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승코퍼레이션의 자동자부품 사업 자회사인 화승알앤에이 공장에서 전기차 냉각라인용 플라스틱 튜브를 조립하는 자동화 라인 모습. /화승코퍼레이션 제공

마치 기계체조 선수처럼 연속으로 공중제비를 돌고 매끄럽게 착지한다. 현대차그룹의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의 모습이다. 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 2026’의 최대 화두는 아틀라스를 비롯한 ‘피지컬 AI(인공지능)’였다. 피지컬 AI는 한마디로 ‘몸을 가진 AI’다. 각종 산업 현장에서 로봇이나 자동화 설비가 실제 일을 하게 만든다.

피지컬 AI의 등장은 광역자치단체의 정책 변화로도 이어졌다. 부산시는 이번 전시 기간 중 현대차그룹 전시관 등을 방문해 서비스 로봇과 AI 기반 미래 모빌리티 기술을 살폈다. 단순 관람에 그치지 않고, 부산의 항만·물류 인프라를 활용해 실제 현장에서 기술을 검증할 수 있는지 실증 연계 가능성도 확인했다. 항만과 산업단지가 밀집한 부산이 ‘테스트 베드’로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를 바탕으로 부산시는 CES 2026의 주인공이 된 로봇·피지컬 AI 기술을 지역 신산업 육성 정책에 적극 반영하기로 했다. 시는 현재 로봇·인공지능(AI) 기반 첨단전략산업을 핵심 전략으로 추진 중이다. 특히 글로벌 선도기업의 로봇·피지컬 AI 기술을 정책에 접목해 지역 제조업의 자동화·지능화를 앞당기고, 로봇 실증 사업도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사람이 하던 반복 작업과 위험 작업을 로봇이 대신하고, 생산 과정 전반을 데이터로 관리하는 ‘스마트 제조’ 체제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이다.

그 중심에는 부산의 대표 향토기업이자 글로벌 자동차 부품·소재 전문 기업인 화승코퍼레이션이 있다.

박형준 부산시장(오른쪽)이 지난 4일 연제구 화승코퍼레이션 본사에 현지호 화승코퍼레이션 대표와 370억원 규모의 부산 실증테크센터(R&D센터) 건립을 위한 투자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부산시 제공

화승코퍼레이션은 1978년 부산에서 설립됐다. 지난 50여 년간 부산을 거점으로 세계적인 자동차 부품 및 소재 전문 기업으로 성장해온 대표적인 지역 명문 향토기업이다. 독보적인 탄성체 소재 기술력을 바탕으로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해왔다. 연 매출 약 1조7000억 원 규모의 안정적인 실적을 기반으로 최근에는 친환경 비자동차 분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며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부산시는 지난 4일 화승코퍼레이션 본사에서 ‘부산 실증테크센터(R&D센터) 건립을 위한 투자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이번 투자의 핵심 키워드도 피지컬 AI다. 화승코퍼레이션은 부산에 피지컬 AI와 로봇을 결합한 대규모 실증 거점을 마련한다. 기장군 내 약 5000평 규모 부지에 2027년까지 370억원을 들여 실증테크센터를 조성한다. 실증테크센터는 올해 10월 착공해 내년 말 준공할 예정이다.

이곳은 기존 자동차 부품 중심 연구개발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AI가 설비와 로봇에 결합해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피지컬 AI 기술을 실제 생산 환경에서 검증하는 전초기지 역할을 하게 된다. 제조 공정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불량을 예측하며, 설비를 자율 제어하는 기술을 시험·적용하는 공간이다. ‘공장을 똑똑하게 만드는 실험실’이 부산에 들어서는 셈이다. 현지호 화승코퍼레이션 대표는 “피지컬 AI와 신소재 기술을 통해 새로운 산업 가치를 창출할 것”이라며 “부산 경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시는 이번 투자가 지역 균형 발전과 청년 인재 유출 방지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시는 센터가 들어설 기장군 명례산업단지의 입주 업종 확대를 검토하는 등 규제 완화에 나설 방침이다. 첨단 산업 유입을 촉진해 산업단지의 체질을 바꾸겠다는 전략이다.

이에 따라 연구 인력 등 260여 명의 신규 고용과 인력 이전이 예상된다. 부산시는 투자 보조금 지원과 지역 대학과의 산학 협력을 통해 인재가 현장에 즉시 투입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할 계획이다. 기술 개발과 인력 양성이 동시에 이뤄지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자체적인 연구개발 역량을 가진 지역 대표 기업이 수도권 대신 부산을 연구개발(R&D) 전진 기지로 삼은 데 큰 의미가 있다”며 “조선기자재, 소재 등 지역 제조업 전반이 다양한 제조 데이터를 활용할 여건을 만드는 데 집중하겠다”고 했다.

지역 대학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국립한국해양대는 대학 캠퍼스와 영도구 일대를 ‘무인자율모빌리티 실증 캠퍼스 타운’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연구실에서 개발된 기술을 바다와 도로 위에서 곧바로 시험하는 ‘열린 실험장’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