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서울 동작구 기상청에서 만난 이회성 IPCC 의장. 오는 3월 20일 ‘IPCC 제6차 종합보고서’ 발표를 앞두고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 의장은 “인류의 생활 전반이 탄소 배출과 직결돼 있고 그 결과 서로에게 온난화의 상처를 입히고 있다”며 “이 때문에 누가 누구를 ‘기후 악당’이라 규정하기보다는 탄소 저감 행동에 모두가 적극 동참토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종찬 기자

“탄소 중립? 가능합니다. 다만 그걸 달성하는 데 편견은 버려야 해요. 석유기업들이 엄청난 ‘오일 머니’를 탄소 저감 기술에 투자하는데 그건 좋은 겁니다. 탄소 저감만 할 수 있다면 화석연료 더 써도 됩니다. 탄소 중립은 결국 투자를 통해 기술을 얼마나 끌어올릴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작년 한 해 우리나라는 여러 ‘극한(極限) 기상’을 경험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지 않으면 더 깊은 기후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할 거란 과학자들 경고는 우리에게도 심각한 메시지다. 이 ‘경고’는 1988년 세계기상기구(WMO)와 유엔환경계획(UNEP)이 공동 설립한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가 처음 제기했다. 1992년부터 IPCC에 참여, 2015년부터 IPCC를 이끌고 있는 이회성(78) 의장은 30년 넘게 기후변화 흐름과 탈(脫)탄소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다음 달 20일 발표될 ‘IPCC 제6차 종합보고서’ 막바지 작업에 한창인 이 의장을 지난 9일 서울 동작구 기상청에서 만났다. 그는 역대 IPCC 의장 가운데 유일한 경제학자 출신이다. 그래서인지 “기후변화는 ‘공포’가 아니라 새로운 경제성장의 ‘기회’로 바라봐야 한다”면서 “저(低)개발국의 경제적 도약에도 기후변화는 큰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가 신뢰도 걸린 탄소중립… 성공 확신

-2050년까지 탄소 중립이 가능할까.

“가능하다. 탈(脫)탄소 분야에 막대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CCUS(이산화탄소 포집·저장·활용 기술)뿐만 아니라 탄소 줄이기가 힘든 철강, 석유화학, 수송 분야에서도 대책이 마련되고 있다. 결국 배출되는 탄소를 대기 중에 퍼지지 않도록 과학기술로 통제하면 기후변화를 제어할 수 있는 셈이다.”

-탄소 중립을 명시한 ‘파리협정’은 사실 안 지켜도 무슨 제재가 있는 건 아니지 않나.

“파리협정은 강제성이 없다. 하지만 ‘한 번 설정한 NDC(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후퇴할 수 없다’는 조항이 삽입돼 있다. IPCC가 주기적으로 이행 여부를 점검한다. 그런 다음 이를 발표한다. 국제사회에서 다른 나라를 상대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한 나라라면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간접적으로 영향이 있을 것이다. 이런 전략을 영어로 ‘공개 망신(Name and Shame) 주기’라 한다. 명단을 공개해 망신을 줘 올바른 행동을 촉구한다는 뜻이다.”

-작년 러시아발(發) 천연가스 쇼크로 유럽 석탄 사용량은 오히려 늘어 탄소 중립에 역행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다만 전쟁이 초래한 ‘일시적 충격’이라 유럽 각국이 탄소 중립에 손을 놓은 건 아니다. 전쟁발 위기가 어느 정도 해소되면 다시 탄소 중립을 위해 석탄 사용량을 줄일 것이다.”

지난 9일 서울 동작구 기상청에서 만난 이회성 IPCC 의장. 오는 3월 20일 ‘IPCC 제6차 종합보고서’ 발표를 앞두고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 의장은 “인류의 생활 전반이 탄소 배출과 직결돼 있고 그 결과 서로에게 온난화의 상처를 입히고 있다”며 “이 때문에 누가 누구를 ‘기후 악당’이라 규정하기보다는 탄소 저감 행동에 모두가 적극 동참토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오종찬 기자

RE100은 그저 ‘현상’, ESG는 ‘효과無'

-탈탄소는 ‘화석연료와 결별’을 의미하는 건가.

