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남해군에서 계모의 폭행으로 숨진 여중생은 수년간 계모로부터 폭행 등 학대를 받았던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특히 폭행은 남편과의 별거 직후인 지난 3월 이후 집중됐고, 사건 발생 당일엔 2시간 가량 무차별 폭력이 가해졌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외부 충격에 의한 장기 손상이 있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의의 구두 소견을 바탕으로 계모가 딸의 복부를 발로 밟은 것이 결정적 사인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충분히 딸이 사망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무차별로 때리고, 또 별다른 구호 조치 없이 방치해 끝내 사망케 한 혐의로 계모에게 아동학대 살해죄를 적용하기로 했다. 기소 전 송치 단계이지만, 지난 3월 신설된 일명 ‘정인이법’을 적용한 첫 사례다.
경남경찰청 여성청소년범죄수사대는 의붓딸(13)을 때려 숨지게 한 계모 A씨를 상습학대 및 아동학대 살해죄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1일 밝혔다. A씨는 지난달 22일 남해군 고현면 한 아파트에서 의붓딸 B양을 폭행해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A씨는 이날 오후 9시30분부터 11시30분까지 집안 부엌과 거실 등에서 2시간 가량 B양을 폭행했다. 폭언과 함께 손으로 밀치고, 발로 차거나 급기야 발로 B양의 복부를 밟았다. 이 과정에서 B양은 화장실 변기 모서리에 부딪히기도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곧장 B양 상태가 좋지 않았음을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 B양이 숨을 가쁘게 쉬고 몸이 축 늘어지는 것을 봤고 폭행을 멈췄다는 진술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 B양 상태는 이미 위급했던 것으로 보인다. A씨가 다른 일을 하다가 안방에 있던 B양에게 말을 걸자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A씨는 곧장 119에 신고하거나, 병원으로 B양을 옮기지 않고 별거중인 남편에게 연락했다. A씨의 연락을 받은 남편이 집에 도착한 시각은 23일 새벽 2시30분쯤이다. 남편은 경찰에 “이미 아이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며, 도착 당시 이미 딸이 사실상 사망 상태였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부부는 새벽 4시 14분쯤에야 119에 신고했다. 소방 공동 대응 요청으로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주거지에서 A씨를 체포했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지난 3월 무렵부터 남편과 별거했다. 사건 당일 오전엔 남편과 이혼 서류를 접수했다. 이후 자녀 양육 문제를 두고 남편과 오후 9시쯤 20~30분 간 통화를 하면서 다시 한번 다퉜다. 이 와중에 B양이 음식을 먹은 후 구토를 하자, A씨의 폭행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B양의 동생 2명도 누나가 A씨로부터 무차별 폭행 당하는 것을 목격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B양 진료기록, A씨와 B양 동생 진술 등을 근거로 B양에 대한 A씨의 폭행이 이날 뿐만 아니라 이전부터 상습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다. A씨 또한 “B양이 초등학교 5학년이던 시기부터 때렸다”는 취지로 경찰에 진술했다. 경찰이 객관적 자료로 확인한 학대는 4건이다.
경찰은 특히 사건 발생 직전인 지난달 초 B양이 장염 증세로 병원 진료를 한 부분에 주목했다. A씨로부터 앞서 5월쯤 B양의 배를 밟았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A씨는 B양을 목욕시키면서 배가 부풀어 오른 것도 봤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국과수로부터 “외부 충격에 의해 장기 손상이 보인다”는 구두 소견을 받았다. 사건 당일 폭행 이전에 이미 B양이 복부 통증을 호소했던 것이 확인된 만큼 A씨가 이미 B양의 몸 상태가 나빠진 것을 알고도 배를 밟은 것이 결정적 사망 원인이 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아이의 배가 나오고, 복통을 호소한 정황이 있고, 경찰 조사에서도 B양 배를 많이 밟았다고 진술했다”며 “자신보다 왜소한 아이였고, 기존에 허약한 상태였다는 점, 집중적으로 장시간 때렸다는 점에서 자신의 행위로 인해 딸이 사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을 것이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 같은 점을 들어 A씨에게 상습학대와 함께 살해의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해 아동학대 살해죄를 적용하기로 했다.
A씨를 체포하고, 구속영장을 신청 때 적용한 혐의는 아동학대치사였다. 지난 2월 신설된 아동학대 살해죄는 일명 정인이법으로도 불린다.
현행 대법 양형기준에 따르면 살인죄는 기본 양형이 10년~16년으로 가중 요소가 부여될 경우 무기징역 이상의 중형 선고도 가능하다. 하지만 아동학대치사죄는 기본적으로 4~7년의 형량을 정하도록 하고 있다. 여기에 반복적 범행, 학대 정도가 심각한 경우, 범행 동기가 나쁜 경우 등 가중 요소가 있을 때 징역 6~10년으로 선고 형량 범위를 높일 수 있다. 아동학대치사죄로 기소된 경우 아동이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형량을 받게 될 소지가 높은 것이다.
아동학대 살해죄의 경우 사형이나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해 아동학대치사죄보다 처벌이 강화됐다. 형법상 일반 살인죄(5년 이상 징역)보다 처벌이 무겁다. 기소 전 송치 단계이긴 하지만 정인이법이 신설되고 나서 처음으로 경찰 송치 단계에서 혐의가 적용된 이가 A씨다.
경찰은 또 B양 뿐만 아니라, B양 바로 밑 동생에 대한 학대 정황도 확인했다. B양 밑으로 초등학생과 미취학 동생이 있다. 경찰은 A씨로부터 B양 뿐만 아니라 바로 밑 동생에 대해서도 한차례 폭행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다만 경찰은 아이들의 심리 상태가 불안해 피해자 진술은 따로 받진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의 세 자녀 중 B양과 바로 밑 동생은 별거중인 남편이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녀다. 막내만 A씨와 남편 사이에서 낳은 자녀다.
경찰 관계자는 “B양은 평상 시 엎드려 있거나 창백한 얼굴을 종종 보여 친구들이나 담임교사도 ‘괜찮냐’고 물어보기도 했지만, ‘괜찮다'고 하거나 ‘엄마가 잘해준다’는 식으로 이야기했고, 주변에서도 B양이 학대를 당하고 있었는지 몰랐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경남교육청은 의붓딸이 올해 3월 중학교 입학한 후 지난달 22일까지 질병을 사유로 7일 간 결석을 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6월 들어서도 조퇴를 4차례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B양 학대를 누구도 의심하지 못했다.
한편, 이날 검찰로 송치되면서 A씨는 기자들의 질문에 고개를 숙인 채 대답없이 흐느끼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