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안병현

#1. 지난 27일 찾은 충남 예산군 고덕면 한 사과 농장. 챙이 넓은 모자에 긴팔·긴바지를 입은 이들이 어깨에 바구니를 메고 사다리를 오르내리며 사과를 따느라 분주했다. 이들 중 한 명에게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물으니 단답형의 한국어 대답이 돌아왔다. 13명의 작업자 중 주인 이종범(75)씨를 제외한 12명이 외국인. 각각 우즈베키스탄과 베트남에서 왔다.

이씨는 “현지인들은 점차 고령화되는 데다, 젊은 사람들은 도시로 다 나가버린 상황에서 외국인 노동자 아니면 사실상 농사짓기가 힘들다”며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외국인 노동자마저 못 구할 뻔하다가, 다른 집 수확이 끝난 다음에 겨우 (고용할) 차례를 잡았다”고 했다. 올해 과수원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은 예년에 비해 20%가량 올랐다. 일부 농가의 경우 외국인 노동자의 집까지 직접 차량을 운행해서 출퇴근을 시켜주거나, 차량 운행비 등을 얹어 주기도 한다. 근무 시간을 줄인 곳도 있다.

#2. 지방 소도시 A씨의 공장은 지난 7월부터 문을 닫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신규 유입이 끊긴 후, 공장에서 일하겠다는 사람을 찾을 수 없어서다. 그가 데리고 있던 한국인 직원 3명은 실업급여를 받겠다며 올해 초 나갔다. A씨는 “코로나와 업계 비수기가 겹쳐 사정이 나아질 때까지 조금만 버텨달라고 부탁했지만, 실업급여를 받는 게 낫다며 권고사직 처리를 해달라고 하더라"며 “소규모 중소기업의 경우 직원들과 다툼해서 좋을 게 없기 때문에 직원에게 과실이 있는 자발적 퇴사라도 실업 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농축산어업, 제조·건설업 등은 일이 힘들고 위험해 청년층은 물론 고령 및 저숙련 인력도 취업을 피하는 경우가 많다. 그간 이 분야들은 외국인 노동자가 손발이 돼 움직였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외국인 노동자의 신규 유입이 끊어지면서, 이 업계들의 숨통이 조여들고 있다. 한국에 남아있는 외국인 노동자의 몸값은 점점 높아지고, 이마저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됐다. 그 자리를 내국인으로 채우기도 쉽지 않다.

◇외국인 노동자 임금 20% 넘게 올라

우리나라에는 해마다 16국에서 평균 5만명의 외국인 노동자(E-9비자 소지자)가 들어온다. 더불어민주당 강훈식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올해도 5만6000명이 입국할 예정이었으나, 지난 8월까지 실제 입국한 사람은 5590명에 불과했다. 코로나로 인해 장기 체류자의 입국이 어려워지면서, 전체 입국 예정 규모의 9.9%만 들어 온 것이다.

외국인노동자 입국 현황

현재 방역 강화 대상국에서 오는 외국인들은 코로나 검사(PCR) 음성 확인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해당 나라가 의료 시설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아 제출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또한 2주간 자가 격리를 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드는 비용을 부담스러워하는 외국인이 많다. 자가 격리 등에는 1인당 하루 10만원 정도가 들고, 이 기간에는 일도 하지 못한다. 일부 국가는 비행편 자체가 중단됐고, 출입국 규제도 까다로워졌다.

그러다 보니 농가 등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를 구하느라 갖은 방안을 짜고 있다. 예년에 비해 임금을 더 주는 것은 물론이고, 숙식 등을 무상으로 제공하거나 자가 격리에 드는 시설비용 등을 대신 내주겠다는 곳도 있다.

예산에서 사과 농장을 운영하는 임춘근(59)씨는 “농가의 경우 수확기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이 시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임금을 더 줘서라도 일단 인력을 구하는 게 급선무"라고 했다.

