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는 ‘육아와 일의 균형’이라는 주제를 다시 꺼냈다. 이 고민을 조금 앞서 한 엄마들이 있다.

온라인 육아 상담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그로잉맘 이다랑(35) 대표는 대학에서 아동학을, 대학원에서 아동발달심리학을 공부했다. 구리시 청소년상담센터 등에서 상담사와 놀이치료사로 일했다. 그런 그에게 아이가 태어났다. 베테랑 육아 상담사인 이 대표지만, 정작 육아가 자신의 일이 되자 해결이 쉽지 않았다. 센터 내 아이들 상담은 주로 오후였는데, 이 대표의 아이도 오후가 되면 하원했다. 천연 원료로 립스틱을 만드는 율립 원혜성(41) 대표는 잡지사 뷰티 담당 기자, 국내 최대 홍보 대행사 등을 거친 홍보 전문가. 그러나 13년 경력의 원 대표도 임신하며 일을 그만둬야 했다. 이후 재취업을 시도했지만, 육아와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조건의 회사를 찾기는 어려웠다. 온라인 상거래 티켓몬스터에서 마케터로 일하던 임이랑(35) 코니바이에린 대표, 킴벌리클라크 연구소에서 디자인 매니저로 일한 몽클 정보경(39) 대표도 모두 겪은 일.

통계청은 지난해 결혼·임신·출산·육아 등의 사유로 직장을 그만둔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가 169만9000명이라고 했다. 경력 단절에 맞선 ‘엄마’들의 돌파구는 창업. 일하며 아이도 볼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었다.


①목디스크로 고생하던 코니바이에린 임이랑 대표는 첫아이가 태어난 지 일 년째 되던 날 직접 아기 띠를 만들었다. ②율립 원혜성 대표는 딸아이가 사용해도 될 정도로 순한 100% 천연유래 성분 립스틱과 립밤을 판매한다. ③몽클 정보경 대표는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와 직접 만든 밀가루 반죽으로 놀아주다 이를 특허출원했다. ④놀이치료사였던 그로잉맘 이다랑 대표는 온라인상에서 육아 상담과 아이 성향 검사 등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엄마라서 더 잘 안다

그로잉맘은 코로나 확산세로 어린이집 휴원 등이 본격화된 지난 3월 ‘아무놀이 챌린지 이벤트’를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에 아이와 함께하는 놀이 팁을 공유하면, 그로잉맘에서 커피 쿠폰 등을 제공한다. 3주 만에 참여자가 1만2000명을 돌파할 만큼 반응이 뜨거웠다. 그로잉맘 이다랑 대표는 올해 여덟 살 된 아들을 키우는 엄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은 계속 미뤄지고 있다.

이 대표는 “고객이 저와 같은 입장이다 보니 서비스를 설계하고 설명하고 홍보하는 모든 과정에서 고객의 입장을 고려하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했다. 그로잉맘을 만든 계기도 비슷하다. 육아 상담센터는 많지만, 막상 부모가 이를 찾기 쉽지 않다는 점에 착안했다. 상담센터는 ‘문제가 있어 치료받으러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비싼 가격도 걸림돌이었다. “육아는 누구에게나 어렵고 힘든 일이잖아요. 전문성을 가진 인력과 ‘어떻게 하면 유치원에 잘 적응할까?’와 같은 평범한 고민을 하는 부모들을 연결할 수 있는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로잉맘은 지난해 6월부터 온라인상에서 육아상담, 아이 성향 검사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부모가 아이와 평소 노는 모습을 찍은 동영상을 올리면, 전문 상담사가 이를 분석해준다. 지난 3월 기준 유료 회원 수가 4774명을 돌파했다.

버클이나 찍찍이 등이 달리지 않고, 오직 천을 이용해 만든 코니바이에린 아기 띠도 목디스크로 고생하던 엄마가 만들었다. 2017년 9월, 큰아이를 출산한 지 1년 된 임이랑 대표가 이를 시작했다. 당시 아기 띠 시장은 유명 수입 회사 등이 선점한 상태. “아이를 낳고, 직접 아기 띠를 해보니, 기존 제품들이 해결하지 못한 단점이 명확하게 보였어요. 견고하고 튼튼하지만 무겁고, 땀 차고···. 디자인이 예쁘지 않아서 하고 다니면서 자괴감도 들었어요. 부피가 커서 식당에 가면 둘 곳도 없고요.” ‘왜 이런 제품이 없지’ ‘이런 제품을 만들면 나도 필요하고 잘될 것 같은데’ 이 말을 달고 살다가, 아이 낳고 회사를 그만두며 받은 퇴직금으로 아기 띠를 만들었다. ‘망할 거면 빨리 망해야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지난해에만 전 세계 30여국에서 팔리며 148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예쁘고, 가벼우면서도 튼튼하다는 점이 통했다. 특히 일본 내에서 아나운서 요시다 아키요 등이 직접 착용한 사진을 올리면서 인기가 급증했다. 지난해 매출의 63%가 일본에서 발생했다.

천연 클레이(찰흙) 업체인 몽클의 시작도 비슷하다. 제과제빵·떡 만들기 등에 관심이 많았던 엄마 4명이 아이들이 가지고 놀기 좋은 밀가루 반죽을 만들었다. 정 대표는 “이렇게 만든 반죽이 너무 괜찮아서 사용할 때마다 ‘우아, 이건 정말 팔아도 되겠다’는 말이 수십 번 나왔다”며 “'말만 하지 말고 팔아볼까?' 한 게 시작이 됐다”고 했다.

