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북구 전남대학교 전경./전남대 제공

고등교육 기관 대학의 교직 이수 과정에 학교 폭력 예방 교과목이 있다. 일선 초·중·고등학교에서 학교 폭력이 도를 지나칠 정도로 늘어나자 예비 교사에게 미리 예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관련 법령상 고등은 대학, 초·중등은 초·중·고등학교로 나뉜다.

묻고 싶다. 정말 효과가 있을까. 학교 폭력 예방 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 애초에 폭력이 고개를 들 수 없게 하면 되지 않나.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함께 있으면 서로 즐거운 우정, 일상생활에 서로 도움이 되는 우정, 서로 존경하는 우정이 있다”고 했다. 그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우정을 인간사 최고의 덕목 중 하나로 봤다. 교실에서 ‘우정’이 가득하면, 폭력이 들어설 자리는 사라질 것이다. 수업은 활기가 넘칠 것이다. 인성 교육의 나침반은 ‘우정이 가득한 교실 만들기’를 가리켜야 한다.

로마 웅변가이자 정치가 ‘키케로’는 “신들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 우정”이라고 했다. “우정은 지상에서나 천상에서나 모든 사물에 관한, 선의와 호감을 곁들인 감정의 완전한 일치이며 상호 호혜적 관계이다.” 우정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엄청난 가치를 가졌다는 뜻이다.

선물을 잘 간직할 것인가, 혹은 버릴 것인가는 선물 받은 사람의 태도와 결정에 달렸다. 이미 하늘에서는 인간에게 선물을 보냈고 결정은 인간의 몫이다.

또한 키케로는 ‘우정에 관하여’에서 “친구 간의 상호 선의에서 안식을 얻지 못하는 삶이 어떻게 살 만한 가치가 있겠는가? 자네가 마치 자네 자신과 말하듯 무엇이든 마음껏 더불어 말할 수 있는 누군가를 갖는다는 것만큼 감미로운 일이 또 있겠는가? 자네가 번영을 누릴 때 자네 못지않게 그것을 기뻐해 줄 누군가가 없다면 어떻게 그것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겠는가? 자네가 고통스러울 때 자네 자신보다도 더 괴로워하는 사람이 없다면 불운은 그 고통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이 된다네”라고 했다.

고통에 대한 괴로움보다 그 고통을 나눌 친구가 없다는 게 더 고통스럽다고 키케로는 역설했다. 우정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옛 선각자의 통찰은 지금도 적용된다. 학교 수업은 우정을 만들 최고의 기회 공간이다. 특히 10대 때 친구는 더욱 중요하다. 서로 엄청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우정의 가치를 강조하면, ‘진정한 친구를 하나만 얻는다면 인생의 반은 성공이다’라는 격언이 현실이 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교실은 삭막하다. 우정이 제대로 싹트지 않고 있다. 함께 공부하는 친구와의 교감은 뒷전으로 밀렸다. 학교는 학생들이 교감하며 우정을 나눌 수 있게 책임져야 한다. 지식 습득 요령만 강조하며 내버려둬선 안 된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사람 간 연결이 어려워지고 있다. 이럴수록 학교는 우정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강조해야 한다.

박주희 박사

전남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교육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