실제 지난 7월 경북 영양군은 지역 농가와 협의해 영양군 내 휴양림 등 모두 4곳에 자가 격리 시설을 마련했다. 고추 수확을 위한 베트남 근로자 380여 명을 입국시키기 위함이다. 자가 격리에 드는 비용도 영양군이 7 농가가 3으로 나눠 내고, 외국인 노동자에게는 부과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해외 유입 확진자가 늘어남에 따라 법무부가 외국인 계절 근로자의 출입국을 강화하는 지침을 발표하면서, 이마저도 무산됐다. 이 지침에 따르면 ‘근로 기간 종료 뒤 즉시 본국으로 귀국이 가능한 항공편 운항(해당일 귀국 항공편 제출) 및 탑승을 허용한다’는 내용을 현지 정부가 보증해야 하는데, 베트남 측에서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근 10년 만의 오징어 풍년을 맞았다는 울릉도에서는 아예 혼자 배 타는 선주가 생겨났다. 기존에는 선주와 선원 등 최소 3인 이상이 배를 타고 조업을 했다. 이영빈 울릉도 어촌계장은 “비자가 만료돼 기존 인력들은 돌아갔는데, 새로운 선원들은 오지 않으니 선주 혼자서 배 타는 경우가 많아졌다”며 “오징어 작업의 경우 밤새도록 하기 때문에 안전하게 조업하려면 최소 두 사람이 가야 하는데, 작업을 안 할 수는 없고 혼자라도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 계장은 “바다 일의 경우 뱃멀미라든지 환경적 특수성이 많아 한국 사람들은 건설 현장에서 일하면 일했지 배는 안 타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올해 어업 분야에 종사하기 위해 국내 입국 예정이었던 외국인 노동자는 3000명. 그러나 지난 8월 기준 실제 입국자는 253명에 불과했다.

중소기업에서는 특히 주조, 금형, 용접 등 작업 환경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뿌리 산업’의 피해가 크다. 지난 7월 중소기업중앙회가 외국인 근로자를 활용하는 중소 제조업체 7053사에 설문 조사한 결과, 57.5%는 ‘이미 생산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고 답했다. ‘1~2개월 내에 생산 차질 발생 우려가 있다'가 17.7%, ‘기타’가 13.1%, ‘3~4개월 내에 생산 차질 발생 우려가 있다’가 11.5%였다.

지난 27일 충남 예산군 고덕면의 한 사과 농장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사과를 수확하고 있다. 예산군은 당도가 높고 아삭한 식감을 지닌 '엔비 사과'의 주산지다. /예산=남정미 기자

◇최악의 실업률 속 구인난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9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국내 실업률은 3.6%로 20년 만에 최대 수준으로 치솟았다. 동월 기준으로는 2018년을 제외하면 2000년 이후 2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난 7월 실업급여(구직급여) 지급액도 1조1885억원에 육박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최악의 실업률인데 다른 한쪽에서는 왜 구인난을 앓을까.

A씨는 “소위 말하는 3D 업종에 해당하는 일은 아무리 월급을 많이 준다고 해도 이제 한국 사람들은 하려고 하지 않는다"며 "또 일부 사람은 중소기업에서 계속 일하는 것보다 실업 급여를 받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실업급여를 받고 있는 이수연(가명·29)씨는 “실업급여와 기존에 받았던 임금 차이가 거의 없는 데다 받기도 까다롭지 않아, 실업 급여가 나오는 기간까지는 취업하지 않고 충분히 쉴 생각”이라고 했다.

일부 커뮤니티 등에서는 ‘자발적 퇴사하면서 실업급여 받는 법’ ‘퇴사할 때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사업주와 협상하는 법’ 등을 팁처럼 알려주기도 한다. 실업급여는 고용보험에 가입한 근로자가 실직했을 때, 취업 활동을 하는 일정 기간 생계 안정을 위해 지급하는 급여다. ‘비자발적 퇴사’가 주요 수급 자격 조건 중 하나다.

