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에도 다시 찾아온 전주 얼굴없는천사./연합뉴스

지난해까지 25년째 10억원을 넘게 기부한 전주 ‘얼굴 없는 천사’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올해는 역대 최대 금액인 9000만원을 기부했다.

30일 전북 전주시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43분쯤 전주시 노송동 주민센터에 ‘발신자 표시 제한’ 전화가 걸려 왔다. 50대로 추정되는 중년 남성은 “기자촌 한식뷔페 앞 소나무에 상자 하나를 두었으니 좋은 곳에 써주세요”라고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이름도 직업도 알려지지 않은 노송동 ‘얼굴 없는 천사’였다.

직원들이 곧바로 자리를 박차고 5분여를 뛰어 현장에 도착하니 전화 내용대로 소나무 주변에 A4 용지 상자가 놓여 있었다. 상자에는 5만원권 지폐 다발과 동전이 가득한 돼지 저금통 1개가 들어 있었다. 금액은 모두 9004만6000원으로 집계됐다. 2009년, 2023년, 2024년 세 차례에 걸쳐 8000만원을 기부한 적이 있었는데, 9000만원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통 해마다 세밑에 5000만~8000만원을 기부해왔다.

얼굴 없는 천사가 올해로 26년째 총 27차례에 걸쳐 몰래 보내 준 성금은 총 11억3488만2520원에 달한다. 상자 안에는 ‘2026년에는 좋은 일들만 있었으면 합니다.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프린터로 인쇄된 A4 용지 1장도 있었다.

전주시는 천사의 뜻에 따라 성금을 노송동 지역 소년소녀가장과 홀로 사는 노인 등 어려운 계층을 위해 쓸 예정이다. 천사는 2000년 4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58만4000원이 든 돼지저금통을 놓고 간 것을 시작으로 매년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씩을 놓고 갔다. 2019년에는 노송동 주민센터 인근에 놓고 간 6000여만원을 도난당하는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기부는 이어지고 있다.

전주시는 천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노송동 주민센터 일대 도로를 ‘얼굴 없는 천사 도로’로 조성하고 ‘얼굴 없는 천사비’를 세웠다. 주민들도 10월 4일을 ‘천사의 날’로 지정해 나눔 행사를 펼치고 있다.

채월선 노송동장은 “나눔의 선순환이 지속적으로 이뤄져 모두 행복한 사회가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