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 계명대 동산병원장(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담당 교수진들이 계명대 동산병원이 양성자 치료기 도입에 대한 회의를 한 뒤 지난 2월 도입한 최첨단 방사선치료기 ‘Halcyon 4.0’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계명대 동산병원 제공

경북 경산에 사는 70대 A씨는 지난해 간암 진단을 받았다. A씨는 수술 후 항암 치료 등을 고려해 대구 지역 대학 병원에서 수술받으려 했지만, 자녀들이 서울 지역 대형 병원을 고집했다. 양성자 치료기 등 최신 의료 장비를 보유하고 있고, 이를 활용한 의료진의 진료 경험을 이유로 들었다. A씨처럼 서울에 있는 이른바 빅5 병원으로 원정 치료를 떠나는 비수도권 암 환자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김영주 국회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빅5 병원(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원정 진료 현황’ 분석 결과, 2018~2022년 이 병원을 찾은 경북 지역 환자는 12만4469명으로 서울·경기를 제외하고는 가장 많았다. 경남(11만9093명)이 그다음을 차지했다.

빅5 병원에서 원정 진료를 받는 경북 지역은 2018년 2만3320명에서 2022년 2만6769명으로 14.8%, 대구 지역은 같은 기간 1만874명에서 1만2951명으로 19.1% 늘었다. 경남 지역도 같은 기간 2만2447명에서 2만5531명으로 13.7%가량 증가했다. 비수도권 암 환자 원정 치료가 늘면서 이들 병원 인근에는 이른바 ‘환자촌’이 생기기도 할 정도다.

계명대 동산병원 최은철(방사선종양학과) 교수는 “다른 암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소아암 환자는 부모가 생업을 중단하고 수도권까지 원거리 치료를 다녀야 한다. 방사선 치료는 대개 20회 이상 매일 내원해야 하는 ‘분할 치료’가 원칙이기 때문”이라며 “지방 환자들이 숙박비 등 추가 비용을 지출하며 고통받는 현실을 고려하면 각 광역권별로 최소 한 곳 이상의 양성자 치료 센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계명대 동산병원 전경. 대구 달서구에 있는 동산병원은 고속도로 나들목과 인접해 있으며 서대구역 개통으로 KTX 및 SRT 접근성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동산의료원, 국내 세 번째 양성자 치료 센터 추진

계명대 동산병원은 지난해 7월, 대구·경북 지역 최초로 양성자 치료기 도입을 결정하고, 제조사 선정과 계약도 맺었다. 현재 수도권 병원 2곳(국립암센터·삼성서울병원)에서만 가능한 양성자 치료를 대구 지역에서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최근 의료계에서는 ‘장칠기삼(진단과 치료에 있어 장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7할, 의사의 손기술은 3할)’에서 ‘장구기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최첨단 장비 도입이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비수도권 의료기관에서 도입을 주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막대한 초기 도입 비용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국가 지원이 제한적인 사립 대학 병원이 원정 진료라는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해 환자들에게 보다 편한 진료 환경을 만들어내기 위해 결단을 내린 것이다. 도입 장비는 미국 프로톰사(PROTOM社)의 ‘싱크로트론(synchrotron)’ 기반 모델인 ‘ProTom Radiance 330’로, 현재 미국 하버드 의대 교육 병원인 매사추세츠 종합병원(MGH)에서 풍부한 임상 경험을 통해 신뢰성을 확보한 최첨단 기종이라고 한다. 동산병원은 2028년 장비 설치에 착수해 2029년 12월 첫 환자 치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양성자 치료기가 들어설 신축 암 병원 건립 부지도 병원 정문 입구인 현 백합원(계명대 동산병원 장례식장)으로 확정했다. 지하 5층, 지상 5층 규모로 건립되며 연면적은 2만2485㎡(약 6802평)에 달한다. 계획대로 진행되면 비수도권 최초이자 국내 세 번째 양성자 치료 센터가 되며, 특히 국내 최초로 싱크로트론 방식의 양성자 치료기를 도입한 기관이라는 상징성을 갖게 된다. 동산병원의 양성자 치료기 도입 결정은 단순한 장비 도입을 넘어 지역 의료의 생존 전략이자 지역 사회를 위한 사회적 책임감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한다. 동산병원 관계자는 “코로나19 시기 대구동산병원을 통째로 감염병 전담 병원으로 내놓았던 것처럼 기독교 정신에 기반한 사회적 책무를 중시해 왔다”며 “이번 결정 역시 지역민들이 암 치료를 위해 서울로 가지 않고, 지역에서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병원의 정체성이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계명대 동산병원 암 병원에 설치될 예정인 양성자 암 치료기(ProTom Radiance 330).

◇양성자 치료 교육 허브를 꿈꾼다

양성자 치료기 도입과 관련해 기술적 검토를 담당하는 계명대 동산병원 김명수(의학물리 전공) 교수는 양성자 치료를 “암세포만 골라 때리는 핀셋 치료”라고 정의했다. 기존 X선 치료는 몸을 투과하는 성질이 강해 암세포에 도달하기 전후의 정상 조직까지 손상시키는 부작용 우려가 크다. 반면 양성자 치료는 ‘브래그 피크(Bragg Peak)’라는 물리적 특성을 이용해 양성자 빔이 몸속을 지나다 설정된 암세포 깊이에서 에너지를 폭발시킨 뒤 즉시 소멸한다. 이런 특성으로 암세포 뒤쪽의 심장, 간, 척수 등 주요 장기에 방사선이 도달하지 않는 ‘후방 산란 제로’ 상태가 가능해 부작용을 획기적으로 낮춘다. 또 양성자는 일반 X선보다 무거운 입자의 힘으로 암세포 DNA 사슬을 완전히 끊어버려 재생 능력도 원천 차단한다. 산소가 부족해 일반 치료에 내성을 보이는 난치성 암세포에도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며, 정상 조직 손상이 적어 환자의 기력 저하가 낮고 회복이 빠르다는 점도 큰 장점이라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양성자 치료는 방사선 노출 범위가 좁을수록 유리한 부위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소아암에서 기존의 X선 치료는 암 주변의 넓은 영역에 저선량 방사선을 노출시키기 때문에 성장 지연, 지능 발달 저하, 방사선 유발 이차 암 발생 등의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이 외에도, 간암, 폐암, 두경부암 등 다양한 암종에 있어서도 방사선 노출을 최소화해 합병증 발생 가능성이나 부작용을 현저하게 감소시킬 수 있다.

인적 인프라 구축에도 정성을 쏟고 있다. 현재 방사선종양학과 의료진 5명 중 3명이 국립암센터 및 삼성서울병원 등에서 양성자 치료를 직접 경험한 전문가들로 실무 준비를 마친 상태다. 또 검토 단계부터 참여한 의학물리학자를 비롯해 연구 관리 인력과 엔지니어 영입 및 교육을 체계적으로 준비 중이다. 치료 개시 이후에는 제조사에 관리를 맡기지 않고 병원이 직접 기술자를 고용해 운영함으로써 추후 후발 기관들의 인력 교육까지 담당하는 ‘양성자 교육 허브’로서의 역할도 구상하고 있다.

김준형 계명대 동산병원장은 “양성자 치료기 도입 등을 통해 지역 암 환자가 아픈 몸을 이끌고 서울로 가고, 가족들이 힘들게 지켜보는 상황을 멈추게 할 것”이라며 “또 환자 중심의 ‘스마트 감성 병원’을 만들어 환자의 마음까지 어루만지는 환경을 조성해 지역 의료의 새로운 기준을 세우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