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하류 철새 도래지(문화재보호구역) 재조정을 놓고 주변 지방자치단체와 환경 단체 간 공방이 일고 있다. 부산 강서구·사상구 등 낙동강 하류 철새 도래지를 끼고 있는 부산의 네 구는 “사람 사는 곳이 달라지고 철새가 오는 곳도 바뀌었으니 문화재보호구역(이하 문화재구역) 재조정이 필요하다”고 문화재청에 요청했다. 하지만 환경 단체들은 “무분별한 개발에 미래 자산인 자연환경을 희생하려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부산 낙동강 하류 끝에 위치한 사하구 을숙도생태공원(①) 갈대밭 위로 철새 떼가 날아 오르고 있다. 철새 도래지인 강서구 대저동과 북구 구포동을 잇는 구포대교 부근 강 주변(②)으로 아파트 등 주거지와 공단 등이 들어서 있다. /김동환 기자·부산시

5일 낙동강 하류 지역 지자체 등에 따르면 최근 부산 강서구의 낙동강 하류 철새 도래지의 문화재구역 재조정 건의에 따라 문화재청이 심의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현재 사상·사하·북구와 부산시 등 관련 지자체의 의견을 듣고 있다. 부산시 문화유산과는 “강서·사상구 등 네 구의 의견을 취합하고 관련 자료를 검토하는 중”이라며 “향후 을숙도 등 낙동강 하류 현장 조사를 한 뒤 문화재청 측에 의견을 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상구 등 네 구는 부산시에 “부산신항·각종 산업단지·에코델타시티·명지국제신도시 조성 등 변화된 주변 환경과 여건을 반영해 문화재구역 중 일부를 해제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낙동강 하류 철새 도래지는 1966년 국가지정문화재인 천연기념물 179호로 지정, 문화재구역이 됐다. 당시 을숙도 등 낙동강 하류는 국내 최대의 철새 도래지였다. 지정 규모는 103.3㎢. 문화재구역으로 지정되면 해당 지역에서 반경 500m 이내의 건물 증·개축 등 각종 개발 행위가 제한된다. 문화재구역 지정 후 주변에 생곡 쓰레기매립장, 녹산 국가산업단지, 미음 산업단지 등이 조성됐다. 이런 과정에서 철새 도래지 문화재구역이 12차례 재조정됐다. 마지막이었던 2011년 재조정까지 지정 구역 16.1㎢가량이 해제됐다. 현재 87.2㎢가 문화재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강서구는 재조정 건의에서 서낙동강 신호대교 북부와 평강천, 맥도강과 인근인 을숙도 생태공원 상부, 신호대교~르노삼성대로 상부와 엄궁대로~공항로 상부 등에 대해 전체 혹은 일부 해제를 요청했다. 해제 요청 구역의 총면적은 19.4㎢다. 강서구 관계자는 “12년 전 재조정 이후 낙동강 하류 지역에선 에코델타시티, 명지국제신도시 1~2단계, 부산 신항 추가 배후 부지 등 국가·지자체 프로젝트 20여 건이 시작됐거나 계획돼 있다”며 “이런 변화를 반영해 문화재구역을 현실에 맞게 고칠 필요가 있어 재조정을 건의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문화재구역 주변은 자기 땅에 작은 행위만 해도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행정력이 낭비되고 사유재산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다”며 “주민들의 이런 불합리한 불편과 권리 제한도 해소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형찬 강서구청장은 “재조정 건의는 무조건 해제하자는 게 아니라 철새가 많이 오는 곳은 좀 더 철저히 보호하고, 철새가 오지 않거나 확연히 줄어든 곳은 규제를 풀어 친수 공원 등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환경 단체는 반발하고 있다. 박중록 ‘습지와 새들의 친구’ 운영위원장은 “낙동강 하류는 국내 대표적 철새 도래지이지만 지자체들의 난개발로 몸살을 앓고 있다”며 “철새 도래지를 축소하고 토건 개발을 할 것이 아니라 매년 수천만 명이 찾는 관광지가 된 독일 갯벌국립공원처럼 낙동강 하류 철새 도래지도 잘 보존해 지역의 미래 먹거리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석환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는 “196국이 참여하는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COP15)가 지난달 육지 보호구역을 현재 17%에서 30%로 늘리기로 했다”며 “가치가 높은 보호구역을 줄이려는 시도는 세계적인 추세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지자체와 환경 단체의 의견, 낙동강 하류 생태계 조사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친 뒤 최종 결론을 내린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