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같은 전염병을 옛날에는 ‘역병(疫病)’이라고 불렀다. 조선 시대에는 역병이 창궐하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경북 영주 ‘식치원(食治院)’ 신성미(55) 원장은 “전염병이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한다는 지식이나 백신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었고, 음식으로 면역력을 높여 대비하거나 기력을 회복하는 데 주력했다”고 했다.
식치란 음식을 통해 병을 다스리고 건강을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식치원은 조선 전기 영주에 살았던 유의(儒醫) 이석간(1509~1574) 선생이 지은 ‘이석간경험방(李碩幹經驗方)’을 바탕으로 식치를 연구하고 현대에 맞게 재해석하는 곳이다. 영주시 소속 음식 체험 교육관으로 신성미 원장이 위탁 운영하고 있다. 신 원장은 “이석간경험방에는 약으로 치료하는 약치(藥治)와 의술로 치료하는 의치(醫治), 음식으로 치료하는 식치가 총 780여 조(條) 수록됐는데 이 중 식치가 280여 조로 가장 많다”며 “구하기 어려운 약이나 만나기 어려운 의원보다는 백성들이 쉽게 얻을 수 있는 식재료를 통해서 병을 다스리는 법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궁중 의원들도 약보다 음식으로 병을 막고 다스렸습니다. 일단 식치를 먼저 하고 실패하면 탕약을 썼지요.”
“이석간 선생은 당시 ‘천하 명의’로 이름났었다”고 신 원장은 말했다. “퇴계 이황 선생이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진료를 했던 분이 이석간 선생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본인은 의원이라고 불리는 걸 아주 싫어했지요. 당시 의원은 중인 계층이 담당하던, 선비로서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이석간 선생은 영주에 있었던 제민루(濟民樓) 운영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다.
제민루는 태종 18년(1418년) 전국 최초로 건립된 지방 의국이다. 오늘날로 치면 지방 거점 의료 기관인 셈이다. 신 원장은 “조선 시대에는 중앙정부가 백성이 전염병에 쓰러지면 민란으로 이어질 수 있어 두려워했다”며 “그래서 백성을 치료하는 혜민서를 만들고 전국에 의국을 설치해 백성을 돌봤다”고 했다. 전국적으로 지방 의국이 6~7개 있었고, 이 중 제민루가 가장 활동이 활발했다. “영주 선비들이 제민루 운영에 적극 참여했기 때문입니다. 지역 선비들이 제민루 경영에 필요한 비용 마련 등을 팔 걷고 나서서 담당했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실천했달까요.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들이 운영하던 다른 지방 의국들이 잦은 인사이동 등으로 제대로 운영되지 못했던 것과 비교되지요.”
신 원장은 이석간경험방에 소개된 식치방 280여 조 중 55가지 조리법을 정리했다. 음식을 소화할 힘이 없는 환자를 고려한 죽류가 다양하다. “쌀을 찌고 말리기를 여러 차례 한 다음 죽으로 만들었다는 점이 독특합니다. 환자가 더 쉽게 소화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죠. 맛도 일반 죽보다 고소합니다.” 부재료는 대개 한 가지만 추가했다. 좁쌀, 누룩, 녹두, 대파, 곶감 등 구하기 쉬운 것들이 대부분이고 ‘동의보감’ 등에 나오는 값비싼 약재는 찾기 어렵다.
코로나19의 증상으로는 발열, 기침, 설사 등이 있다. “이석간경험방의 식치를 적용하자면 열이 날 때는 녹두를 넣고 쑨 녹두죽이 효과가 있습니다. 이질 즉 설사에는 누룩과 좁쌀을 넣고 끓인 누룩조죽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도토리와 비슷한 상수리(상수리나무 열매)도 죽을 쒀서 먹으면 설사를 멎게 하는 데 효과가 있고요. 총백(蔥白) 즉 대파의 밑동과 된장을 넣고 끓인 죽은 온몸에서 오한이나 열이 날 때 처방했지요. 복숭아씨를 넣은 도인죽(桃仁粥)은 폐에 좋다고 했으니, 기침에도 좋지요. 눈이 침침할 때는 오골계죽, 근육통에는 돼지간죽이 특효라고 나옵니다.”
신 원장은 “궁극적 목표는 제민루의 복원”이라고 했다. “우리 선조들은 음식이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 즉 효능에 집중했습니다. 우리는 음식의 맛, 관능적인 부분에만 집중하고 있죠. 제민루를 처방적 성격의 음식을 선보이며 음식의 본질을 생각하게 만드는 구심점으로 만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