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화재가 발생한 대전 대덕구의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안전공업’ 공장. 이 화재로 사망 14명, 부상 60명 등 74명의 사상자가 났다. 공장 천장 배기관의 기름때가 불이 빠르게 확산한 원인으로 지목됐다. /신현종 기자

지난 20일 대전 대덕구의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안전공업’에서 불이 나 근로자 14명이 숨지고 60명이 다쳤다. 화재 당시 연락이 두절됐던 14명이 주말 새 전부 숨진 채 발견됐다. 2024년 6월 경기 화성의 리튬 배터리 제조업체 아리셀에서 불이 나 근로자 23명이 숨진 지 2년 만에 산업 현장에서 또 대형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소방 당국은 다른 시·도의 소방력까지 동원하는 ‘국가 소방 동원령’을 내리고 산불 헬기까지 투입했지만 조기 진화에 실패했다. 불을 끄기까지 10시간 30분이 걸렸다.

물에 닿으면 폭발하는 나트륨이 공장 옆에 쌓여 있어 적극적으로 진화에 나서지 못했다. 나트륨을 옮기느라 2시간이 지체됐다. 그사이 불은 급속도로 확산했다. 공장 천장의 배기관에 낀 기름때는 불쏘시개가 됐다. 숨진 14명 중 9명은 불법 설치한 헬스장에서 발견됐다. 생산 라인에 스프링클러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공장은 샌드위치 패널로 만들어 유독가스를 내뿜었다.

근로자들은 높이 약 10m 2층에서 뛰어내리는 등 필사적으로 탈출했다. 이 바람에 부상자가 60명 나왔다.

불이 난 안전공업은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들어가는 엔진 밸브를 국산화해 수출하는 중견기업이다. 은탑산업훈장까지 받았다.

안전 전문가들은 “이런 기업조차 허점투성이인 사실이 드러났다”며 “리튬, 나트륨 등 위험 물질을 다루는 공장에 대한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화재 원인을 조사하고 있는 경찰은 “공장 1층 생산 라인에서 처음 불꽃이 일었다는 직원 진술이 있어 조사 중”이라고 했다.

정부는 22일 대전시청에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설치했다.

◇배기관엔 기름때, 공기엔 유증기 둥둥… 공장 전체가 불쏘시개였다

20일 발생한 ‘안전공업’ 화재는 불이 순식간에 확산하면서 피해를 키웠다. 소방 당국은 20일 오후 1시 17분쯤 이 공장 동관 1층에서 처음 불이 난 것으로 추정했다. 직원들은 “화재 발생 2분 만에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고 했다. 소방 당국 관계자는 “화재 신고를 접수하고 4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는데 이미 공장 전체가 검은 연기에 휩싸여 있었다”며 “직원들은 2층에서 뛰어내리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픽=이철원

◇천장 배기관 기름때가 불쏘시개

공장 천장 배기관의 기름때가 불을 키우는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남득우 대전 대덕소방서장은 “들어가 보니 절삭유 기름때가 천장에 많이 묻어 있었다”며 “집진 설비나 배기관에 슬러지(찌꺼기)가 많이 끼어 있어 그걸 타고 순식간에 번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 공장은 금속을 잘라 엔진 밸브를 만든다. 그 과정에서 금속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 절삭유를 뿌린다고 한다. 이 때문에 공장 내부에선 항상 기름 냄새가 났다고 한다. 한 전직 직원은 “안경에 기름막이 낄 정도”라고 말했다. 배기관을 설치했지만 관리는 소홀했던 것으로 보인다. 2023년 생산 라인에서 튄 불티가 배기관을 타고 올라가 집진 설비에 불이 난 적이 있다고 한다. 한 생존 직원은 “배기관 내부를 청소하는 걸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조종호 대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기름 냄새가 심했다는 건 ‘유증기’가 실내에 항상 가득 차 있었다는 뜻”이라며 “공장 구조도 강당처럼 뻥 뚫린 형태라 불이 순식간에 퍼졌을 수 있다”고 했다.

