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로 인한 극단적 홍수·가뭄에 대비하기 위해 윤석열 정부 때부터 추진해온 ‘기후 대응 댐’ 14곳 중 7곳의 건설이 백지화됐다. 당초 이 계획은 물 관리 업무를 국토부에서 환경부로 일원화한 뒤 정부 차원에서 발표한 첫 번째 정책이었는데, 불과 1년여 만에 뒤집힌 것이다.
환경부는 30일 신규 댐 후보지(총 14곳) 가운데 절반인 7곳에 대해 추진을 중단하고, 나머지 후보지 7곳은 댐보다 나은 대안을 검토해 계속 추진할지 여부를 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놓고 “사실상 전 정부의 신규 댐 정책을 폐기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국가수자원관리위원회가 현 정부 출범 전인 올 3월 후보지 9곳에 대해선 이미 건설 추진을 확정해 놨는데도, 환경부는 이 중 3곳을 ‘추진 중단’ 대상에 포함시켰다.
이날 환경부의 신규 댐 제동 결정은 점점 극단으로 치닫는 호우·가뭄 사태를 겪은 뒤 나온 조치라 논란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올여름 ‘200년 빈도’의 시간당 100㎜ 이상 비 피해가 전국 곳곳에서 발생했고, 강릉은 제한 급수 등 최악의 가뭄 사태를 겪었다. 대형 물그릇 확보 등 치수 인프라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에 오히려 추진 중인 댐 계획까지 중단시키면서 기후변화 대응에 역행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당초 신규 댐 프로젝트는 지난 2022년 남부 지방의 역대 최장 227일 가뭄과 대규모 홍수, 중부 지방의 시간당 141.5㎜ 극한 호우를 계기로 추진됐다. 가뭄과 홍수가 기후변화 시대의 ‘뉴노멀(새로운 기준)’이 될 것이란 판단에 치수 인프라 확충에 나선 것이었다. 이를 위해 지난 2023년 5월부터 유역별 홍수 위험성과 물 부족량 등을 데이터화했고, 홍수 저감과 용수 공급 모두 취약한 지역 14곳을 찾아 이름도 ‘기후 대응 댐’으로 지었다.
이중열 물복지연구소 소장은 “기후 위기가 초래한 기상 재난이 일상화된 상황에서 댐 계획 철회는 나라의 미래가 아닌 정치적 결정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며 “기후변화뿐만 아니라 인공지능(AI) 등 미래 산업 육성에도 물은 필수적이기에 댐을 비롯한 물그릇 확보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했다.
◇댐 후보지 열흘 둘러보고, 前정부 치수 정책 뒤엎었다
환경부는 작년 7월 신규 댐 후보지 14곳을 발표하면서 ‘해소할 수 없는 미래의 물 부족분’을 댐 추진의 근거로 제시했다. 기후변화를 반영하지 않아도 해결할 수 없는 미래 물 부족량 18%가 존재하며, 이는 댐을 통해서만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하수 저류댐을 설치하고, 낡은 상수도관 정비로 누수율을 줄이는 등으론 미래 물 부족량 82%만 해소할 수 있어 나머지는 댐이 필요하다는 논리였다.
그런데 이날 환경부는 1년여 전과는 정반대의 입장을 내놨다. 환경부는 “전 정부가 기후대응댐이라는 이름으로 신규 댐을 홍보했으나, 극한 홍수·가뭄에 대비하기에는 부족한 작은 댐을 여러 개 계획했다”고 했다. 또 “지역에서 요구하는 물 수요에 대한 정밀한 대안 검토 없이 댐을 계획하거나, 하천 정비 등 다른 대안보다 댐을 우선하기도 했다”고 했다.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농어촌공사가 운영하는 양수발전댐과 농업용 저수지 활용 방안은 면밀히 검토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댐이 아니면 물 부족분을 채울 수 없다던 과거 설명과 180도 달라진 것이다.
‘졸속 행정’이라는 비판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신규 댐 건설은 2년 4개월간 추진된 정책인데 뒤집히는 데는 김성환 환경부 장관 취임 후 두 달이 걸리지 않았다. 김 장관은 추진이 확정된 9곳을 포함해 총 10곳의 후보지를 둘러본 뒤 “불필요한 댐이 많아 절반 정도만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냈다. 댐당 하루, 도합 열흘 안팎의 현장 시찰로 추진 중단 결론을 낸 것이다.
추진 확정에서 중단으로 바뀐 댐은 산기천댐(강원 삼척), 용두천댐(경북 예천), 운문천댐(경북 청도)이다. 여기에 지역 주민 반발이 커 중·장기 과제로 남겨뒀던 동복천댐(전남 화순), 수입천댐(강원 양구), 단양천댐(충북 단양)과 상수원 보호 구역 문제로 지자체가 추진 의사를 철회한 옥천댐(전남 순천)까지 7곳의 중단이 이날 확정됐다. 환경부는 “동복천댐은 주민 반발이 극심하고, 산기천댐은 지자체가 추진해야 할 식수전용댐이며, 용두천댐·운문천댐은 더 나은 대안이 있어 추진을 중단한다”고 했다. 용두천댐은 하류에 있는 900만t 규모 양수발전댐에 수문을 설치하면 용두천댐 홍수 조절 용량보다 더 많은 용량을 확보할 수 있고, 운문천댐은 하류 하천을 정비해 추가 용수를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재작년 7월 집중호우로 주민 15명이 숨져 용두천댐 추진이 간절했던 경북 예천군에선 “정부가 반년 만에 손바닥 뒤집듯 약속을 어겼다”는 말이 나왔다. 댐을 지으면 수몰되는 예천군 도촌리의 박교환(57) 이장은 “홍수 걱정에 주민 200명이 전부 댐 건설에 찬성했다”며 “정권 바뀌었다고 계획을 이렇게 바꾸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환경부는 나머지 7개 댐도 추진을 확정하지 않았다. 지역 주민 간 건설 찬반 갈등이 큰 지천댐(충남 청양·부여), 감천댐(경북 김천)은 백지화를 포함해 기본 구상 용역으로 대안들을 검토한 뒤 추진 여부를 정하기로 했다. 기존 농업용 저수지의 제방을 높여 만들기로 한 가례천댐(경남 의령), 고현천댐(경남 거제)은 저수지에 수문을 달아 홍수 조절 기능을 보완하는 방법을 먼저 살펴본다는 방침이다.
홍수 조절 댐인 회야강댐(울산 울주)과 병영천댐(전남 강진)은 댐 규모가, 다목적 댐인 아미천댐(경기 연천)은 댐 종류가 적절한지 다시 보겠다고 했다. 댐을 짓더라도 규모를 줄이거나, 다목적 댐을 홍수 조절 댐으로 용도 변경해 규모를 축소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문재인 정부 때 단행한 환경부 중심의 물 관리 일원화가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질은 환경부, 수량 관리는 국토부가 맡았을 땐 국토부가 치수 인프라 확충을 강하게 밀어붙일 수 있었으나, 일원화 후에는 정권에 따라 치수 정책이 등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댐 건설을 반대해 온 환경 단체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라는 평가도 있다.
이강근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이·치수 인프라를 확충하고 취수원을 다변화하는 것이 기후변화가 야기한 극단적 가뭄과 홍수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