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냥하고 예의 바르다. 잘난 체도 하지만 자제할 줄도 안다. 자신감이 있으면서 취향이 분명하고, 귀엽고 사랑스럽다. 똑똑하고, 탐구욕이 있고, 호기심으로 가득하다. 게다가 상상력이 풍부한데 용감하기까지 하다.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나는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런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그를 좋아하지 않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
앨리스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앨리스. 나는 앨리스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인물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매력이 반감될 정도라고 말이다. 소설 주인공으로 어울리는 인물이 아니라고도. 개인적인 생각이다.
나는 인간의 불완전함이나 결핍이 만들어내는 그림자에 끌린다. 그 사람의 얼굴을 찬찬히 보게 되고, 그 사람이 걷는 모습을 보려고 그보다 뒤에서 걷는다. 그림자라고 해도 좋고 음영이라고 해도 좋고 그늘이라고 해도 좋을 그것이 드러나는 순간, 나는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던 듯하다.
그늘이 없는 사람은 사랑할 수 없다고 생각해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그런데, 내가 좀 바뀌었다. 스스로를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었다고나 할까? 나는 싫어하는 것이 너무나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그래서 사회에 화합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좋아하는 것도 너무나 많은 사람이라는(그렇다고 사회와 화합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것을 알게 되었다. 내게는, 싫어하는 것들만큼이나 좋아하는 것들의 목록 또한 많다고. 그러니까 애정의 목록들! 그것들이 나를 생생하게 살아 있게 한다고. 또 좋아하는 것들을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의 반작용으로 싫어하는 것들이 생겨난 거라고. 이를테면, 내가 싫어하는 것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만들어낸 ‘그늘’ 같은 것이었다.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을 꽤나 좋아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사람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들이 각기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라서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와 비슷한 사람으로 둘러싸인 세계를 생각하니 갑갑해지면서, 나와 다른 이들의 다른 성격과 식성과 웃음 포인트와 취향과 관점과 말버릇이, 이런 다른 디테일들이 세상을 얼마나 흥미롭게 만드는지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무수한 삶의 디테일들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너무도 사랑해서 삶이 어지러워진 사람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내가 인간미도 없고 감정이 메마른 그저 비관주의자인 줄로만 알고 지냈다.
그걸 알게 되자 또 알게 되었다. 내가 그늘이나 그림자만큼이나 밝음과 명랑한 기운에 반응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동안 내가 생각하는 ‘밝음’에 부합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서 그런 사람을 좋아하는 줄 몰랐다는 것도. 밝음에 대한 기준이 엄청나게 까다로웠던 거다. 나는 디테일을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앨리스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밝고 명랑하고 쾌활하고 사랑스러운데 단순하지도 지루하지도 않다. 내가 가장 견디지 못하는 것은 지루함인데, 밝은 사람은 좀 지루하다고 생각하는 편견을 갖고 있었고, 그래서 밝은 사람을 좋아하지 못했던 것 같다. ‘밝은 사람은 지루한 면이 있다.’라는 내 오랜 편견을 불식시켜줬다는 점에서 앨리스는 또 고맙기도 하다.
루이스 캐럴이 쓴 이 소설은 원래는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가 종종 돌보아줬던 세 자매들이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해달라고 졸라서 이야기를 해주다 책으로까지 내게 되었다. 자매들 중 둘째의 이름이 앨리스였고, 루이스 캐럴은 당시 7세였던 앨리스를 각별히 생각했다. 그래서 세 자매에게 이야기를 해준다고는 하지만, 이건 앨리스를 위해 만들고 앨리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사랑과 다정함으로 가득한. 자기이면서 또 자기가 아닌 앨리스의 이야기를 루이스 캐럴로부터 듣던 앨리스의 기분은 어땠을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으며 들었던 가장 강렬한 감정은 질투였다. 앨리스에 대한 질투. 나는 앨리스가 부러웠다. 말에 민감하고, 세련되고, 유머도 있고, 사려 깊고, 무엇보다 나를 심도 깊게 이해하는 지적인 어른 친구가 나를 관찰하고, 존중하고, 학습해서 나와 닮은 인물이 나오는 모험담을 만들어, 또 그걸 친히 들려주기까지 하는 그런 엄청난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게 말이다. 생후 7세에 그런 자신을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으로부터 존중과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니… 내게 이런 경험은 영국 여왕이 되어 영연방을 통치하는 것보다도 가치 있게 느껴진다.
앨리스는 대체 어떤 아이였을까? 루이스 캐럴이 이런 이상하면서 사랑스럽고 독특하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주게 만든, 실제의 앨리스 말이다. “그대를 어떻게 묘사할 수 있을까? 먼저 그대는 사랑스럽다. 상냥하고 사랑스럽다. 강아지처럼(…) 사랑스럽고 새끼사슴처럼 상냥하다. 그리고 예의바르다. 신분이 높은 자에게나 낮은 자에게나 위대한 존재에게나 괴상한 존재에게나, 왕에게나 애벌레에게나, 누구에게나 공손하다. 마치 자신이 공주이고 황금실로 수놓인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루이스 캐럴 원작‧마틴 가드너 주석,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거울 나라의 앨리스’, 최인자 역, 북폴리오) 이 글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쓰고 25년이 지나서 루이스 캐럴이 ‘더 시어터’라는 잡지에 실었던 ‘무대 위의 앨리스’의 일부다. 나는 이 글을 읽고 좀 놀랐다. 내가 파악한 앨리스의 성격이 자의적이고 과한 해석이 아니라 작가가 의도한 바였다는 것에 말이다. 특히나 나는 앨리스가 애벌레에게 존댓말을 하는 것과 누가 보든 말든 왕녀처럼 품위 있게 행동하는 데 깊은 인상을 받았었는데, 루이스 캐럴도 그걸 콕 짚어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왕녀처럼 행동하는 앨리스가 좋다. 토끼 굴로 떨어지면서도 예의를 잃지 않으려 한다거나 들은 사람이 없어도 정확하지 않은 단어를 쓴 걸 신경 쓰고, 우는 자신을 나무란다거나, 토끼한테 ‘실례합니다, 선생님.’ 같은 말을 하는 앨리스가 말이다.(그리고 루이스 캐럴도 좋다. 앨리스를 마냥 아이가 아닌 품위를 갖고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개별적 인간으로 대한 그가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모험심! 토끼 굴로 떨어져 몸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면서, 생쥐나 토끼의 심부름을 하면서도 이렇게 말하기 때문이다. “집에 있을 때가 훨씬 더 즐거웠어. (…) 그렇지만, 음, 그렇지만, 이런 게 더 흥미로운 인생이잖아! 이제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앨리스는 이렇게 말할 줄도 아는 아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