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1일 오후 강원 춘천 엘리시안 강촌 스키장. 본격적인 스키 시즌인데도 길이 460m 상급자 코스는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어 이용이 불가능했다. 슬로프엔 아직 눈이 다 쌓이지 않아 군데군데 갈색 풀이 드러나 있었다. 이 코스는 보통 크리스마스 무렵이면 이용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 처음으로 해를 넘겨 운영을 시작할 계획이다. 올겨울 눈이 거의 내리지 않은 데다,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며 인공 눈을 깔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다른 스키장도 사정은 비슷하다. 전북 무주 덕유산 리조트 스키장은 5년 전부터 슬로프 운영 면(面) 수를 23면에서 18면으로 줄였다. 추운 날씨가 짧아지면서 인공 눈을 만들기 어려워지자, 이용객이 적은 코스부터 운영을 중단한 것이다. 올해는 슬로프 개장 속도가 더 늦어져, 지난 시즌보다 2~3면을 적게 열고 있다고 한다.
‘따뜻한 겨울’이 일상이 되면서 눈과 추운 날씨가 필수적인 스키장은 존폐 위기에 몰렸다. 겨울에도 영상으로 기온이 올라가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해마다 스키장 개장은 늦어지고, 눈을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도 크게 늘고 있다. 한국스키장경영협회에 따르면 10년 전만 해도 전국 스키장의 평균 영업 일수는 100일 안팎, 길게는 140일까지 운영됐다. 그러나 지난해 대부분 스키장은 80~90일만 문을 열었다. 10년 새 평균 영업 일수가 약 15% 줄어든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낮 동안 눈이 녹는 경우가 늘면서 인공 눈을 다시 깔아야 하는 날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눈 관리 비용이 크게 늘어날 뿐만 아니라 설질(雪質)도 나빠진다. 녹았다 얼기를 반복한 눈은 밀가루처럼 고운 눈이 아니라, 설탕처럼 까칠하고 딱딱한 얼음 알갱이로 변한다. 한 스키업계 관계자는 “최근 겨울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10년 전보다 눈 관리 비용이 30% 정도 늘었다”며 “눈이 쉽게 녹으면서 ‘눈 상태가 왜 이렇느냐’는 고객 불만도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라고 했다.
때문에 스키업계의 위기감은 커지고 있는 중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저출생으로 젊은 스키 인구 유입이 줄어든 상황에서, 기온 상승으로 스키장을 열 수 있는 날까지 줄고 있다”며 “업계 사람들과 만나면 ‘스키 산업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라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고 말했다. 실제로 유럽 알프스 지역에서는 자연설에 의존하던 스키장들이 기후변화로 문을 닫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 들어 온난화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1910년대 12.0도였던 우리나라 연평균 기온은 2010년대 13.9도로 완만히 올랐는데, 2020년대에는 14.8도로 10년 만에 100년 치 상승분의 절반 정도가 순식간에 오른 것이다.
강원 지역을 대표하는 겨울 축제도 기후 변화 앞에 멈춰 서고 있다. 인제군은 최근 ‘인제 빙어축제’를 취소했다. 겨울 기온이 높아 호수가 충분히 두껍게 얼지 않았기 때문이다. 1998년부터 이어져 온 이 축제는 최근 3년 연속 취소돼 지역 경제도 침체되고 있다.
평창군도 행사장 얼음이 충분히 얼지 않았다는 이유로 1일 개막 예정이던 ‘평창 송어축제’를 9일로 연기했다. 평창군 관계자는 “장기적으로는 얼음 위 낚시 대신 수상 낚시 축제로 전환하거나, 아예 다른 형태의 축제를 만드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