“화석연료는 단지 광물이다. 선도 악도 아니다. 화석연료를 태우더라도 탄소가 완벽하게 처리돼 대기 중으로 배출되지 않으면 온난화와 무관해진다. 실제 한 글로벌 기업은 가솔린 차량에서 외부로 나가는 탄소를 즉시 포집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포집한 탄소를 활용하는 단계까지 기술이 개발되면 이산화탄소는 ‘온난화의 원흉’이 아니라 또 다른 자원이 될 수 있다. 결국 탄소 저감 기술이 핵심이란 뜻이다. ‘(결과적으로 대기 중 배출하는 게) 무(無)탄소’라면 화석연료건 원전이건 신재생에너지건 상관없다.”

-글로벌 기업은 RE100(재생에너지 100%) 압력을 받고 있다.

“RE100은 탄소 중립 과정에서 생긴 하나의 현상이다. IPCC는 기술 중립적이다. 탄소 중립은 배출 저감 및 흡수에 기여하는 모든 기술을 고려해야만 달성할 수 있다. RE100 주장처럼 특정 기술에만 올인 하면 이른바 ‘온난화 저지 비용’이 대폭 증가한다. 이는 탄소 중립을 실천하는 데 걸림돌이다. 파리협정은 각국 사정에 맞는 기후 대책을 수립하라고 주문한다. 원전에 강점을 가진 한국은 원전을 탄소 중립에 활용하면 되는 식이다. 재생에너지 생산 환경이 좋지 않은 우리가 RE100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ESG 점수가 낮으면 기업은 ‘기후 악당’ 소리를 듣는데 이런 건 괜찮나.

“ESG는 기후변화 완화에 뚜렷한 효과가 없다는 게 IPCC 결론이다. IPCC는 ①'진실성(integrity)’과 ②'부가성(additionality)’이란 두 측면에서 ESG를 평가했다. ①은 ESG의 실제 탄소 저감 기여분, ②는 탄소 중립을 ESG가 촉발한 건지 ESG가 없어도 탄소 중립은 나타났을 개념인지 본 것이다. 두 항목에서 ESG는 큰 효과가 없었다. ‘화석연료로 돈 버는 회사들을 투자 포트폴리오에 넣지 않겠다’는 말로 갈채를 받았던 여러 글로벌 금융·투자사가 지난해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인 섹터 중 하나가 에너지였다고 한다.”

선진국의 개도국 재정 및 기술 지원은 ‘윈윈’

-기후변화 책임을 둘러싼 선진국과 개도국 갈등도 심하다.

“화석연료로 경제 발전을 이룬 선진국에 기후변화 책임이 있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이제 막 경제 개발을 시작하는 개도국 입장에선 화석연료 전성기 때 경제적 수혜를 누려보지 못한 채 불쑥 찾아온 탄소 중립이 달갑지 않을 것이다. 개도국이 기후변화의 일방적 피해자로 남지 않으면서 경제적 번영을 위한 기회로 삼을 수 있도록 (선진국이)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게 IPCC 생각이다.”

-선진국은 이미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공장들 대부분을 개도국으로 옮겼다.

“IPCC가 기존 ‘생산’ 기준이 아닌 ‘소비’ 기준으로 탄소배출량을 계산해봤다. 개도국이 탄소 배출을 감수하며 물건을 만든 건 선진국 소비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서유럽, 북미, 일본, 호주, 뉴질랜드 등은 이미 소비가 생산을 역전했다. 개도국 생산 패턴이 저(低)탄소형이었다면 전 세계 배출량도 줄고, 선진국 ‘소비 기준 배출량’도 줄었을 것이다. 이는 선진국이 개도국에 한 약속, 즉 ‘개도국 기후 대책을 위한 선진국의 재정과 기술 지원’을 통해 풀어내야 할 문제다. 여기엔 기후변화에 대한 선진국의 역사적 책임과 개도국 기후 피해의 불공정성 해소란 의미도 담겨 있다.”

