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테넷’을 보았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이후 처음, 7개월 만의 극장 나들이었다. 못 본 이들을 배려해 스포일러를 최대한 피하고 말하자면, ‘테넷’은 미래의 인류가 보내는 공격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니, 미래의 인류라면 우리의 후손일 텐데 왜 조상을 공격할까? 이유는 간단하고도 예측 가능하다. 우리의 환경 파괴를 더 이상 묵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테넷’의 그들은 ‘인터스텔라’(2014년)의 인류 아닐까? 근미래의 ‘인터스텔라’ 속 지구는 암울하고 칙칙하다. 온통 뿌연 가운데 산지사방에 먼지가 날아다니고 작물은 차츰 죽어간다. 식량의 다양성이 계속해서 떨어지는 가운데 유일하게 옥수수가 살아 남는다. 원래도 현실이 암울한데 평생 옥수수만 먹고 살아야 한다니 인간이 절박해질 수 밖에 없다. 실낱의 실낱 같은 가능성만으로 웜홀을 거쳐 태양계 너머 미지의 우주로 사람을 보낸다. 방정식이 틀린 줄 알면서도 인류가 희망을 잃지 않도록 평생 비밀로 품고 산다. 이런 결기라면 충분히 과거의 인류를 공격할 만 하다. 아니, 결기 따위 없더라도 옥수수만 퍼먹으면 결국 악이 받쳐 뭐라도 할 것 같다. 조상이고 뭐고 대가를 치르고 고통을 받으라고.
하지만 우리도 옥수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주로 여름에만 옥수수를 먹는 데도 그런가? 그렇다. 아는 옥수수보다 모르는 옥수수가 더 많기 때문이다. 전자는 우리가 존재를 알고 먹는 식재료이고, 후자는 먹거나 원하지 않더라도 간접적으로 섭취하게 되는 사료나 첨가물이다.
꼽아보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후자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사료이다. 소의 주식은 풀이지만 생애주기의 상당 부분, 특히 도살을 앞둔 막바지에 옥수수를 집중적으로 먹는다. 살찌우기, 즉 비육에 옥수수가 최고의 사료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지방 총량의 증가도 아니고 살코기, 즉 근섬유 조직의 사이사이에 끼는 ‘마블링’의 확산이라는 비육의 목표에 옥수수 만큼 효율 좋은 사료가 없다.
단순히 비육만을 위해 소에게 옥수수를 먹이는 건 아니다. 비육용 옥수수는 정부 지원을 받는 미국 농가의 과잉 생산분이다. 생산은 계속하지만 소모가 제대로 되지 않다 보니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 내게 됐고 목축업도 영향을 받았다. 소는 선택권도 없이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다가 딱하게도 주식이 바뀐 셈인데, 대가는 인간이 치러야 한다. 옥수수 비육 소가 대장균 감염에 취약한 탓이다. 풀을 먹은 소의 대장균(이콜라이)은 대부분 위산으로 죽는데, 옥수수 비육을 시킨 소의 대장균은 내성이 강해 잘 죽지 않는다. 대장균의 내성이 눈에 띄게 약해지므로 도축 전 다만 닷새라도 풀을 먹이자는 이야기가 나오는 현실이니 그만큼 옥수수의 영향력이 크다.
새로운 수요를 낳기 위한 옥수수의 발버둥은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모르는 옥수수의 또 다른 대표가 바로 고과당 콘시럽(high fructose corn syrup)이다. 이름이 길고 복잡해 보이지만 우리가 멸치볶음 등에 쓰는 물엿이 바로 콘시럽이다. 요리하다가 맛을 본 적이 있다면 알겠지만 물엿, 즉 콘시럽은 원체 달지 않다. 그래서 식품에 설탕보다 싼 대체제로 쓰고자 포도당을 과당으로 전환해 당도를 높인 게 고과당 콘시럽이다. 1970년대 처음 소개돼 이제는 청량음료부터 케첩까지, 온갖 대량 생산 식품에 주 감미료로 자리를 굳게 잡았다.
고과당 콘시럽은 설탕보다 싸면서도 1.5배 달아 식품 제조업자에게는 고마운 식재료이지만 논란으로 자유롭지 않다. 쟁점은 아무래도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이다. 일반 설탕(수크로스)와 달리 췌장에서 제대로 분해를 하기 어려워 신진대사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 ‘잡식 동물의 딜레마’의 저자인 마이클 폴란 등 식문화 저자 및 과학계를 통해 퍼졌다. 물론 반론도 있다. 오롯이 화학의 관점으로 보아 분자 단위로 검토하면 다른 당류와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어쨌든 고과당 콘시럽이 대량 생산 식품의 필요악으로 확실하게 낙인이 찍힌 것만은 확실하다. 그래서 옥수수 정제 연합에서는 이미지 쇄신에 나서기도 했다. ‘자연에서 추출했다’며 대대적으로 광고하는 한편 로비를 통해 ‘옥수수 설탕(corn sugar)’라 개명도 시도했지만 2012년, 미국 식약청에게 반려 당했다.
췌장과 신진대사까지 가지 않더라도, 고과당 콘시럽은 맛있는 감미료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밉살스럽다. 중립적인 백설탕과 달리 고과장 콘시럽은 날카롭고 쏘는 듯한 단맛을 낸다. 오죽하면 코카콜라의 원조 맛집인 미국에서 백설탕으로 맛을 낸 멕시코산을 수입해 팔겠는가. 예외 없이 고과당 콘시럽을 쓰는 미국 청량음료군(群)의 맛은 확실히 떨어지다 못해 불쾌할 지경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청량 음료는? 코카콜라를 필두로 모든 청량음료가 아직까지는 백설탕으로 맛을 내고 있으니 아직까지는 안심해도 좋다.
마지막으로 정말 눈에 안 띄는 옥수수가 있으니 식품첨가물이다. 소를 비롯한 가축에게 먹이고 설탕 대신 인간도 먹다가 모자라서 특정 성분을 추출해 식품에 쓴다. 대략 170종의 옥수수 바탕 식품 첨가물이 쓰이는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덱스트린(dextrin)’ 계열이다. 덱스트린은 전분을 열이나 산으로 가수분해해 만드는 다당류로, 말토덱스트린(maltodextrin)이 샐러드 드레싱 등의 액체에 증점제로서 걸쭉함을 불어 넣는데 쓰인다. 그 밖에도 라면 면발이 불지 않도록 도와주는 변성 전분(modified starch), 식품의 신맛을 조절하는데 쓰는 구연산(citric acid), 심지어 식품은 아니지만 오늘날의 필수품인 손 소독제 또한 옥수수에서 추출한 에탄올을 쓴다.
보이는 옥수수조차 요즘은 다양성을 잃어가고 있다. 어느새 우리의 옥수수가 ‘초당’과 ‘찰’의 세계로 양분되면서 평범한 노란 옥수수가 사라져 버렸다. 샐러드나 수프 등, 요리에도 쓰기 좋은지라 부재를 영영 받아들일 수 없을 것만 같은 가운데, 올 여름엔 상자로 들인 대학 찰옥수수가 웃자란 불량품이라 크게 좌절한 경험이 있다. ‘테넷’을 보고 나니 영화의 설정을 따라 노란 옥수수를 없앤 과거의 우리를 공격하고 싶을 만큼 좌절했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