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에 사는 유슬이(34)씨는 최근 식재료업체 마켓컬리 재사용 보랭백 ‘퍼플 박스’를 구매했다. 식재료를 시킬 때마다 택배 상자 2~3개를 버리게 돼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재사용 보랭백 방식으로 바꾸자, 식재료들이 대형 비닐 봉투 2개에 담겨 왔다. 전에는 택배 상자에서 곧바로 식재료를 꺼내면 됐는데, 이제는 새로 비닐 봉투 쓰레기가 생긴 셈이다.

식품 배송업체 마켓컬리가 내놓은 재사용 보랭백 ‘퍼플 박스’(맨 위). 안에 식재료들이 비닐봉지에 싸여 담겨 있다. 이런 보랭백은 SSG(가운데)와 쿠팡(아래)에서도 적극 활용하지만 플라스틱 배출이 늘어나는 단점이 있다. /마켓컬리·SSG·쿠팡

코로나로 택배가 20%가량 늘어난 가운데, 새벽 배송 업체들이 쓰레기 절감 차원에서 2019년부터 재사용 보랭백을 적극 보급하기 시작했다. 업계를 통틀어 총 30만~40만개가 쓰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SSG닷컴은 2019년 6월부터 이달까지 ‘알비백’ 10만개 이상을 보급해 골판지 상자와 아이스팩 등 일회용품 3500만개를 절감했다고 밝혔다. 마켓컬리는 지난 5월 재사용 보랭백 제품인 ‘퍼플 박스’를 론칭했고, 쿠팡 ‘로켓 프레시백’과 현대백화점 식품관 ‘투홈백’ 등도 운영 중이다. 재사용 보랭백은 고객이 온라인 배송 주문 당일 밤 문 밖에 보랭백을 내놓으면, 이튿날 새벽에 배송 기사가 주문한 식재료를 보랭백에 채워 넣고 가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보랭백은 일반적으로 고객이 구매하거나 보증금을 내고 집에 보관한다. 쿠팡 등 일부는 보랭백 자체를 업체가 회수해 가지만, 여러 번 재사용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기존 택배 방식에 비해 폐지 박스가 배출되지 않는 장점이 있다. 인터넷 맘카페 등에는 “박스에서 일일이 비닐 테이프 떼는 번거로움이 사라졌다”는 반응이 많다.

하지만 재사용 보랭백에 식재료를 담을 때 냉동, 냉장, 실온 등 보관 방식에 따라 대형 비닐 1~2개에 나눠 담기 때문에 플라스틱 배출이 늘어나는 게 문제다. 예컨대 재사용 보랭백을 100회 사용하면 폐박스 200~300개가 절감되지만, 대신 비닐백 100~200개가 늘어나는 식이다. 비닐백 한가운데 개인 정보가 담긴 송장이 붙으면 가위로 오려낼 경우 비닐 재사용도 쉽지 않다. 업체 관계자는 “십수 가지 식재료를 하나씩 보랭백에 옮겨 담는 것은 제품 파손 위험도 있다”고 했다. 비닐 봉투를 쓰면 배송 과정에도 편리해지는 면이 있다는 것이다.

보랭백이 수명을 다해 폐기되고 나면 소재 자체가 재활용이 쉽지 않은 점도 문제다. 보랭백은 겉감과 안감이 나일론과 겹겹의 합성수지로 이뤄져 물질 재활용이 힘들고 결국 소각·매립해야 한다. 개당 1kg 무게 보랭백에 쓰인 합성수지 양은 중형 플라스틱 봉투(5g) 200개에 해당한다. 환경운동연합 백나윤 활동가는 “재사용 보랭백이 폐기, 소각되는 과정에서 유해 물질이 배출될 수 있으므로 별도의 수거, 폐기 체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자원순환사회연대 김태희 정책국장은 “보랭백은 오랜 기간 사용되면 환경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배출 쓰레기 총량을 줄여가는 노력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했다. 보랭백 대체로 종이 소비를 줄이면 벌목으로 인한 산림 파괴와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택배 상자는 플라스틱에 비해 재활용률이 높고 일부 펄프를 첨가해주면 다시 택배 상자로 태어난다. 보랭백이 100회 이상 꾸준히 사용되면 환경 보호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마켓컬리 관계자는 “보랭백을 새로 구매하지 않고 가정에서 보유한 보랭백을 사용할 수도 있다”고 했다.

◇‘종이 아이스팩’은 종량제 봉투에

최근 새벽 배송 업체들은 “종이 재질 아이스팩은 친환경” “종이 재질 비닐 테이프는 상자에 붙여 배출해도 된다”고 홍보하지만 실제론 종이에 플라스틱이 얇게 코팅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폐기물협회 박하연 분리배출팀장은 “복합 재질은 재활용 공정에 끼어들어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했다. 제지 업체 기술로 복합 재질을 걸러내지만 과도하면 골판지 원료 품질을 떨어뜨릴 수 있어 현재로선 종량제 봉투에 버리는 게 최선이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