A씨는 “일부 근로자는 ‘권고 사직’을 받기 위해 고의적으로 업무상 실수를 하거나, 근무를 태만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며 “자발적 퇴사가 아닌 ‘권고 사직’으로 근로자가 나가게 되면 사업주는 다른 고용에 있어서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방법이 없다. 결국 이렇게 되면 회사가 죽고, 국민과 나라에도 손해를 끼치는 것”이라고 했다.

중소기업중앙회 손성원 외국인력지원부장은 “많은 중소업체 사장님들이 최저임금보다 훨씬 높은 급여를 제시해도 사람 구하기가 어렵고, 국내에서는 힘들게 일할 사람을 찾아도 두 달을 못 넘기는 경우가 많다는 말을 많이 한다”며 “결국 외국인 노동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기업들이 많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실제 중앙회 설문조사에서 ‘외국인 근로자 도입이 불가한 경우, 내국인 근로자로 대체가 가능하냐’는 질문에 72.3%가 ‘내국인 기피 업종으로 내국인 대체 불가’라고 답했다. 20.7%는 ‘임시 일용직 고용 등 단기적 조치가 가능하다’고 했으며, 7%만 ‘내국인 상용직 근로자로 대체 가능하다’고 했다.

이 지원부장은 “조심스럽지만 코로나 확산은 막으면서도, 필요한 외국인 근로자 입국은 재개하는 방식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한다”고 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체류 허가 기간이 만료됐지만, 귀국이 어려운 근로자의 경우 체류 기간을 50일간 임시 연장하고 있다"며 "그중에서도 가족 방문 비자, 비전문 취업 비자의 경우 3개월에서 최장 5개월까지 임시 체류 자격으로 농어업 분야에서 계절 근로자로 취업할 수 있게 허용하고 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신규 입국의 경우 코로나 추세 등 전반적인 방역 사항을 고려해 검토할 예정”이라고 했다.

◇포항은 어떻게 외국인 과메기 일꾼 90명을 확보했나

지난 8월 포항시 수산진흥과가 소셜 미디어에 베트남어로 올린 과메기 인력 구인 공고. /포항시

과메기 철인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경북 포항 일대는 과메기 손질과 가공으로 분주하다. 겨울 별미인 과메기는 냉동 상태 청어나 꽁치를 내다 걸어 약 열흘 동안 얼리고 녹이기를 반복하여 말린 음식. 당연히 손이 많이 간다. 그동안 포항에서는 부족한 일손을 200명 내외의 외국인 근로자들을 통해 채웠다. 그러나 지난 2월 코로나 바이러스가 본격화되면서, 과메기 업계와 포항시의 시름이 깊어졌다. 신규 인력 공급 등에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고심하던 포항시는 지난 7월부터 본격적인 외국인 노동자 확보에 나섰다. 이 무렵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국내 방문 동거(F-1) 체류 자격 외국인과 국내 체류 기간이 끝난 비전문 취업(E-9) 등록 외국인에 한해, 1회 3개월에서 최장 5개월까지 임시 체류 자격으로 계절 근로 등에 취업할 수 있도록 했다. 포항시 수산진흥과는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다행히 과메기의 경우 겨울철에만 집중적으로 노동이 필요해, 다른 지자체에 비해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포항시는 베트남 통역을 기간제 근로자로 채용해, 임시 체류 자격을 얻은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구인 공고를 냈다. 전국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물론이고 포항지역 이주여성 커뮤니티 등에도 이를 알렸다. 업계에서도 예년의 경우 유상이었던 숙식을 인센티브 차원에서 무상으로 제공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베트남·태국 출신 등 90여 명의 인력을 사전에 확보할 수 있었다. 이들은 31일부터 과메기 건조 작업에 들어간다. 무료 숙식 제공에 월 209시간 기준 179만원의 임금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