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내려다 본 경기도 여주시 이포보/조선일보DB

정부가 강천보·여주보·이포보 등 남한강 3개 보(洑)를 모두 개방하겠다며 1344억원을 들여 이 일대 18곳 취수장·양수장을 이전하거나 고치는 사업을 추진해 논란이 일고 있다. 남한강은 여름에도 녹조 현상이 없을 정도로 물이 맑고 인근 기업·농민의 물 수요가 많아 2018년부터 계속된 문재인 정부 4대강 보 개방 대상에서 제외됐던 곳이다. 그런데 최근 보 개방 방침을 정한 정부가 강물 수위가 낮아지는 경우에 대비해 멀쩡하게 가동되는 취·양수 시설들을 지금보다 수심이 깊은 곳으로 옮기겠다고 나선 것이다. 지자체와 기업들은 “돈 낭비”라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김성원 의원실이 확보한 정부 문서에 따르면, 환경부는 지난 4월 여주·이천시와 농어촌공사, SK하이닉스, DB하이텍, OB맥주 등 남한강 수계 취·양수장 운영 기관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열고 “‘보 완전 개방에 따른 예상 하천 수위’를 참고해 취·양수장 18곳 시설 개선 방안을 제출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지난달 여주·이천시는 6개 취·양수장 이전 등에 459억원이, 농어촌공사는 5곳에 306억원이 각각 소요된다며 예산 지원을 요구한 상태다. 또 취수구 이전에 SK하이닉스는 403억원, OB맥주는 102억원, DB하이텍은 60억원, 인근 골프장 3곳은 14억원 등 민간 기업은 총 579억원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환경부는 기업들에 “정부가 민간 관리 취수 시설에 국고를 지원할 법적 근거가 없다”면서 올 하반기 환경부 장관과 지자체, 기업들이 함께 업무협약(MOU)을 맺는 방식으로 시설 개선 사업을 진행할 것을 요구했다. 정상 가동되는 취수구를 사실상 강제 이전토록 하면서 비용은 기업이 대도록 한 것이다.

환경부는 시설 이전을 추진하는 이유를 묻는 김성원 의원 질의에 “기후변화에 따른 기상 이변, 수질 오염 사고 등 비상 상황에 대응하고 취수 안정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라고 답했다. 추후 보를 열더라도 외부 요인에 따른 일시 개방일 것이라는 취지다. 하지만 환경부는 취·양수장 운영 기관들과 가진 간담회 등에서는 “향후 시설 개선 사업이 완료되면, 최저 수위까지 한강 보를 상시 개방하는 여건이 마련될 것”이라고 했다. 시설 이전 후 보를 ‘완전 개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성원 의원은 “정부가 지역 주민의 반발에도 아랑곳 않고 4대강 보 폐기를 밀어붙이더니 이제는 맑은 한강 유역까지 보를 열기 위해 시설 이전을 하려는 것”이라며 “세금을 낭비하고 기업에 피해를 주는 무리한 보 개방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환경부는 ‘4대강 보 개방, 모니터링’ 사업을 통해 작년 말 기준 4대강 보 16개 가운데 금강·영산강·낙동강의 보 11곳을 개방했다. 이어 올 초 국가물관리위원회가 금강과 영산강의 5개 보에 대한 해체, 상시 개방 결정을 내렸다. 그런데 수질이 좋고 녹조 현상이 없는 한강 보마저 개방을 추진하고 나서자 “문재인 정부가 ‘보 해체’를 위해 대못을 박으려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환경부는 지난해 취·양수장 운영 기관들을 모아 간담회를 연 데 이어 지난 2월엔 한강 유역물관리위원회가 “한강 수계 보를 상한 수위부터 최저 수위까지 운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18개 취·양수장에 대해 시설 개선 계획을 의결했다. 환경부 방침대로 남한강 취수장 시설을 이전하거나 변경하려면 취수장에 따라 통상 1~3년에서 최장 5년까지 걸린다. 취·양수장 시설별로 취수구를 수심이 더 깊은 장소로 이동하고 도수관을 새로 매설하거나, 임시 수조를 설치하고 펌프를 교체할 계획인 곳들도 있다. 특히 이곳 취수장들은 10여년 전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 때 보 개설로 인해 수위가 높아지면서 시설 침수 등에 대비해 수십~수백억원을 들여 시설 이전, 개선 사업을 벌인 적이 있다. 한 기업 관계자는 “정권의 결정에 따라 멀쩡한 시설을 계속 뜯어 고치는 데 돈을 써야 하나”라고 했다.

/자료=환경부,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실

환경부는 그동안 보 개방과 해체의 명분으로 ‘녹조 저감’을 앞세웠다. 하지만 남한강 수계는 그동안 녹조가 거의 발생한 적이 없을 정도로 물이 맑다. 맑은 물을 가득 담은 보의 수문을 굳이 열어야 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다. 남한강 시설 개선 사업에 대해 환경부는 “취수구가 하천 최저 수위보다 높게 설치돼 수위 저하 시 취수구 노출로 인한 급수 중단이 불가피하다”며 “2018년 감사원 감사에서도 이와 관련한 문제 지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환경부 설명과 달리 그동안 남한강 보들은 취·양수장 가동에 문제가 없는 관리 수위에서 정상 가동돼 왔다. 또 2018년 감사원 감사는 이명박 정부가 보 관리 수위 규정을 만들기 이전에 4대강 공사를 했다는 점에 대해 지적했을 뿐, 보를 세운 이후에는 환경부에 시설 개선에 나서라고 한 적이 없다. 조원철 연세대 토목환경공학과 명예교수는 “기후변화라는 막연한 이유를 들거나 발생하지도 않는 녹조를 명분으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려 한다면 납득하기 힘들다”며 “환경단체들이 요구하니까 환경부가 보를 개방해보려고 하는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환경단체들은 한강보가 상시 개방 대상에서 제외되자 “환경부가 여건을 만들어서라도 보를 개방하라”고 요구해 왔다.

지자체와 기업들은 식수원 운영과 공장 가동에 문제가 생길까 우려하고 있다. 여주시는 환경부에 사업 반대 입장을 담은 의견서를 내고 “취수장 이전 또는 취수구 변동에 따른 상수원 보호구역 재설정, 지정에 따른 문제점이 발생될 것”이라며 “보 개방으로 인한 피해에 대한 철저한 영향 평가를 실시해야 한다”고 했다. 기업들도 “굳이 취수구를 이전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