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을 보면 그 길흉화복을 알 수 있나? 어떻게 알 수 있나?”
많이 받는 질문이다. 황당한 물음이지만 풍수의 명당발복론과 직결된다. 땅을 인식하는 방법론이 해명되어야 답변할 수 있다.
땅을 말할 수 있으려면 “心鏡明通(심경명통·마음 거울이 밝게 통함)과 目力神巧(목력신교·땅 보는 눈의 힘이 신과 같음)”가 요구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옛 서적을 많이 읽고, 둘째 훌륭한 선생을 찾아가고, 셋째 무덤들을 많이 보는 것이다. 이 가운데 으뜸은 셋째이다. 10년 동안 풍수서적 읽는 것보다 1년 동안 무덤 편력함이 더 중요하다[遍觀一年墳勝讀十年書].”(‘탁옥부’) 따라서 풍수 기초를 마치면 혼자서 전국의 명당들을 답사한다. 지금도 가끔 그러한 사람들을 조우한다.
마치 괴테의 소설 ‘빌헬름마이스터의 수업시대’를 연상시킨다. ‘수업시대(Lehrjahre)’란 독일에서 장인(Meister)이 되기 위해서 스승 밑에서 도제 수업을 받은 후 전국을 편력하며 스스로 익혀나가는 시기를 말한다. 필자 역시 이 수순을 밟고 있다. 30년 가까이 무덤들을 답사하다 보니 길흉화복을 점칠 수 없으나, 그 집안의 세계관이나 의도 정도는 가늠할 수 있다.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 태릉이 있다. 중종의 둘째 계비 문정왕후의 무덤이다. 강남구 삼성동에 정릉이 있다. 중종의 무덤이다. 경기도 고양시 원당동에 희릉이 있다. 중종의 첫째 계비 장경왕후의 무덤이 있다. 1544년 중종이 승하하자 장경왕후 옆에 안장되었다. 그러나 18년 후인 1562년 장경왕후를 남겨두고 현재의 삼성동 정릉(靖陵)으로 홀로 옮겨진다. 당시 생존하던 문정왕후가 자신이 죽으면 중종과 둘이서만 묻힐 셈이었다. 그러나 삼성동 정릉은 비가 오면 물이 찼다. 문정왕후는 자신의 의도와 달리 태릉에 안장되게 된다. 문정왕후 욕심의 결과물이다.
서울 동작구 현충원 내 창빈 안씨(중종의 후궁) 무덤 옆에는 김대중(DJ) 대통령 부부 무덤이 있다. 자리가 옹색하여 앞은 석축을 쌓은 데다가 접근이 어려워 비탈길로 진입한다. 이곳을 답사할 때마다 늘 문정왕후가 떠오른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묘봉리 산156-1에는 DJ 아버지 및 DJ 첫째 부인(차용애) 무덤이 있다. 1995년 풍수사 손석우씨가 잡은 자리로, “남북통일을 주도할 인물을 배출할 자리”로서 하늘의 신선이 내려오는 ‘천선하강형(天仙下降形)’이란다. 이장 얼마 후인 1997년 대통령에 당선되자 유명해진 곳이다. 이미 고인이 된 손석우씨에 대해서는 풍수사들마다 평가가 상반되지만, 그가 소점한 이곳만큼은 좋은 자리가 분명하다. 서울 동작동 현충원 내 DJ 부부 묘역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런데 그 좋은 자리 두고 현충원 내 창빈 안씨 묘역을 비집고 들어갔다.
원래 용인은 DJ 선영이 아니었다. 전남 하의도 선영에 DJ 아버지 김운식과 첫째 부인(DJ 큰어머니) 무덤이 함께 있었다. 그런데 1995년 이장 과정에서 첫째 부인 묘는 그대로 두고 김운식 묘만 용인으로 옮겼다. 당연히 말들이 많았다. 작가이자 민주화 대부 송기숙(전남대 명예교수) 선생을 그즈음 광주에서 뵐 기회가 있었다. 송 선생님은 그 사건을 언급하며 “금도를 벗어나는 일”이라고 개탄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최근 DJ 첫째 부인과 둘째 부인 아들들이 부모가 남긴 재산을 두고 다툼이 벌어졌다. 이희호 여사 소생 김홍걸 의원이 엄청난 재산을 누락 신고하는 바람에 민주당에서 제명되는 사건이 있었다. 생전에 DJ는 자식과 비서들에게 “부자도, 가난하지도 말라!”고 가르쳤다(최규선 도담시스템스 회장). 이희호 여사는 생전에 자기 형님(김홍업 친모)과 함께 묻히기 싫어했다고 한다. 김홍업 입장에서는 그녀가 사망하자 이복동생과 일전을 불사하려고 마음먹었을 것이다.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