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파울즈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를 다시 읽다가 ‘소공녀’가 보고 싶어졌다. 영화 ‘소공녀’가 말이다. ‘코블러’가 나왔기 때문이다. 광화문에서 20년 가까이 직장을 다니고 있는 존경스러운 그녀 K가 ‘소공녀’에 나온 위스키바가 코블러라고 말해준 게 기억났던 것이다. 그녀는 상큼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제 단골 바예요. 다음에 같이 가요.” 나는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K를 안다는 것이 기뻤다. 나도 한때 꽤나 바를 전전한 사람답게 내 단골 바를 갖고 싶었다. 거기에 술을 ‘킵‘해두고 야금야금 마시고, 거기로 3차를 가서 칵테일을 사기도 하는 구상을 했었는데(술은 얻어먹기보다는 사는 게 역시 좋다.)… 아직 ‘거기’를 찾지 못했다.
“그는 거실로 나와서, 가스등에 매달린 작은 고리를 잡아당겨 흐릿한 불꽃을 백열 상태로 바꾼 다음, 문 옆에 달린 초인종 줄을 세게 잡아당겼다. 나이 든 웨이터가 나타나자, 찰스는 거만한 투로, 화이트 라이언에서 최고급 코블러 – 빅토리아 시대에 수많은 이들의 객고를 달래 주었던 그 음료를 반 파인트 주문했다.” 이렇게 ‘프랑스 중위의 여자’에서는 코블러가 등장했던 것이다. 나는 ‘빅토리아 시대에 마시던 최고급 코블러란 어떤 맛일까?’라고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의 번역자 김석희는 코블러에 이렇게 역주를 달고 있다. ‘셰리주와 브랜디의 혼합물’. 셰리주와 브랜디를 섞은 일종의 칵테일인 것이다. 어떤 맛일지 알 듯 모를 듯했다. 안 그래도 셰리주 한 병, 브랜디 한 병을 사려고 했었는데 마침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요즘 집에서 종종 칵테일을 만들어 마시는데(한은형의 애정만세 ‘음주에 숙달돼야 해, 그렇지 않으면 술이 자네들을 부린다네’를 참조하세요), 코블러도 제조하고 싶어졌다. K의 단골 바 코블러에 코블러를 판다면, 한 번 마셔보고 집에서 만든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술을 한 병 한 병 사면서 알게 된 것들이 있다. 샹파뉴 지방에서 생산되어야 샴페인이라 부를 수 있고, 꼬냐끄 지방에서 만들어져야 꼬냑으로 불린다는 것. 그런데 셰리주는 본고장인 스페인을 벗어나도 셰리주라고 쓰기도 한다는 것(물론 스페인에서는 싫어함). 또 어제만해도 나는 ‘몬테 알반’이라는 데킬라를 한 병 샀는데 병에서 이상한 문양들을 발견했다. 마치 마야 문명 유적지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신전이라든가 고대인의 얼굴 같은 그림들이 병의 측면에 양각되어 있었다. 알고 보니 ‘몬테 알반’은 멕시코의 광대한 유적지였다. 신전과 피라미드, 제사터와 무덤 등으로 이루어진. 특히나 무덤은 화려한 프레스코화로 장식된다고 하는데, 병에 새겨진 문양이 바로 그 프레스코화에서 가져온 건가 싶었다. 그걸 알고 나니 몬테 알반을 딸 수 없었다. 일단은 책상에 올려두고 꽃이라도 된 것처럼 감상하고 있다. 양각 그림들을 만져보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러고 있자니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멕시코의 몬테 알반에 가고 싶어졌다. 어쩌다 술을 한 병 샀을 뿐인데, (전에는 관심이 없던) 멕시코와 마야 문명과 몬테 알반이 내 세계로 들어온 것이다.
전고운 감독이 만든 영화 ‘소공녀’를 처음 봤던 것도 술 때문이었다. 서로 말을 높이는 사이의 친구 S가 말했던 것이다. “주인공이 가사 도우미 일을 하는데요. 일당을 받아서 바에 가요. 혼자서 위스키 한 잔을 마시는데 전 그게 그렇게 좋더라고요.” 그 말을 들으니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를 소개하는 문장은 이랬다. “담배, 술, 남자친구만 있으면 행복하다는 미소. 근데 가사도우미 일당은 그대로건만 담뱃값은 올라버렸다. 포기 못 하는 담배 대신 월세를 희생하기로 결정한 그녀. 결국 노숙자 신세가 되어 (…)”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2014년이다. 주인공 미소가 2014년 12월 29일자 가계부를 쓰는 걸 보고 알았다. 일당 4만 5천 원. 밥값 5천 원, 위스키 1만 2천 원, 담배 2천 5백 원, 지출 합계 1만 9천 5백 원, 남은 돈 2만 5천 5백 원. 그녀는 남은 돈을 세 항목으로 나눈다. 세금과 월세와 약값. 매일 일을 하는 게 아니므로 매일 일당을 받는 건 아니지만 미소는 나름대로 규모 있게 살아가고 있었다. 문제는 해가 바뀌면서 생긴다. 담뱃값이 2천 원 올라 4천 5백 원이 된 것. 망연자실하는 미소에게 편의점 주인은 4천 원짜리 담배도 있다며 ‘디스 오리진’을 소개해준다.(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는 나름 유머 코드이기도 했을 이 장면은 담배를 안 피우는 내게는 딱히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게다가 집주인은 월세를 5만 원 올린다고 말했었다. 미소는 다시 가계부를 써본다. 일당은 4만 5천 원 똑같고, 밥값 1만 원, 세금 5천 원, 약값 1만 원, 월세 1만 원, 위스키 1만 2천 원, 담배 4천 원, 하루 지출을 더하면 총 5만 천 원. 하루에 6천 원 손실이 난다. 미소는 줄일 만한 데가 있나 싶어 위스키와 담배 항목을 유심히 보다가 결심한다. 집을 빼기로. 담배와 위스키를 희생할 수는 없고, 월세를 내지 않는 돈으로 담배와 위스키를 계속해서 즐기겠다는 거다.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이 쓴 ‘소공녀’도 샀다. 어릴 때 읽지 않아서 무슨 내용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어린애를 위해 쓰인 책은 읽고 싶지 않아’라는 자의식이 생겨서 그랬던 것 같은데, 서문을 읽다가(그러니까 책을 넘기자마자)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책을 손에 들고 열심히 읽는 많은 사람들이 그 책에서 실제로 쓰여 있는 이야기보다 얼마나 더 많은 것을 깨닫는지, 책에서는 전혀 언급되지 않은 부분을 얼마나 더 많이 알아내는지, 책에 쓰인 이야기보다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는 사실을 얼마만큼 알고 있는지 나는 모른다. 이야기란 어찌 보면 편지와 같다. 편지를 보내고 나서야 빠뜨린 게 생각나 “아, 왜 내가 그걸 말하지 않았지?”하면서 안타까워할 때가 많다는 점에서 그렇다.”(곽명단 옮김, 펭귄클래식코리아, 2017)
이 서문을 읽고서야 영화 ‘소공녀’에서 뭔가 아쉬웠던 점이 있었다는 게 떠올랐다. 나는 미소가 위스키를 왜 좋아하는지, 왜 늘 같은 위스키(아마도 글렌피딕 12년산)를 마시는지, 위스키를 마실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책 ‘소공녀’의 서문을 읽고서 느낌이 왔다. 감독이 관객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일부러 빠뜨린 부분일 수도 있겠다고 말이다. 어쩌면 각자가 알아서 채워 넣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