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훈련 명소’로 유명세를 탄 예천은 전국에서 몰려든 체육 관계자 덕분에 지역 경제가 활기를 띠고, 인구 감소세가 둔해졌다. 지난 2월 경기 하남의 남한고 육상부 학생들이 예천 스타디움 인근 고깃집에서 회식하는 모습. /신현종 기자

“전지훈련 성수기인 방학 때면 매출이 평소보다 20% 뜁니다. 운동하는 학생들이 자식처럼 예쁠 수밖에요.”

지난 2월말 경북 예천군 예천스타디움 근처의 한 고깃집. 주인 권신자(63)씨는 연방 웃으며 10대 여학생 10여 명에게 삼겹살을 구워주고 있었다. 이날 식당을 가득 채운 손님은 3주 일정으로 전지훈련을 온 경기도 하남의 남한고 육상부 선수들과 코치진이었다. 권씨는 “동네 손님만 받아서는 장사가 어려운데, 훈련하는 선수들의 단체 예약 덕분에 주변 식당이 죄다 북적인다”고 했다. 인근의 다른 식당 주인 강숙향(48)씨는 “젊은 학생들이 단체로 돌아다니니 동네가 활기찬 느낌이 들어 좋다”고 했다.

최근 예천군 지역 경제는 전국의 육상·양궁 선수들이 떠받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도권을 비롯해 전국 초·중·고·대학교와 실업 양궁·육상 팀이 전지훈련이나 대회 참가를 위해 5만여 인구의 소도시 예천을 찾는다. 작년에만 이런 방문객이 연인원으로 12만명에 달한다. 하루 이틀 머무는 ‘뜨내기’가 아니라 짧게는 2주, 길게는 두 달 정도 예천에서 머무르기 때문에 지역 상권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 이들이 지갑을 연 덕분에 자영업이 활성화되고, 경기가 좋아지면서 대도시 지역으로 빠져나가는 인구가 줄어드는 효과로 이어진다. 예천 진호국제양궁장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김소현(34)씨는 “예전에 없던 20~30대가 좋아하고 즐길 만한 가게가 많이 생겨 생활이 한층 편해졌다”고 말했다.

경북 예천의 실내 훈련장에서 선수들이 달리기 훈련을 하고 있다./예천군

◇첨단 훈련장 지어 무료로 빌려준 예천

한국고용정보원이 작년 9월 발표한 지방소멸 위험지수에 따르면, 전국 229개 시군구 중 62곳(27%)이 ‘위험’ 단계 이상이다. 5년 전 22곳보다 3배 가까이 증가했다. ‘경계’ 단계인 지역(55곳)까지 더하면 전국 지자체의 절반이 넘는 117곳(51%)이 지방 소멸 위기가 눈앞에 닥친 셈이다.

이런 지역에서 나타나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일자리 감소와 자영업 몰락으로 지역 경제가 급속도로 나빠지는 것이다. 이런 심각성 때문에 비수도권 지역에선 수년 전부터 지방 소멸 대응 전략 마련에 사활을 걸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관광 인프라 개발을 통한 방문객 유치다.

하지만 예천군은 전지훈련 수요와 스포츠 대회 참가를 위해 방문하는 ‘체류형 생활 인구’를 늘리는 데 투자를 집중했다. 축구나 야구 같은 ‘전국구’ 인기 스포츠가 아닌 육상과 양궁 두 종목에 집중적인 투자를 쏟아부었다. 작년 11월 총 246억원을 들여 대한육상협회 육상교육훈련센터를 지었다. 예천스타디움 옆에는 국내 유일의 실내 돔 육상 훈련장을 만들었고, 군 차원에서 의무 트레이너를 섭외해 훈련 중인 선수들의 부상 관리도 해준다. 지역 특산품을 선수들 간식으로 제공하고, 훈련장 대관 비용도 따로 받지 않는다.

예천군은 “예천스타디움 등 기존의 체육 시설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꾸준하게 신규 스포츠 인프라에 투자했다”며 “전지훈련과 육상·양궁 등 스포츠 대회 유치를 통해 얻는 직·간접적 경제 효과가 연간 200억원 이상”이라고 밝혔다. 예천이 스포츠 도시로 유명세를 타면서 쌀이나 지역 특산품 판매가 늘어나는 부수 효과가 생겼고, 자영업자와 신규 일자리도 늘었다. 예천군 관계자는 “당장 예천스타디움을 운영하는 직원이 과거보다 4배 정도 늘었다”고 했다.

그래픽=박상훈

◇군인들 빠진 양구, 스포츠 도시로 부활

스포츠에 투자해 지방 소멸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지역은 예천군만이 아니다. 지난 2017년 국가대표 선수촌이 문을 연 충북 진천군은 2020년 527억원을 들여 축구장, 야구장, 테니스장, 다목적 체육관 등을 갖춘 종합스포츠타운을 준공했다. 전국 단위 체육 대회를 대거 유치하며 연간 12만명가량이 방문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로 인구가 늘고 있다. 진천군은 2006년(6만111명)부터 지난해(8만6580명)까지 19년 연속 인구가 증가했다.

군부대 의존도가 높던 강원 양구군은 2019년 육군 2사단 해체로 병력 2300명이 빠지면서 지역 경제가 휘청거렸다. 하지만 양구 종합운동장 등 체육 인프라를 바탕으로 유도, 축구, 배드민턴 등 각종 대회와 전지훈련 인원을 유치하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작년에만 총 32만명 넘는 스포츠인이 양구를 찾았다. 충남 청양군은 타지역 운동선수와 스포츠 관람객이 대회가 끝나고도 며칠씩 더 머무를 수 있도록 관광지 순환 셔틀버스와 농촌 체험, 전통시장 할인 등을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