불은 초기 진압이 중요하지만 공장 옆에 쌓아둔 나트륨이 발목을 잡았다. 이 공장은 고성능 엔진 밸브를 만들 때 나트륨을 썼다. 나트륨은 냉각 성능이 뛰어나지만 물에 닿으면 폭발하는 위험 물질이다. 당시 창고에는 나트륨 101㎏이 쌓여 있었다. 소방 당국은 이 나트륨을 안전한 곳으로 옮긴 뒤에야 본격적으로 진화를 시작했다. 약 2시간 만이었다.

화재 당시 생산 라인에도 나트륨이 있었는지는 확인해야 할 부분이다. 소방 당국 관계자는 “안전공업은 지난달 나트륨을 허가받은 양보다 많이 반입·사용한 사실이 적발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무허가 설치한 헬스장에서 9명 사망

이번 화재로 숨진 14명 중 9명은 공장 2층 구석에 있는 헬스장에서 발견됐다. 이 헬스장은 불법 설치한 복층 구조물로 파악됐다. 대덕구청은 “무허가 시설로 도면이나 대장에도 없다”고 했다.

헬스장은 2층 휴게실에서 3층 주차장으로 올라가는 경사로 아래에 만들었다. 소방 당국은 “공장 층고가 5.5m로 높아 복층 형태로 공간을 만들어 직원용 헬스장으로 활용한 것 같다”고 했다.

숨진 9명은 헬스장 안쪽 작은 창문 근처에서 발견됐다. 소방 당국 관계자는 “검은 연기, 유독가스 때문에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창문 쪽에서 숨진 것 같다”고 했다. 직원들은 “점심시간에 헬스장에서 쉬는 직원이 많았다”며 “화재 사실을 뒤늦게 알고 고립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불법 설치한 시설이라 대피로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한 생존 직원은 “헬스장이 동관 구석에 있는 데다 2층으로 내려오는 계단이 좁아 대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불이 난 동관 건물은 샌드위치 철골조로 지었다. 샌드위치 패널은 불이 붙으면 유독가스를 대량으로 내뿜는다. 열을 받으면 휘어 붕괴 위험도 크다. 실제 화재 현장을 보면 건물 가운데가 꺼지듯 내려앉았다. 이 때문에 소방이 진화·수색하는 데 애를 먹었다.

불이 난 공장에는 스프링클러도 설치돼 있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1996년 건물을 지을 당시 연면적이 1만5000㎡를 넘지 않아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대상이 아니었다고 한다. 2004년 기준이 5000㎡로 강화됐으나 그전에 지은 건물이라 빠졌다.

50대 직원 A씨는 “화재 경보장치는 울렸지만 점심시간인 데다 평소 오작동이 잦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고 했다. 회사가 안전 교육을 소홀히 했다는 증언도 나온다.

◇“1층 라인에서 불꽃” 진술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인 경찰은 “공장 1층 생산 라인에서 처음 불꽃이 튀었다”는 직원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공장은 점심시간에도 설비를 계속 돌려야 해 관리 직원을 배치한다고 한다. 당시 당번을 선 직원은 소화기로 불을 끄려고 했으나 실패해 대피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기계 설비에서 전기적 요인 등으로 튄 불꽃이 유증기와 만나 큰 불로 확산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아리셀 화재와 판박이”

전문가들은 이번 화재가 2024년 2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친 경기 화성 아리셀 공장 화재와 비슷하다고 했다. 리튬 배터리 때문에 진화에 애를 먹었던 아리셀 공장처럼 안전공업 공장도 나트륨 때문에 초기 진압에 실패했다. 리튬과 나트륨은 모두 첨단 산업에 필수적인 물질이지만 물에 닿으면 폭발하는 성질이 있어 위험하다. 두 곳 모두 공장 건물을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 유독가스가 급격하게 퍼진 점도 같다.

안전공업은 자동차·선박용 엔진 밸브를 제조하는 업체다. 1953년 설립된 중견기업이다. 현대자동차의 주요 협력 업체 중 하나다. 2024년 기준 매출액은 1351억원, 근로자 수는 364명이다. 국내 최초로 하이브리드 차량용 중공 밸브를 국산화해 수출하고 있다. 지난해 은탑산업훈장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