 늘고 있다”고 했다.


◇동물권 신장 요구 변호사 단체도

동물의 법적 지위를 위해 목소리 내는 변호사 단체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현직 변호사 15명이 소속된 동물권 연구 변호사 단체 ‘PNR’은 동물 학대 처벌 강화, 동물 복지 제도 안착을 위한 입법 운동 등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서울고법은 5년간 전기가 흐르는 쇠꼬챙이로 매년 개 30여 마리를 감전시켜 도살한 혐의로 개 사육업자 이모(68)씨에게 벌금 100만원 선고 유예를 내렸다. 당초 1·2심은 “전기 도살이 동물보호법에서 금지하는 ‘동물을 잔인한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이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대법원은 “개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고려하지 않은 판결”이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고법은 이씨에게 유죄판결을 내렸고, 이후 대법원이 이씨의 상고를 기각하면서 형이 확정됐다. PNR은 이 과정에서 ‘전기 도살 과정에서 개들이 상당 시간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 만큼, 이를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봐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지속해서 법원에 전달했다.

신수경 변호사는 “수년 전까지는 동물을 때려죽여도 재물 손괴죄로 기소해 경미한 벌금을 내리는 데 그쳤지만, 최근에는 경찰 등 일선 수사 기관에서 동물보호법을 적극 적용하고 있다. 실제 선고 형량도 실형 등으로 높아지는 추세”라고 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검거된 인원은 2015년 264명에서 2019년 962명이 돼 4년 사이 세 배 이상으로 늘었다.

동물 학대 처벌도 강화되고 있다. 내년 3월부터는 정당한 이유 없이 동물을 학대해 죽게 하면 3년간 징역을 살거나 최대 3000만원 벌금을 물게 된다. 현재는 2년 이하 징역, 2000만원 이하 벌금만 선고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