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인강(인터넷 강의)에선 학원이나 학교에서 만나보기 어려운 대가(大家)가 강사로 나선다. 왼쪽은 해외 인강인 마스터 클래스에서 농구를 가르치는 스티븐 커리, 오른쪽은 바이블에서 영화 연출 강의를 하는 박찬욱 감독. / 마스터 클래스⋅바이블


액세서리 디자이너 강세정(33)씨는 제품을 도매 시장과 온라인 마켓에 팔아 생활비를 벌었다. 지난해 결혼한 그는 수입을 늘리기 위해 손수 온라인 판매를 하려고 남편과 창업을 준비 중이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던 그는 재테크 고수로 유명한 ‘신사임당’의 ‘스마트 스토어 강좌’부터 듣기 시작했다. 사업자 등록이나 배송, 홍보 방법 등을 알려주는 이 수업의 수강료는 17만원 정도다. 학원을 가는 건 아니다. 남편 퇴근 후나 주말에 ‘인강(인터넷 강의)’을 통해서다. 강씨는 “부업을 하겠다고 대학을 다시 갈 수도 없을뿐더러 장사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학교나 학원도 찾을 수 없다. 그렇다고 사업하는 사람들한테 물어보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했다. 공짜로 볼 수 있는 유튜브 강의도 있는데 왜 17만원이나 내고 인강을 들을까. 강씨는 “업계 최고 전문가한테 배운다고 생각하면 낼만한 가격이다”라고 했다.

이병헌에게 연기를 배우고 주호민에게 웹툰을 배울 수 있다면? 공시생과 취준생의 전유물이었던 인강에 업계 최고 전문가와 스타들이 등장하고 있다. 일명 ‘인강’이라는 온라인 동영상 강의는 토익, 토플과 같은 어학 시험이나 공무원 시험, 자격증 시험 위주였지만, 최근에는 취미나 업무를 배우기 위한 프리미엄 인강이 늘어나고 있다. 유명인, 전문가로부터 비법을 전수받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강의가 대부분이다. ‘주 52시간’ 이후 학원이나 스터디로 몰려간 이들이 코로나 시대에 모니터 앞에 앉은 것이다.

프리미엄 인강 업체들은 코로나 시대 이전부터 있었다. ‘클래스101’은 2018년 울산과학기술원(UNIST) 학생들이 창업한 스타트업으로 지난해 소프트뱅크에서 120억원을 투자받았다. ‘패스트캠퍼스’는 2018년부터 IT 직무 관련 온라인 강의를 시작했고, 지난해엔 요리, 미용, 웹툰을 업계 전문가에게 배우는 ‘콜로소’를 개설했다. 이병헌, 박세리, 박찬욱 등 각 분야 스타들이 강사로 나선 ‘바이블(vible)’도 지난해 만들어졌다. 이 업체들이 소문을 타고 주목받기 시작한 데는 코로나 사태가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주 52시간 제도가 시행되면서 자기 계발과 취미 생활에 눈뜬 직장인들이 학원에 다니지 못하면서 온라인 강좌로 눈을 돌렸다.

지난해 일주일 한 번씩 드로잉 학원에 다닌 송혜윤(31) 씨는 지난 3월부터 클래스101에서 드로잉 수업과 수채화 수업을 받았다. 그는 “학원 가기를 꺼렸는데 유동적인 재택근무를 하면서 오히려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서 취미 생활이 더 간절해졌다. 선생님과 소통을 못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학원보다 비용이 저렴하다”고 했다. 클래스101 에 따르면 지난 1월 누적 회원이 80만명이었는데, 8월에는 150만명까지 늘어났고, 같은 기간에 거래액은 160%가 증가했다.

코로나 사태가 프리미엄 인강의 인기를 앞당긴 것이었을 뿐, 수요는 이미 존재했다. 프리미엄 인강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미국 교육 스타트업 ‘마스터 클래스’는 ‘인강계(界)의 넷플릭스’라고 할 만큼 인기를 얻었다. 지난해 매출은 1억3000만달러(약 1603억원)이고, 기업 가치는 8억달러(약 9683억원)다. 연기는 내털리 포트먼, 영화 제작은 마틴 스코세이지, 농구는 스티븐 커리가 가르치는 식이다. 각 분야 최고 전문가들에게 그들의 노하우를 전수받는 개념이다. 한 달에 180달러를 내면 무제한으로 강의를 시청할 수 있다. 적지 않은 돈을 내야 하는데도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검증된 강사 덕분이다. 전문가와 비전문가가 섞여서 검증되지 않은 지식이나 조언을 하는 유튜브에서 배울 바엔 돈을 내고 제대로 수업을 듣겠다는 것이다. 마스터 클래스의 공동 창업자 데이비드 로저는 2015년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성공한 이들에게서 무언가를 배우고 싶은 욕구가 있다. 유명인의 전기가 잘 팔리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만약 당신이 농구를 배우려고 한다면 동네 체육관 강사보다 스티븐 커리에게서 배우고 싶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마스터 클래스의 성공 비결은 단지 기술이나 지식을 팔아서가 아니었다. 강의 평가에서 높은 평점을 받은 하워드 슐츠 전 스타벅스 CEO는 자신의 인생 전반과 실패 경험에 대해 이야기해서 호평을 받았다. 프리미엄 인강이 인기를 끈 것은 현직에서 경력을 쌓아온 믿을만한 전문가가 강사로 나서기 때문이다. ‘멘토’가 필요하지만 현실에선 찾기 어렵기 때문에 대가를 지불하고 인터넷으로 만나는 것이다. 마스터 클래스와 가장 유사한 국내 프리미엄 인강 바이블은 연기는 이병헌, 영화 연출은 박찬욱, 문예 창작은 조정래가 강사로 나섰다. 이 사이트의 연간 무제한 수강권은 19만9000원. 바이블의 여운혁 대표는 “똑같이 시작했는데 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어디에서 오는지 궁금했다. 또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의 강의는 자서전보다 더 생생한 기록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여 대표에 따르면 20~30대 고객이 가장 많다.

