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코로나발(發) 글로벌 경기 침체로 주춤했던 지구 대기(大氣) 중 이산화탄소(CO2) 농도가 최근 다시 치솟고 있다. 세계가 코로나 충격으로부터 조금씩 회복하면서 지구가 다시 뜨거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작년 한 해 코로나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일시 감소했지만, 기온 상승을 1.5도 이내로 억제하겠다는 기후 대응 목표에는 크게 못 미친다. 올해 경제가 회복되면 탄소 배출이 다시 증가할 전망이어서 기후 문제에 새로운 접근법과 혁신적인 기술의 도움이 필요해졌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화염에 둘러싸인 지구가 마스크를 쓴 모습을 형상화했다. /그래픽=양인성,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18일 미국 하와이 마우나로아(Mauna Loa) 화산 중턱에 설치된 이산화탄소 농도 측정기에는 ’417.73′이란 숫자가 찍혔다. 전 세계 이산화탄소 농도의 준거 지표인 마우나로아산에서 측정한 대기 중 이산화탄소 수치가 417.73㏙(피피엠·100만분의 1을 나타내는 단위)이란 뜻이다. 지난 3월 평균 이산화탄소 농도는 417.14㏙으로 기존 최고치였던 작년 5월 평균치(417.10㏙)를 넘어섰다. 이산화탄소 농도는 식물의 생장과 사멸에 따라 계절별로 오르내리는 가운데, 인류가 배출하고 있는 탄소가 누적되면서 해가 갈수록 꾸준히 우상향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오는 5월쯤 탄소 농도는 420㏙에 육박할 전망이다. 코로나 사태에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제시했던 ‘기후변화 마지노선’인 450㏙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이다.

세계는 과거 전쟁·경제위기 등 여러 차례 외부 요인을 통한 탄소 감축을 경험했다. 1973년 1차 석유 파동과 2차 파동(1979년), 소련 해체(1991년),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시기에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잠시 감소했다. 하지만 경제위기에서 탈출하고 나면, 탄소 농도는 곧바로 상승 추세로 바뀌었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각국이 앞다퉈 국경을 봉쇄하던 작년 상반기에 탄소 배출량은 잠시 하향 곡선을 그렸지만 작년 하반기부터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사태는 비(非)자발적 방식으로는 지속적인 탄소 감축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다”고 했다.

작년 연간 기준으로는 탄소 배출이 소폭 줄었다. 그랬는데도 기후 위기가 닥쳤다. 과거의 탄소 배출이 오늘의 재앙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세계기상기구(WMO)는 19일 발표한 기후보고서에서 “지난해 전 세계적인 기후 위기는 가차 없이 격화됐다”며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한 봉쇄 조치로 탄소 배출이 일시적으로 감소했지만 이는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에 뚜렷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했다. WMO는 “지난해에도 지구온난화는 더 가속화됐다”며 “다수의 이상기후 현상이 세계 기록을 세웠다”고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그린란드와 남극에서 수천억t의 얼음이 녹아 해수면이 상승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는 기록적인 홍수가 일어났고, 작년 여름 미국 루이지애나를 강타한 허리케인 ‘로라’는 190억달러(약 21조원)의 손실을 초래했다. 또 지난해에는 지구 기온에 냉각 효과를 주는 라니냐가 있었는데도 2016년, 2019년과 마찬가지로 역대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됐다.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 평균 기온보다 1.2도 더 상승한 것이다.

국제 연구진들이 참여한 ‘탄소 감시(Carbon Monitor)’ 프로그램에 따르면, 작년 한 해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은 전년 대비 6.4%(23억t) 감축된 것으로 추산됐다. 하지만 파리협정이 목표한 ‘기온 상승 1.5도 이내 억제’를 달성하려면 세계가 향후 10년간 매년 7.6%의 탄소 배출을 줄여나가야 한다. 탄소는 매년 누적되면서 증가하기 때문에 진행 경로를 돌려놓는 일은 매우 힘들다. 올해는 경기 회복세에 따라 탄소 배출량이 작년보다 증가세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탄소 감축을 위해서는 기존과 다른 접근법과 혁신적인 기술의 도움이 필요해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2월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을 출간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기후변화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추구해서 대응해야 하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라며 “핵분열(원자력발전소), 핵융합, ‘그린 수소’(생산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이 없는 친환경 수소) 등 모든 가능성을 탐구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