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부산 수영구 망미동에 있는 복합 문화 공간 ‘F1963’. 전국에서 온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철근을 끊어 와이어(wire)를 만들던 옛 고려제강 공장을 리모델링한 곳이다. F1963은 이 공장을 처음 지은 해인 1963년과 공장(factory)의 ‘F’를 합친 것이다.
소음과 먼지가 진동하던 공장은 카페와 갤러리, 도서관, 정원으로 바뀌었다. 지난해 60만명이 찾았다.
정문 안으로 들어가니 60년 전 공장의 골조와 기둥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1층 카페의 테이블은 공장에 있던 철판으로 만들었다. 영국 런던의 낡은 화력발전소를 미술관으로 바꾼 ‘테이트모던’이 떠올랐다. 화력발전소가 미술관이 되자 낙후한 템스강 이남 지역의 색깔이 바뀌었다. 지금은 런던의 ‘핫플레이스’가 됐다.
고려제강은 공장 주변에 집이 들어서자 2008년 낡은 공장을 경남 창원·양산 등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코스트코와 현대모터스튜디오를 유치했다. 메인 공장은 리모델링해 F1963을 만들었다. 기피 시설인 공장이 명소가 되자 어두웠던 동네 분위기가 바뀌고 땅값도 2~3배로 뛰었다. 주상복합 아파트를 지었으면 더 많은 돈을 벌었을 것 같다고 하자 홍영철 고려제강 회장은 “부산에 이미 아파트는 많다”며 “시민들이 문화를 즐기고 쉴 수 있는 공간이 더 필요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부산시는 작년 7월 세계디자인기구(WDO)로부터 ‘2028 세계디자인수도’로 선정됐다. 국내에선 2010년 서울에 이어 두번째다. 디자인 분야 국제기구인 세계디자인기구는 2년마다 세계 주요 도시를 심사해 세계디자인수도를 선정한다. 디자인을 통해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도시 혁신을 끌어내자는 취지다. 그동안 이탈리아 토리노, 핀란드 헬싱키, 스페인 발렌시아 등이 뽑혔다.
부산을 찾은 실사단이 가장 놀랐던 장소가 F1963이었다고 한다. 이안기 F1963 이사는 “공장 바닥재, 철판 등을 재활용해 폐기물을 최대한 줄인 점, 공장을 혁신해 지역에 기여한 점 등을 좋게 본 것 같다”고 했다.
실사단은 이 밖에 해운대 블루라인파크, 부산북항, 도모헌, 영도 봉산마을 등을 둘러봤다.
해운대와 송정을 잇는 해변 관광 열차인 해운대 블루라인파크는 동해남부선 폐선 부지를 친환경적으로 개발한 점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외국인 관광객 150만명이 해운대 블루라인파크를 찾았다. 도모헌은 옛 부산시장 관사다. 꽁꽁 잠긴 관사를 개방해 카페, 전시관으로 만들었다. 지난해 도모헌을 찾은 영국의 건축 디자이너 토머스 헤더윅은 “부산 지역 특유의 개방성과 포용성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다.
나건 부산시 총괄디자이너(동서대 석좌교수)는 “화려한 미디어 파사드를 선보인 경쟁 도시(중국 항저우)와 달리 부산은 과거와 현재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며 “구도심의 빈집 문제를 디자인으로 풀어내겠다고 하자 박수를 치더라”고 했다.
부산디자인진흥원이 2022년부터 운영 중인 ‘시민 공감 디자인단’도 실사단의 관심을 끌었다. 시민 공감 디자인단은 지역 주민과 디자이너, 공무원이 한 팀이 돼 동네의 ‘깨진 유리창’을 바꾼다. 강필현 부산디자인진흥원장은 “실사단은 주민이 함께 아이디어를 내고 지역 문제를 풀어내는 것을 보고 부러워했다”고 전했다.
세계디자인기구를 설득하기 위해 부산시와 산업통상부,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똘똘 뭉쳤다. 오미경 부산시 디자인산업혁신과장은 “부산의 야경을 잘 볼 수 있도록 실사단이 묵을 호텔 층수까지 신경 썼다”고 했다.
루이자 보키에토 세계디자인수도 조직위원장은 “6·25전쟁 때 피란민들이 모여 살던 달동네에 들어선 작은 카페와 작업실이 인상적이었다”며 “부산에는 바다와 산 등 자연뿐 아니라 ‘피란 수도’라는 역사 스토리도 있다”고 했다.
부산시는 디자인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오는 23일부터 일주일을 ‘WDC 부산 디자인 주간’으로 정하고 관련 행사를 잇따라 연다. 24일에는 부산항 국제전시컨벤션센터(BPEX) 5층 이벤트홀에서 ‘2028 세계디자인수도(WDC) 부산 국제 컨퍼런스’가 열린다. 조선일보와 부산시가 공동 주최하는 국제 행사다. 토머스 가비 전 WDO 회장 등 국내외 전문가가 ‘디자인을 통한 도시의 회복과 연결’을 주제로 토론한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디자인을 활용해 빈집이나 청년 인구 유출 등 문제를 해결하고 부산을 세계적인 도시로 만들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