박성진(19)씨는 작곡과 프로듀싱을 배우고 싶어서 사립대학의 실용음악과에 들어갔지만, 코로나 때문에 두 학기째 온라인 수업을 받고 있다. 그는 “온라인 수업에 대한 준비가 안 된 학교 강의에선 내가 원하는 것을 배울 수가 없다”며 “나와 친구 두세 명은 돈 내고 인강에서 프로듀싱이랑 음향 강좌를 듣고 있다”고 했다. 박씨가 요즘 듣는 것은 프로듀서이자 가수인 그레이의 온라인 강의다. 가격은 35만9000원. 그는 “비싸긴 하지만, 초보자 수준에서 당장 해볼 수 있는 걸 가르쳐준다. 우리끼리는 ‘역시 히트곡을 많이 낸 사람이라서 (교수님과) 다르긴 다르다’고 한다. 그레이가 얘기하는 걸 보고 있으면 나도 저렇게 성공하고 싶다는 동기 부여도 된다. 등록금을 환불받아서 여기에 내고 싶다”고 했다.

가수이자 프로듀서인 그레이가 클레스101에서 프로듀싱을 강의하는 화면. / 클래스101

자기 계발과 재테크에 대한 강박도 프리미엄 인강의 원동력이 된다. 고용과 수입이 불안정해지면서 부업이나 퇴직 후 새로운 직업을 가지려는 ‘n차 인생’을 살기 위해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을 배우려는 이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평생 직장 개념이 없어지면서 전직을 하거나 프리랜서로 전환한 사람도 여기에 포함된다. 프리미엄 인강이 초기에 홈트레이닝이나 요리, 그림 그리기와 같이 취미 위주 강좌로 인기를 얻다가 최근에는 부동산이나 주식, 창업 강좌로 영역을 확장한 것도 이런 것 때문이다. 미용, 요리, 웹툰 등의 강좌를 개설한 콜로소는 “단지 취미가 아니라 이 일을 전문적으로 하려는 사람을 위한 강좌다. 세 업계의 공통점은 모두 도제식으로 이뤄지고 정보의 비대칭이 심하다는 것이다. 웹툰 작가 지망생들이 다 주호민의 화실에 문하생으로 들어갈 수는 없고, 지방의 미용사들이 청담동 헤어숍에 가서 트렌드와 기술을 배울 수도 없다. 이 일을 잘하고 싶은 사람들이 마스터의 노하우라도 들을 기회를 마련한 것”이라고 했다. 여기선 웹툰은 주호민 작가가, 요리는 최현석 셰프가 가르친다.

은행에 다니는 정모(28)씨는 온라인으로 작사가 김이나의 작사 강의를 듣고 있다. 정씨는 “지금 다니는 직장이 안정적이긴 하지만 어릴 때부터 음악 관련 일을 하고 싶었다. 작사를 부업으로 해보면서 전망이 좋다 싶으면 은행을 때려치우고 전업을 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미술 학원을 운영하는 유정연(32)씨는 “코로나가 끝나더라도 학원 운영은 예전처럼 안 될 것 같다. 지금이라도 전공을 살려 디자인 관련 부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PPT 디자인 수업을 들었고, 최근엔 미국 주식 입문 수업을 온라인으로 듣고 있다. 코로나 사태로 위기감을 느끼면서 새로운 걸 이것저것 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위기는 다른 곳에서도 감지된다. 프리미엄 인강은 오프라인의 학원 강사는 물론 학교 교사, 대학교수의 경쟁자로 떠올랐다. 한 사립대 영화과 교수는 “마틴 스코세이지랑 박찬욱 감독한테서 영화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시대에 나의 경쟁력은 무엇인지 자문하게 된다. 예전에는 강의실이나 교수실에서 학생들과 교류할 수 있다는 장점이라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것마저 없어져 버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