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 김창열 개인전
‘물방울 화가’로 유명한 김창열(91)은 어릴 적 할아버지에게 천자문(千字文)을 배웠다.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며 우주는 넓고 거칠다는 동양적 진리의 언어를 그는 환갑 나이에 작품 세계로 불러들였다. 평안남도 맹산 고향에서 붓으로 종이 위에 글씨를 올리던 유년의 기억에 바탕해, 화면에 물방울과 ‘글자’를 함께 배치한 것이다. 김창열은 “어린 시절 맨 처음 배운 글자이기에 감회가 깊은 천자문은 물방울의 동반자로서 서로를 받쳐주는 구실을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김창열 화백의 ‘글자’에 주목한 첫 전시가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11월 29일까지 열린다. 글자와 물방울이 만난 김창열의 대표작 30여 점이 전시된다. 거장의 화업을 재조명하는 동시에, 김창열의 물방울 연작을 1976년 국내에 처음 소개한 이 화랑의 개관 50년 역사를 기념하는 자리다. 갤러리 측은 “물방울과 더불어 ‘글자’는 김창열 미학의 거대한 맥”이라며 “이미지와 언어, 동양과 서양, 추상과 구상의 세계를 연결한다”고 설명했다.
물방울이 글자와 처음 만난 건 1975년. 프랑스에서 활동하며 재료 연구를 감행하다 다락방에서 묵은 신문 더미를 발견한다. ‘르 피가로’ 1면에 수채 물감으로 물방울을 그리며 그간 추상으로만 존재하던 물방울을 현실의 장소에 올려놓는다. 1980년대 후반 ‘회귀’ 연작을 시작한다. 천자문을 깨치던 배움의 원점으로 돌아가겠다는 작가적 의지를 녹여낸 것이다. 묽은 붓글씨를 겹쳐 쓰며 글을 익히듯 여백을 지우는 한지 작업, 라텍스를 활용한 입체적 방식까지 여러 ‘회귀’ 실험을 거친다. 물방울은 글자와 서로 긴장하거나 긴장을 허물며 어우러진다. 오광수 평론가의 해석처럼 “글자라는 기억의 장치와 물방울이라는 곧 사라질 형상의 미묘한 만남”처럼 보이기도 한다. 무료 관람.
◇클래식 | KBS교향악단 ‘고전 초월’
만개한 꽃도 새 해가 돋으면 뒤이은 꽃에게 화중왕 자리를 내어준다. 시간이 부여한 숙명이다. 하여 이미 진 꽃이 덜 아름다운가. 그렇진 않다. 자신의 몸을 거름 삼아 훗날 더 찬란한 꽃을 피워낸다.
평생 베토벤의 아홉 교향곡을 흠모하다 마흔 넘어 비로소 첫 교향곡을 내놓은 브람스. 거인의 어깨 위에서 20년을 담금질한 결과물이었고, ‘베토벤 교향곡 10번’이란 칭송을 들으며 최고의 순간을 증명했다.
31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KBS교향악단의 ‘고전 초월’은 고전의 새로운 창조를 되살리는 무대. 40세 지휘자 피에타리 인키넨과 함께 브람스의 ‘비극적 서곡’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협연 손민수), 브람스 교향곡 1번으로 수놓는다.
◇대중음악 | 이린재
싱어송라이터 이린재가 불혹의 나이에 데뷔 앨범 ‘나무’를 발표했다. 1998년 제10회 유재하 음악 경연대회 동상 입상 이래 22년 만이다.
이 앨범에는 박원, 정준일 등의 프로듀서로 활동해 온 권영찬을 비롯, 피아니스트 김광민, 기타리스트 홍준호, 드러머 김진헌 등이 참여했다. 그는 “20대 초반에 예술가로서 내면의 콘텐츠와 깊이가 많이 부족하다는 자각을 한 뒤, 음악에 대한 깊은 짝사랑을 내려놓았다”며 “그러나 40대에 비로소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고, 음악을 통해 삶의 방향과 의미를 구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타이틀 곡 ‘나무’는 혹한의 겨울이 안긴 상처를 나이테 속에 보듬고 봄에 다시 새싹을 틔우는 나무의 삶을 통해 인간의 삶을 성찰하는 노래이다. 애잔하게 읊조리는 노랫말이 가슴에 남는 노래 ‘독거노인’은 재즈 피아니스트 김광민의 정제된 피아노 연주와 함께 특별한 여운을 남긴다.
◇공연 | 김주원의 사군자_생의 계절
병든 어미 뵙고 오는 길, 바위 틈으로 비를 피한 스님 곁에 나비 한 마리가 젖은 날개로 내려앉았다. “억겁을 스쳐야 인연이라던데, 나와 너는 무슨 인연인 것이냐.” 여전히 길가에 핀 꽃에 마음을 뺏기는 젊은 스님과 하얀 나비의 긴 인연이 시작된다.
‘김주원의 사군자_생의 계절’의 첫 장 ‘봄’의 무대 위 풍경은 영상 디자인을 붓 삼아 세밀히 그려낸 수묵화 같다. 2장 ′여름'엔 혼이 스민 검을 가진 무사 뒤로 푸른 대나무가 솟아오르고, 조국을 등진 무용수가 마지막 춤을 추는 붉은 무대 위에서 ‘가을’을 지나면, 아내를 잃은 우주비행사가 생의 끝에서 인연의 순환을 마주하는 검은 ‘겨울’이 온다. 예술감독 정구호와 무용수 김주원이 배우, 무용수와 함께 춤·대사·음악을 한 무대에 담았다. 내달 8일까지 정동극장.
◇왓챠 | 퀴즈
100만파운드(약 15억원)가 걸린 생방송 퀴즈쇼에서 사기로 우승하는 게 가능할까? 왓챠 익스클루시브 드라마 ‘퀴즈’는 2001년 영국 ITV 퀴즈쇼 ‘누가 백만장자가 되고 싶은가?’를 둘러싸고 벌어진 실화를 다룬다.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퀴즈쇼에 출연한 공군 장교 찰스 잉그럼은 기적적으로 최종 우승을 거머쥔다. 그러나 100만파운드를 눈앞에 둔 순간, 방송사는 방청석에서 흘러나온 기침 소리를 신호 삼아 정답을 맞혔다는 부정행위 의혹을 제기한다. 일명 ‘기침 스캔들’. 결국 기침 스캔들은 법정으로 이어져 방송사와 잉그럼 부부 사이에 진실 공방이 펼쳐진다. 이 드라마의 실제 주인공인 찰스 잉그럼은 “끔찍할 정도로 정확하게 묘사한 드라마”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