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정오 무렵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에 눈보라가 사선으로 휘몰아쳤다. 이 공항 2층 대합실에 1년 동안 뿌리내린 텐트(재난 구호 쉘터)촌에도 성탄절이 화제에 올랐다.
“메리 크리스마스! 눈이 내리네요.”
무안 제주항공 참사 유가족 10여 명이 안부 인사를 건넸다. 유족들은 순번을 정해 지난해 12월 29일 참사 이후 텐트 40여 동을 지키고 있다. 서로 ‘공항 쉘터 지킴이’라 부른다. ‘참사 362일째 너무나 가슴이 아파요’가 쓰인 입간판이 눈에 띄었다. 한 유족은 “1년이 지나도록 정확한 참사 원인은 규명되지 않았다”고 했다.
오는 29일 179명이 숨진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1주기를 맞는다. 유가족협의회와 국토교통부, 전남도, 광주광역시, 무안군 등은 합동으로 이날 무안공항에서 ‘1229 여객기 참사 1주기’ 추모식을 연다. 공항은 추모식 준비에 분주한 모습이었으나, 유족들은 차분하게 텐트촌을 지키고 있었다.
유족의 일상은 참사와 함께 멈춰버렸다. 김성철(53)씨는 지난 6월 직장을 그만뒀다. 11년간 몸담은 부산 안전화 제조 공장이었다. 참사로 아내와 딸을 잃고 밀려드는 슬픔을 견딜 수 없어 공항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모녀는 두 번째 일본 여행에서 주검으로 돌아왔다. 그는 앞서 지난 4월 복직했으나 시도 때도 없이 울음이 터져 나왔다. “팀원들에게 도움이 못 되나 싶어 사표를 낼 수밖에 없었어요.” 그는 “진실이 드러날 때까지는 공항을 떠날 수 없다”고 말했다.
고재승(43)씨는 부모를 잃었다. 은퇴 뒤 서울에서 노후를 보내던 아버지가 광주·전남에 사는 직장 동료와 함께 무안공항에서 태국 여행을 갔다가 변을 당했다. 용산역에서 배웅한 게 마지막이었다. 고씨는 지난 6월부터 토목 설계 회사에 휴직계를 냈다. 그는 “5살 아들이 비행기를 볼 때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언제 내려오느냐’ 한다”고 말했다.
무안공항은 사고 이후 1년간 폐쇄됐다. 내년 이른 재개항은 어려운 상황이다. 1층과 2층을 잇는 ‘추모의 계단’에는 수천 장의 손편지가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아빠, 거기선 춥지 마”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등 절절한 글이 적혀 있었다. 1층 대합실 합동 분향소에는 희생자 179명의 위패와 일부 영정이 놓여 있었다. 환하게 웃는 젊은 부부와 2021년생 아이 영정 앞에는 장난감과 바나나 우유, 캐러멜 등 아이 간식이 놓여 있었다.
다른 영정 옆에는 ‘너희가 우리 곁을 떠난 지 어느덧 1년이 되었구나. 그놈의 새떼는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너희는 언제 돌아오느냐? 저 하늘 구름에 저 하늘 별빛에 물어도 대답을 들을 수가 없구나’라는 추모 글이 적혀 있었다.
참사 1년이 됐으나 처벌받은 책임자는 아직 없다. 검찰에 송치되거나 기소된 사례도 없다.
수사단을 꾸린 경찰은 이번 참사는 공항 부근 조류 떼 관리 부실과 지침을 어기고 설치한 콘크리트 둔덕 운영, 원인 미상의 복합적인 과실 등이 얽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불구속 입건한 피의자는 모두 44명이다. 국토부 전·현직 관계자가 20명으로 절반에 육박한다. 경찰은 지난 16일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를 압수수색했다. 여기서 확보한 증거물 분석을 위해 수사팀 인원을 기존 9명에서 26명으로 늘렸다.
대형 참사로 키운 시설은 로컬라이저(착륙 유도 시설)가 설치된 콘크리트 둔덕이었다. 지난 4월 국토부는 전국 공항 7곳 로컬라이저 시설(9개)을 올해 안에 부러지기 쉬운 재질로 재설치할 것이라 했다.
현재 공사가 완료된 곳은 포항경주공항, 광주공항 2곳이다. 여수공항은 이달 말, 김해공항과 사천공항은 내년 2월 각각 공사가 끝난다. 제주공항은 내년 8월 착공이 예정돼 있다. 무안공항은 설계는 끝났지만 유족과 협의 후에 착공할 예정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23일 무안공항 로컬라이저가 공항·비행장 시설과 이착륙장 설치 기준과 공항안전 운영 기준을 모두 위반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앞서 제주항공 2216편이 태국 방콕에서 출발해 2024년 12월 29일 오전 9시 3분쯤 무안공항에 착륙 도중 활주로를 넘어 로컬라이저 콘크리트 둔덕과 충돌해 폭발했다. 탑승자 181명 중 동체 후미 승무원 2명을 제외한 179명이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