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부산 영도구의 ‘흰여울마을’. 약 66㎡(20평) 남짓한 낡은 하얀 집은 주말이면 관광객들이 사진 찍느라 긴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인기다. 영화 ‘변호인’(2013년)에서 송강호가 국밥집 아줌마 김영애의 아들을 변호하기로 마음먹고 집을 찾아가는 장면 등을 촬영한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현재 마을 안내소로 쓰고 있다. 그런데 올해 말이면 문을 닫을 처지에 놓여 있다. 건물을 부산 영도구에 무상으로 빌려준 소유주가 내년부터는 자신이 사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안내사 천애경씨는 “이곳 땅값이 말도 못 하게 뛰었지요”라고 20일 말했다.

영화 촬영지로 유명해진 동네가 촬영 당시 모습과 매력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다. 주변이 개발되고, 정비되면서 생긴 일이다. 낙후한 곳이 개발된다며 반기는 목소리도 있지만, 옛 모습을 잃어감에 아쉬움을 표하기도 한다.

영화 '변호인'에서 송강호가 등장해 유명해진 부산 영도구 흰여울마을. 시멘트 바닥이던 골목길은 깔끔한 콘크리트로 정비됐다. /부산=곽창렬 기자

흰여울마을에서는 ‘변호인’뿐만 아니라 ‘범죄와의 전쟁'(2012년) ’암수살인'(2018년) ‘첫사랑 사수 궐기대회'(2003년) 등을 촬영했다. 현장은 영화의 1970년대 풍경과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곳곳이 갈라진 회색빛 시멘트로 덮였던 골목길 바닥은 깨끗한 황토색 콘크리트로 바뀌어 있었다. 난간도 설치됐다. 코로나19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관광객들이 서로 마주치지 않고, 잠시 비켜 설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부산시에 따르면, 흰여울마을 방문객은 2017년 30여 만명에서 2018년에는 67만여 명, 지난해에는 83만여 명으로 가파르게 늘었다. 이에 부산 영도구는 2015년부터 30억여 원을 들여 낙후한 하수관이나 계단을 교체하고, 공원도 조성하는 등 정비에 들어갔다. 영도구청 측은 “관광객이 많아지면서 중점 관리 중”이라고 말했다. 해안을 바라보는 650m 길이 마을길에는 크고 작은 카페가 20여 곳 들어섰다. A씨는 지난해 약 2억원을 들여 가정집을 리모델링해 카페를 열었다. A씨는 “직장 생활을 접고, 오래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다가 관광객 수요 등을 고려해 카페를 열게 됐다”고 말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이곳에서는 상상도 못 했던 개업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부동산도 들썩이고 있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에 따르면 이곳 땅값과 집값은 1~2년 전보다 2배 가까이 올랐다고 한다. 부동산 관계자는 “서울 등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땅이나 집을 사들이면서 예전에 살았던 주민들은 많이 떠났다”며 “작년에 조금 오를 때 팔아치운 사람들은 아마 지금 땅을 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부산 영도구가 집 소유주에게 무상으로 빌려 리모델링한 마을 안내소나 관리사무소 가운데 일부는 이미 사라졌거나 사라질 위기에 있다. 소유주들이 직접 이용하겠다고 의사를 전했기 때문이다. 영도구청 관계자는 “5곳 가운데 3곳 소유주가 직접 운영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며 “영화로 유명해지면서 땅과 건물의 활용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 게 영향을 끼친 것 같다”고 했다. 흰여울마을 외곽에 있는 집값도 들썩이고 있다. 주변에 있는 20평 크기 아파트 값은 작년만 해도 7000만원 정도였는데, 현재는 2억7000만원 정도로 올랐다. 인근 부동산에서 일하는 Y씨는 “흰여울마을뿐만 아니라, 재개발이 예정된 인근 지역까지 대부분 배 이상 뛰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흰여울마을에서 7㎞ 정도 떨어진 부산 동구 매축지마을 역시 으슥한 골목이나 옛 부산 모습 등을 담은 영화를 촬영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영화 ‘친구'(2001년) ‘하류 인생'(2004년) ‘아저씨'(2010년)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곳은 재개발로 사라질 처지다. 마을 한구석에서는 영화 포스터와 함께 이곳에서 촬영했음을 알리는 표지가 서 있다. 영화 ‘아저씨’에서 김새론이 등장한 전당포 건물 등은 이미 아파트로 변했다.

주민들 입장은 엇갈린다. 매축지마을 인근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서모씨는 “이곳은 너무나 뒤떨어졌기 때문에 진작 개발이 이뤄져 했다”며 “(영화를 고려해) 남겨야 할 곳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부산에서 활동하는 곽규택 변호사는 “개발도 좋지만, 영화 속 모습을 더는 볼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