-”기후변화는 저개발국에 경제적 번영의 기회”라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선진국은 화석연료 중심으로 이미 설치된 인프라를 무탄소형으로 대체해야 한다. 비용이 많이 든다. 개도국은 상대적으로 인프라 빈국(貧國)이다 보니 아예 인프라를 만들 때 효율적으로 친환경 인프라를 구성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더 빠른 속도로 탈탄소 시대에 맞는 옷을 입고 경제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셈이다.”

2015년 10월 크로아티아 두브로브니크에서 열린 IPCC 제6대 의장 선거에서 당선된 직후 이회성 의장의 기자회견 모습. /IPCC

“석유 위기 극복했듯 탄소 위기도 극복 가능”

-다음 달 IPCC 제6차 종합보고서가 발간된다.

“IPCC 보고서는 크게 두 가지 메시지를 전한다. 하나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지 않을 경우 인류에게 닥칠 막대한 피해, 다른 하나는 탈탄소 시대로의 전환이 각국에 새로운 경제 성장의 교두보라는 것이다. 더 중요한 건 후자다. 만약 탈탄소 흐름으로 경쟁력 있는 ‘무탄소 차량’이 개발되면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것이고, 기후 친화적 투자가 확대되며, 기업에는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 경제활동 전반이 친환경으로 변하며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할 수 있다. 기후행동은 공포를 부각하는 식이 아니라 경제적 유인을 통해 촉구하는 게 효과적이다.”

-우리나라는 ‘탈원전 탄소 중립’으로 시끄러웠다.

“탈원전 정책 폐기는 한국이 자국 기술적 강점을 살리는 방향으로 탄소 중립 정책을 폈다는 점에서 옳다. IPCC는 전 세계적으로 원전이 저탄소 에너지 공급원이 될 수 있지만 사회적 수용성 문제는 걸림돌 중 하나라고 보고 있다. 안전 문제 등 국민들의 ‘원전 거부감’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원전 업계에서 계속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지형적 한계가 큰 우리에겐 딜레마다.

“재생에너지는 새로운 고민이 아니다. 과거 석유 파동 때마다 정부가 추진했던 정책이 ‘신재생 등 대체 에너지 개발’ ‘에너지 효율 개선’이었다. 현재 전 세계적 저탄소 개발 흐름과 일치한다. 재생에너지 확대 요구도 기술 개발을 통해 진전되리라 본다.”

-우리나라 탄소 중립 정책을 평가한다면.

“잘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비(非)산유국’ ‘자원 빈국’이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경제발전을 이뤄냈다. 해방 후 전쟁의 폐허에서 원자력 정책을 수립해 원전의 기초를 닦았고, 액화천연가스(LNG) 도입으로 가정 연료를 연탄에서 해방시켰다. 발전 연료가 다변화됨으로써 석유 위기 대응력을 높였다. 한국은 그런 정책을 40년 전부터 펴왔다. 탈탄소 시대 역시 새로운 위기를 극복하는 저력은 우리가 다른 나라보다 최소 100m는 앞서 있다고 본다. 소위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을 따라 할 게 아니다. 정답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다.”

☞이회성

1992년부터 IPCC에 참여해 30여 년간 기후변화 대응과 전 세계 탈(脫)탄소 흐름을 이끌고 있다. IPCC 실무그룹 공동의장, 보고서 주저자와 검토·편집자를 거쳐 2008년부터 IPCC 부의장, 2015년부터 IPCC 의장을 맡고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장, 한국자원경제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고려대 석좌교수다. 경제학자 출신으로 경제성장 관점에서 기후변화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동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