율립은 원혜성 대표가 딸 김율희(6)의 이름과 입술의 립을 따서 만든 제품. “어느 날 딸아이가 제 화장품을 가져가 흉내를 내는데, 순간적으로 이를 다 빼앗았어요. 묻으면 안 좋은 걸 아니까 본능적으로 그런 거죠. 특히 립스틱은 우리가 먹게 되잖아요. 기존 화장품들이 다시 보이게 되더라고요. 율립이 나오게 된 계기가 됐죠.”

육아와 일 병행 가능한 기업 문화

설립 4년 차인 코니바이에린 직원들의 평균 업무 경력은 10년이다. 직원 16명 중 12명이 경단녀. 임 대표는 일하면서도 육아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환경만 준다면, 능력 있는 직원들이 올 것이라 봤다. 예상은 적중했다. 서울대 출신의 재원, 미국 유명 증권사에 다녔던 워킹맘 등이 합류했다. 이들은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고, 자신들이 원하는 곳에서 일한다. 호주·일본·미국 등 해외에서 일하는 직원도 있다. 임 대표는 “우리 회사는 업무 시간에 맞춰 일하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목표를 세워 일한다”며 “이 목표를 위해 자신이 어떻게 시간을 쓰는지는 본인 마음”이라고 했다. 아이를 재워놓고 새벽에 일하는 사람, 아이가 어린이집에 간 시간에 집중해서 일하는 사람 등 근무 형태는 직원별로 다양하다.

율립 역시 사무실이 없다. 직원 3명 중 1명은 미국에서 일한다. 사무실 없이 지내던 몽클은 지난 4월 경기도 여성창업보육센터 내 사무실로 입주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학교에 간 오전 10시~오후 2시를 사무실 출·퇴근 시간으로 잡았다. 다른 회사 업무 상대방과 시간이 맞지 않아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정 대표는 “가능하면 그 시간을 선호한다는 거지, 그 외의 시간에는 무조건 일하면 안 된다는 게 아니다”라며 “피치 못할 때는 당연히 아이를 다른 분께 부탁하고 일을 처리한다”고 했다.

그로잉맘은 오프라인 부모 강좌 등을 위해 사무실을 만들었지만, 일주일에 2~3일은 직원들이 재택근무를 한다. 이다랑 대표는 “출근했더라도 오후 5시 이전에는 다들 퇴근해서 아이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한다”며 “방학 때는 아이들을 회사에 데리고 올 정도로 회사 자체가 아동 친화적인 분위기”라고 했다.

무임승차자가 생기거나 일의 효율성이 떨어지진 않을까. 이 대표는 “자신에게 할당된 일들은 성과 공유 등을 통해 정확하게 하도록 한다”며 “오후 5시에 사무실에서 퇴근은 했더라도 업무가 남았다면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나서 밤에 다시 업무를 재개하는 식”이라고 했다.

임 대표 역시 “요즘엔 슬랙, 드롭박스, 구글 행아웃 등 다양한 공유 업무 도구가 있어서 사무실에 모이지 않아도 일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며 “이렇게 하면 쓸데없는 회의 등을 줄이면서 오히려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다”고 했다.

코니바이에린(사진 왼쪽) 제품에는 “오늘도 정말 수고 많았어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임이랑 대표가 육아하는 부모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원혜성 대표가 만든 율립 립스틱은 아이가 써도 될 만큼 순하다. 원 대표는 “키즈 메이크업으로 출시하라는 말도 있었지만 아이들이 화장하는 것을 권하지 않는다”고 했다.

코니바이에린(사진 왼쪽) 제품에는 “오늘도 정말 수고 많았어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임이랑 대표가 육아하는 부모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원혜성 대표가 만든 율립 립스틱은 아이가 써도 될 만큼 순하다. 원 대표는 “키즈 메이크업으로 출시하라는 말도 있었지만 아이들이 화장하는 것을 권하지 않는다”고 했다.

끼니 거를 때도 잦아

“회사에 가면 적어도 점심때에는 밥을 먹을 수 있잖아요.”

단점을 묻자 돌아온 이 대표의 말. 일하면서 아이도 볼 수 있다는 게, 누군가에겐 꿈처럼 느껴지겠지만 어려운 점도 많다.

회사에서는 정해진 시간표대로 일할 수 있지만, 유연 근무를 하다 보면 오히려 새벽 2~3시까지 일하거나, 끼니도 못 먹고 일하게 되는 날도 있다. 원 대표 역시 직장에 다닐 때보다 건강이 나빠져, 운동을 새로 시작하는 등 완급 조절을 하고 있다. “직장 다닐 때처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쭉 이어서 일을 못하잖아요. 오후 4시에는 아이 픽업도 해야 하고, 아이가 하원하면 일하기가 어렵죠. 그래도 할 건 해야 하니, 아이 재우고 새벽 2~3시까지 일을 하게 되는 날이 많아졌어요.”

임 대표는 “집에만 있다가 보니 쓰는 단어도 부족해지고, 외부에서 오는 자극도 적어진다”며 “요즘엔 일부러 집 밖에 나갈 일을 만든다”고 했다. 정 대표는 “물리적인 시간이 보장됨에도 여전히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 어렵다”며 “몰입 중인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픽업해야 할 때 아쉽다”고 했다.

이들이 창업해서까지 일을 놓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임 대표는 “그만큼 엄마로서의 삶 이외의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잠시 일을 쉬면서 일에서 오는 재미, 성취, 보람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꼈어요.” 육아 상담 전문가이기도 한 이 대표는 “다른 엄마들에 비해 (일하는 엄마라서) 아이에게 미안해야 할 상황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고맙다고 말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리고 엄마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엄마가 이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가끔 설명해주기도 합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일은 결코 이기적인 선택이 아니라고, 부모와 아이의 적당한 심리적 거리가 오히려 아이를 건강하게 자라게 한다고 전문가로서도 힘주어 이야기 드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