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기준 29% 수준인 원전 발전 비율을 2050년까지 6~7%로 축소하는 대신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57~71%로 늘리는 내용의 ‘2050 탄소 중립 시나리오 초안’을 정부가 5일 발표했다. 일반 시민 500명으로 구성한 ‘탄소 중립 시민회의’를 7일 출범시키는 등 의견 수렴을 거쳐 10월 말까지 정부안을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서울 양천구의 한 아파트에 자가용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어 있다./뉴시스

대통령직속 탄소중립위 윤순진 위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3가지 탄소 저감 방안을 담은 시나리오를 공개했다. 1안은 2050년까지 석탄발전소를 7기 정도 남기면서 총 6억8630만t(2018년 순배출량)의 온실가스를 2540만t으로 96% 감축하는 방안을 담았다. 2안은 석탄발전을 중단해 97% 줄이는 안, 3안은 석탄뿐 아니라 LNG(액화천연가스) 발전까지 폐기하고 탄소를 100% 감축해 ‘제로(0)’로 만드는 방안이다.

정부는 탄소를 줄여야 한다면서도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원전에 대해서는 “후쿠시마 사고 등을 고려할 때 대안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태양광·풍력이 날씨에 좌우돼 발전량이 들쭉날쭉하고 발전 효율이 떨어진다는 지적에는 “향후 상당한 기술 혁신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한국원자력학회는 이날 발표한 ‘에너지믹스 보고서’에서 “2050년 재생에너지 비율을 50~80%까지 달성하려면 태양광·풍력 용량을 지금보다 10~40배 늘려야 한다”며 “이렇게 되면 전기 소비자인 국민은 연간 41조~96조원의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했다. 이종호 전 한국수력원자력 기술본부장은 “태양광·풍력의 전력 생산 불안정 문제로 ESS(에너지 저장장치)에만 최소 300조원 이상이 들고 송전선 등 추가 설비 비용도 소요될 것”이라고 했다. 이런 비용은 결국 전기요금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는 이날 탄소 중립 달성과 관련한 전기요금 인상 등 비용에 대해서는 “현 단계에서 고려하지 않았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작년 10월 ‘2050 탄소 중립’을 선언하자, 정부는 두 달 만에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 등 산하 45개 국책연구기관 72명으로 ‘기술작업반’을 꾸려 시나리오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어 탄소중립위가 지난 6~7월 두 달간 54차례 분과별 회의를 거치면서 정부가 제공한 2개 안을 3개 안으로 더 늘렸다. 탄소중립위 민간위원 77명 가운데 시민단체·노동계·종교계 출신은 24명(31.2%)인 데 비해 원자력 등 에너지 분야 민간 전문가는 사실상 한 명도 없다. 탄소중립위는 현재 자체 홈페이지도 없이 활동하고 있다.

◇“탄소 중립보다 탈원전을 우선시해”

정부는 지난 6월 탄소중립위에 넘긴 방안에서 2050년 태양광을 480.1GW(기가와트), 풍력은 41.6GW 수준으로 급격히 끌어올리는 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한 해 늘어난 태양광·풍력 설비의 121배로 늘리는 속도전이다. 태양광 패널로만 서울 면적의 10배 이상을 덮어야 하는 규모다. 그러나 5일 발표된 ‘탄소 중립 시나리오’는 30년 뒤의 탄소 배출을 현재 대비 0~4% 수준으로 꿰맞추기 위해 단순히 ‘숫자’만 나열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한 비용도 언급하지 않고, 태양광과 풍력의 보급 규모조차 제시하지 않았다.

‘탈원전’에 편중된 시나리오도 우려를 낳고 있다. 탄소중립위는 2050년 원전 비율을 6.1~7.2% 정도로 고정하고 나머지는 태양광·풍력과 신재생 에너지로 채운다는 방안이다. 유럽연합 합동연구센터(JRC)가 올 3월 발표한 ‘원자력 환경영향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3세대 원전은 약 100년 가동 시 생산되는 전력량인 1조㎾h(킬로와트시)당 중대 사고로 나올 수 있는 사망자 수가 0.0008명에 불과하다. 이는 태양광(0.03명), 육상 풍력(0.2명), 해상 풍력(1명)보다 훨씬 적다. 온실가스 배출량도 원전은 100만㎾h당 28t으로, 태양광(85t)의 3분의 1 수준이다. 한 에너지 전문가는 “안전성과 탄소 감축 효과가 입증된 원전을 홀대하는 것은 결국 탄소 중립 달성보다 탈원전 정책 고수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8월 충북 청주 상당구 가덕면에 태양광 시설이 펼쳐져 있다. 보물 제511호인 계산리 오층석탑 인근 6만6309㎡ 임야의 나무를 베고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5일 탄소중립위원회는 현재 29% 수준인 원전 발전 비율을 2050년까지 6~7%로 축소하고 대신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는 57~71%로 늘리는 내용을 담은 2050 탄소 중립 시나리오 초안을 발표했다. /신현종 기자

◇비용 얼마나 들지 추산도 안 해

탄소중립위는 탄소 중립을 위해 필요한 비용에 대해 “30년 후 미래 비용을 현재 시각으로 분석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정용훈 카이스트 교수는 “시나리오에 나온 가정들을 갖고 충분히 비용 분석이 가능한데도 탈원전에 따른 비용이 너무 크게 나올 것 같으니까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라며 “정작 돈을 낼 국민에게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라는 식”이라고 했다.

국책 연구기관 종사자를 제외하고 민간 에너지 전문가를 탄소중립위에서 배제한 채 탄소 중립 시나리오를 작성한 것도 문제로 꼽힌다. 여기에 더해 정부는 “15세 이상 청소년을 포함한 시민 500명이 모여 학습과 숙의를 걸쳐 시나리오를 결정하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오는 7일 가동할 예정인 ‘탄소중립 시민회의’를 통해 최종적으로 의견 수렴을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비전문가들이 정부가 정해놓은 비현실적인 세 가지 안 가운데서 형식적으로 승인하는 절차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겉핥기식 의견 수렴 기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탄소중립위가 정부안을 더 복잡하게 만들어 놓은 것도 문제다. 정부는 당초 원전과 LNG(액화천연가스)를 각각 7%대로 유지하면서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을 60% 안팎으로 늘리는 두 가지 안을 제시했으나, 탄소중립위는 이를 56.6~70.8%의 세 가지 안으로 늘렸다. 탄소중립위는 “2050년 전기·수소차 비율을 76~97%로 늘리자”며 기술 혁신 가속을 제안했다. 철강 부문에서 수소 환원 제철 기술을 100% 도입해 기존 고로를 모두 전기로로 전환하고, 시멘트 소성로에 들어가는 유연탄의 60%는 폐합성수지로 대체하는 방안 등도 포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