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경북 울진군 울진읍의 한 일식당(비스트로백호)에선 고소한 새우 냄새가 났다. 메뉴판에 없는 음식이었다. 식당 주인 백호현(37)씨는 이날 아내와 함께 새우죽 100인분을 끓여 울진 산불 이재민들이 있는 울진국민체육센터로 향했다. 백씨는 “이틀 전엔 도시락을 만들어 보냈는데 생각해보니 나이가 있으신 분이 많을 것 같아 드시기 쉽게 죽으로 바꿔봤다”면서 “마음은 집을 지어드리고 싶은데 할 수 있는 게 밥을 짓는 일이라 밥을 지었다”고 말했다.
지난 4일 대형 산불이 발생해 나흘째 계속되고 있는 경북 울진군에서 피해 주민들을 도우려는 시민들의 작은 온정이 이어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산불 피해가 적은 주민들이 이재민을 위해 자발적으로 밥을 짓거나, 약품을 보내는 등 시련 속에서 이웃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백호현씨가 메뉴에 없는 음식을 처음으로 만든 것은 지난 5일이었다. 대형 산불이 울진을 덮친 것을 본 백씨는 이재민들을 위해 김치와 어묵, 소불고기 등 반찬 5개를 담아 도시락 70인분을 만들었다. 한때 불길이 자택 방향으로 향한다는 소식을 듣고 백씨는 소화기를 들고 이웃과 함께 불을 끈 뒤, 다시 식당으로 돌아와 도시락을 만들었다. 산불 때문에 손님이 급격히 줄어들었지만 백씨는 아내와 함께 이재민들을 위한 음식을 계속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백씨는 “힘든 이웃을 돕고 싶을 뿐”이라면서 “내일은 닭죽을 만들어 드릴 것”이라고 했다.
백씨처럼 이재민들에게 작은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이웃은 한두명이 아니다. 울진읍 삼화당약국 주인 최은경(50)씨는 산불이 나 이재민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한 4일 상비약을 챙겨 울진국민체육센터를 직접 찾았다. 최씨가 준비한 약통에는 타이레놀 등 해열제와 감기약, 산불로 놀랐을 어르신들을 위한 청심환, 소화제와 지사제 등 37만원어치가 넘는 약품이 담겨 있었다. 최씨는 “이웃분들에게 필요한 약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울진읍의 한 분식집 사장 A씨는 지역 맘카페에 글을 올려 함께 김밥을 만들 자원봉사자를 구했다. A씨는 지난 5~6일 주말 동안 가게 문을 닫고 직원과 자원봉사자 등 40여 명과 함께 김밥 2000여 개를 만들어 이재민과 울진군청 공무원, 소방대원 등에게 나눠줬다. 울진군에 있는 사찰인 불영사의 승려와 인근 주민 10여 명도 지난 6일 새벽 4시부터 아침용 김밥 800개와 주먹밥 200개, 점심용 주먹밥 1000개를 싸서 소방대원들에게 보냈다. 불영사 관계자는 “군청 쪽에 우리가 도와드릴 게 없느냐고 물어보니 소방관분들 식사가 부족하다고 해서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중화요리를 만드는 진아반점에서는 짜장밥 45그릇을 만들어 소방관들에게 대접했다.
전국 각지에서 울진군 이재민들을 돕기 위한 구호품도 쇄도하고 있다. 5년 전 지진 피해로 이재민이 대거 발생했던 경북 포항시에선 생수 4000개와 칫솔 2000개, 컵라면 100박스를 보냈다. 대구시도 컵라면 5040개와 생수 1만개 등을 보냈다. 서울시에선 수돗물인 아리수 4000병을, 전남 강진군은 햇반 등 2100만원 상당 구호품을 울진군에 지원했다.
자원봉사자들의 발길도 이어지고 있다. 7일에는 39개 단체 551명이 울진에서 산불 피해 주민 급식 지원 등 봉사 활동을 했다. 6일 30개 단체에서 9개 단체가 늘어났다.
생업을 뒤로하고 산불 현장에 뛰어든 의용 소방대원들도 있다. 지난 5일 강원 강릉에서 동해로 산불이 옮아붙자 산불 진화에 나선 의용 소방대원 이승교(55)씨는 “의용 소방대원 모두 학원이나 가구 공장을 운영하는 등 직업이 있지만 산불을 끄려고 모였다”면서 “이번 불로 삶의 터전을 잃은 이웃들을 위해 힘을 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