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먼스(10 month·10개월).’
지난 2월 신세계인터내셔널이 선보인 온라인 전용 브랜드다. 1년 중 가장 더운 달과 추운 달을 빼고 10개월 내내 입을 수 있다는 의미. 텐먼스의 대표 상품인 ‘마스터핏 슈트’는 화려하진 않지만, 기본에 충실한 디자인. 너무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두께감을 지녔다.
처음엔 정식으로 출범한 브랜드도 아니었다. 사내에서 시험 삼아 내놓은 일종의 프로젝트였는데, 소위 말하는 ‘대박’이 났다. 출시 일주일 만에 두 달치 물량이 다 팔린 데다, 지난 9월에는 자체 최고 매출도 달성했다. 애초 목표 대비 매출의 290%를 넘어섰다. 텐먼스는 이에 힘입어 지난 9일부터 오는 29일까지 3주간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팝업스토어 형식으로 문을 연다.
계절을 타지 않는 ‘시즌리스(seasonless)’ 패션이 인기다. 텐먼스뿐 아니다. 현대백화점그룹 한섬은 타임, 더 캐시미어, 톰그레이하운드 등의 브랜드에서 시즌리스 상품을 선보였다. 남성복 브랜드 ‘일꼬르소’도 사계절 내내 입을 수 있는 기본 스타일 바지, 셔츠 등을 출시했다.
◇ 사계절 사라진 패션
계절마다 옷을 바꿔 입던 멋쟁이라면 서운할지 모르겠다. 패션에서 사계절이 사라졌다. 코로나로 계절 변화나 유행에 둔감한 ‘집콕족’ ‘홈오피스족’이 많아진 데다, 기후변화로 계절 간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
실제 지난겨울에는 한파가 실종되면서 패딩 인기가 시들해졌다. 지난 1월 서울 평균기온은 1.6도로, 1908년 기상관측 이래 112년 만에 가장 따뜻했다. 이 기간(12월 22일~1월 21일) G마켓의 패딩 점퍼 판매량은 전년 대비 21% 줄었다. 내의(-26%)나 머플러(-27%), 장갑(-14%) 매출도 함께 떨어졌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슬로 패션’ 목적으로 시즌리스 제품을 사는 경우도 많다. ‘슬로 패션’은 한철만 입고 버려지는 ‘패스트 패션’에 맞서 옷을 최대한 적게 사고 오래 입는 것을 말한다. SPA 브랜드로 대표되는 패스트 패션은 최소 2주 간격으로 신상품을 내놓는다.
직장인 김한나(33)씨는 “이번 가을에 트렌치코트를 하나 장만하려다, 일주일에 두 번 재택근무하는 상황이라 간절기 옷은 건너뛰기로 했다”며 “워낙 금방 유행이 바뀌기 때문에 오래 손이 가는 옷이 좋다”고 했다.
신세계인터내셔널 김영 팀장은 “전에는 이 시기 소비자도 봄·여름(S/S) 옷 하면 벌써 옛날 옷처럼 여겨져서 가을·겨울(F/W) 신상품 사야 할 것 같고, 판매자 입장에서도 그게 재고로 분류돼 부담이 있었다”며 “텐먼스는 지난 2월에 출시했던 옷을 여전히 그대로 판매하고 있다”고 했다.
◇ 패션쇼도 일 년에 두 번만
이탈리아 명품 ‘구찌’는 지난 5월 “앞으로 1년에 단 두 번만 신제품을 발표하겠다”고 선언했다. 구찌를 비롯한 대부분 패션 업체는 그동안 매 계절 포함 연 다섯 차례 신제품을 선보였다.
구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알렉산드로 미켈레는 구찌 공식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이 위기(코로나 바이러스)는 우리 모두를 본질적인 시험 앞에 서게 했다.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함을 깨달았다”며 “프리폴(pre-fall·초가을), 봄·여름(S/S), 가을·겨울(F/W) 등 이전 세계를 지배하던 라이트모티프(leitmotifs·중심 사상)는 뒤에 남겨놓고 가려 한다. 그것들은 진부하고 모자란 단어”라고 했다.
미국 패션디자이너협회와 영국패션협회 역시 비슷한 시기에 패션 산업의 변화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해당 성명에서 두 협회는 패션 산업이 지향해야 할 방향으로 ‘패션의 속도를 늦출 것’ ‘패션쇼는 1년에 2회 이하로 할 것’ 등을 제시했다.
해당 성명에 참여한 벨기에 출신 유명 디자이너 드리스 반 노튼은 “이런 조치들로 패션 산업은 고객, 나아가 지구에 대해 더 많은 책임을 질 수 있다"며 “이를 통해 패션이 전 세계에 부렸던 마법과 창의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