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이상은 모르는 세계일 것이다. 발행일만 되면 초등학생과 중학생을 동네 문방구 앞으로 끌어당겨 줄을 세우던 월간지가 있었다. 월 판매 부수는 한때 30만부를 넘었고, ‘초딩’들은 독자 투고란을 빌려 전학 간 친구에게 안부를 전했다. 10년 전 폐간된 이 잡지 이름은 ‘와와109(이하 ‘와와’)’. 109는 ’10세부터 19세 청소년의 꿈과 재미를 모으겠다'는 뜻이었다. 세월이 흐르며 독자의 기억에서도 희미해진 이 잡지가 돌아왔다.
2001년 창간한 ‘와와’는 각종 연예 뉴스와 심리 테스트, 스타일링 요령 등 10대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담은 청소년 잡지였다. 가장 인기를 끈 콘텐츠는 편지지 도안을 오려 입체 편지지를 만드는 ‘패러디 편선지’. 초등학생 시절 매달 동네 문방구에서 ‘와와’를 샀다는 직장인 박모(25)씨는 “가위와 풀로 입체 편지지를 만들어 친구들과 편지를 주고받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했다. 천미현 와와일공구 대표는 이 잡지의 전성기를 이렇게 추억했다. “발행일마다 전국 서점과 문구점에 길게 줄이 섰어요. 독자들이 보낸 엽서가 편집부 책상에 늘 수북하게 쌓일 정도였죠.”
그러나 ‘와와’의 인기는 영원하지 않았다. 청소년들이 문방구에서 관심을 거두고 인터넷과 휴대폰 게임으로 이동하면서, 잡지도 자연스레 사양산업이 됐다. 판매 부수 감소로 경영난을 겪던 ‘와와’는 결국 2010년 8월호를 마지막으로 폐간했다. 그렇게 기억 속으로 잊혔다.
그런 ‘와와’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 7월. 폐간 10년 만에 크라우드 펀딩 형태로 한정판을 내겠다고 했다. 최소 펀딩 금액이 2만8000원으로 적지 않았지만, 반응은 뜨거웠다. 목표 금액(2500만원)을 24시간 만에 채웠다. 마감 시간까지 독자 5800여 명이 총 1억 9000여 만원을 모았다.
◇복간 계획 없지만, 독자들은 “눈물 난다”
펀딩을 계기로 잡지가 복간되는 것일까. 문혜정 와와일공구 디자인실장은 아니라고 했다. “소셜미디어(SNS)에서 많은 분이 와와109를 그리워하는 것을 알게 돼 감사의 마음에서 한정판을 출간한 거예요. 앞으로 복간 계획은 없습니다.”
실제 수년 전부터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과거 ‘와와’의 입체 편지지 사진을 찍어 올리는 ‘추억 소환’ 게시 글이 유행했다. 2030 세대가 주축이었다. 2년 차 직장인 김소현(26)씨도 그중 하나였다. “초등학생 시절 ‘와와’를 빼먹지 않고 사 모았는데, 언젠가 이사하면서 잃어버렸어요. 가끔 과거 친구들과 주고받았던 편지를 보며 추억에 빠졌는데···.” 이번 한정판에서 입체 편지지에 135페이지나 할애한 건 그런 까닭이었다.
지난 6일 한정판 배송이 시작되자 어른이 된 ‘과거의 초딩’들은 다시 한번 추억을 끄집어냈다. SNS에는 ‘드디어 와와를 받았다’는 인증 샷 수백 장이 올라왔다. 한 펀딩 참여자는 후기에 “어릴 적에는 이 잡지 하나만으로 행복했는데, 나는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건지··· 계속 눈물이 난다”고 적었다.
다 큰 성인들이 왜 철 지난 잡지에 웃고 우는 걸까. 하재근 문화 평론가는 “최근 청년들의 복고 열풍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찾기 어려워진 시대적 배경과도 연관이 있다”면서 “현재보다는 과거로 돌아가고픈 이들의 열망이 ‘인증 샷’ 문화로 공유되고 있다”고 했다. 한국소비자학회 회장을 지낸 김시월 건국대 소비자정보학과 교수는 “아날로그 감성의 추억을 되새기는 현상은 모든 세대에 걸쳐 보편적으로 나타난다”면서도 “구매력이 작은 젊은 세대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한정 소장품을 모으며 소소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실제 밀레니얼 세대의 복고 흐름은 곳곳에서 활기를 띠고 있다. 2000년 방영한 애니메이션 ‘디지몬 어드벤처’의 OST 앨범 발매 크라우드 펀딩에는 올해 13억4000여 만원이 몰렸고, 비슷한 시기 방영한 애니메이션 ‘달빛천사’ 15주년을 맞아 열린 2019년 OST 앨범 제작 펀딩은 국내 크라우드 펀딩 사상 최고액인 26억3400여 만원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