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십여 년 전 단순 이상기후로만 생각했던 기후변화가 이제는 우리 일상의 실제적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특히 국립공원에서는 그 어느 곳보다도 기후위기의 징조가 쉽게 감지된다. 지난겨울 설악산에서는 누적 3미터 폭설로 멸종 위기종 산양이 큰 피해를 봤고, 지리산과 한라산에서는 수년 전부터 구상나무가 말라죽는 것이 관찰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기후 위협의 행태가 우리나라에서만이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도 발생하고 있어 ‘지구의 날’이 갖는 의미는 매우 중요하다.

지구의 자연 자원을 착취의 대상으로만 생각해 오던 인류가 신음하는 지구를 살리기 위해 지속 가능한 보전 활동에 나선 것은 언제부터일까?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인류는 전쟁으로 인한 비극이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국제연합(UN)을 창설했다. 그런데 대규모 전쟁으로 피해를 본 것은 인간만이 아니었다. 전쟁으로 수많은 야생 생물의 서식지가 파괴됐고, 개체 수가 크게 줄어 멸종 위기에 내몰렸다. 1948년 이 문제를 고심하던 미국과 유럽의 과학자들이 프랑스에 모여 동식물들의 서식지 복원과 증식, 국제적 환경보호 네트워크 구성 및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고자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을 설립했고, 유네스코(UNESCO)와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해 나갔다.

IUCN은 한정된 지구의 자원을 미래 세대까지 현명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려면 과학적 원리에 기반을 둔 관리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 수단으로 미국이 창시한 ‘국립공원 제도’가 최상의 해결책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들은 유네스코를 설득해 1959년 모든 회원국이 국립공원 제도를 도입하도록 하는 UN경제사회이사회의 결의를 이끌어냈다.

1961년 IUCN 부총재가 한국을 방문해 UN 결의 사항을 소개하면서 6·25전쟁으로 피폐해진 국토의 건강성 회복을 위해서라도 조속히 국립공원 제도를 도입하라고 한국 정부에 권고했다. 이에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1962년 미국에서 열린 제1차 세계국립공원 대회에 건설부 공무원들과 교수, 건축가를 파견해 국립공원 제도 도입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러던 중 1963년 재무장관과 서울시 국장이 브로커와 짜고 국유지인 서울 사직동의 공원 용지를 헐값에 매각해 버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어 1964년에는 지리산에서 수백년 된 아름드리나무들을 무단으로 싹쓸이 베어버린 대규모 도벌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을 접한 언론과 국민은 크게 분노하면서 지역 개발은 둘째치고 국가 땅이라도 제대로 보호하려면 하루빨리 국립공원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고 연일 성토했다.

1965년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월남전 파병과 미국의 경제개발 차관 공여 합의로 조성된 밀월(蜜月) 관계 속에서 한국 정부는 1966년 10월 미국으로부터 국립공원 후보 지역과 관리 방안에 관한 조언을 듣고 마침내 1967년 지리산을 제1호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이렇게 지구 환경 보전을 위한 국제연합의 결의 후 8년 만에 성공적으로 국제사회의 권고 사항을 이행한 박정희 대통령은 임기 중 13개 국립공원을 확대 지정하는 한편, 산림청 설치, 수도권 그린벨트 설정, 환경청 설립 등 국내 환경보호에도 박차를 가했다.

1978년 11월 박정희 대통령은 국가가 국립공원을 확대 조성하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국가가 큰 예산을 들여 국립공원을 조성하는 이유는 단순히 외화를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이 우리나라 산천과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고, 그 속에서 자아를 성찰할 수 있도록 함은 물론이요, 후손들에게 그들의 선배들이 조국의 대자연을 지키기 위해 정말로 애썼구나! 하는 감동을 주기 위해서다.”

이후 1987년 정부는 세계화 물결 속에서 86·88 국제대회를 앞두고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공원 관리를 위해 국립공원관리공단을 설립했다. 이때부터 공단은 IUCN과 긴밀한 협조 체계 속에 세계 수준급의 공원 관리를 하고 있다. 기후 위기 시대에 접어들면서 한 나라의 국립공원 관리 수준을 국가 품격의 평가 요소로 보는 시각이 많다. 후손들을 위해,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국가 핵심 보호 지역인 국립공원의 역할과 기능 강화를 위한 고민도 깊어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