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후 경북 영주시 봉현면 국립산림치유원. 해발 500m 소백산 자락에 있는 2889㏊(약 874만평) 크기의 침엽수림이다. 금빛으로 물든 낙엽송 사이로 청량한 바람이 불어와 몸속으로 파고들었다. 귀에는 ‘졸졸졸’ 계곡 물소리가 배경음악처럼 깔렸다. 평일인데도 20여 명이 도인처럼 가부좌를 틀고 명상을 하고 있었다. 해먹에 누워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는 이도 있었다. 숲은 그 자체로 ‘치유의 방’이었다. “해먹에서 5분 졸았는데 1시간 잔 듯 개운합니다.”
요즘 ‘숲 치유’가 인기다. 산림청과 지방자치단체들이 운영하는 ‘치유의 숲’에도 사람이 몰린다. 피톤치드, 음이온 등을 많이 내뿜는 편백나무나 잣나무, 소나무 숲에 머물며 몸과 마음을 회복할 수 있게 만든 시설이다. 요가, 명상 등 건강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한다. 2009년 ‘국립 산음 치유의 숲’이 처음 문을 연 이후 전국 곳곳에 생기고 있다. 현재 국립 21곳, 공립 44곳이 있다. 민간이 운영하는 2곳까지 포함하면 총 67곳이다.
산림청에 따르면, 국립 치유의 숲 이용객은 2021년 47만1769명에서 지난해 60만6089명으로 3년 새 28% 증가했다. 연령별로는 60대(38.3%)가 가장 많았다. 이어 40대(12.8%), 30대(12.1%) 등의 순이었다. 성별로는 여성(62.9%)이 남성(37.1%)보다 훨씬 많다. 한국산림복지진흥원 관계자는 “명상, 아로마테라피, 요가 등 프로그램이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라며 “전국 치유의 숲을 돌며 ‘도장 깨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인기가 많은 치유의 숲은 경북 영주산림치유원·칠곡숲체원, 전남 장성치유의숲, 강원 횡성숲체원 등이다. 온라인 예약 창이 열리면 인기 프로그램의 경우 보통 1시간 만에 마감된다.
치유의 숲마다 특색이 있다. 전북 진안고원산림치유원은 정부와 지자체가 총 911억원을 들여 지었다. 잣나무·소나무 숲 617㏊(약 186만평)에 편백나무로 마감한 숙소 74실을 지었다. 총 6억원어치 건강 관리 장비도 갖췄다.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진동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음향진동 테라피’ 장비는 1대당 2000만원이다. 온탕에서 수압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아쿠아 라인’과 ‘체형 분석기’ ‘스트레스 측정기’ 등도 써볼 수 있다. 숲 속 흙길(11㎞)도 맨발로 걸을 수 있다. 김창현 진안고원산림치유원장은 “산림 치유와 어싱(Earthing·맨말 걷기)을 접목했다”고 했다.
축령산 자락에 있는 장성치유의숲은 편백나무 숲이 전국에서 가장 넓다. 763㏊(약 230만평) 규모다. 여기에 높이 20m 안팎의 아름드리 편백나무 700만 그루가 산다. 편백나무 마니아면 꼭 들러야 할 곳으로 꼽힌다. 유모차나 휠체어를 타고도 이용할 수 있는 데크 길도 조성돼 있다.
서울에도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는 시설이 있다. 지난 7월 노원구 수락산에 개장한 ‘수락 휴(休)’다. 노원구 관계자는 “수락 휴는 도심 속에서 즐기는 치유의 숲”이라며 “8~9월 숙박 예약이 2분 만에 마감됐다”고 했다. 경기 양평치유의숲은 반려동물과 함께 산림욕을 즐길 수 있다.
숲 치유가 암 환자의 면역력을 높이고 스트레스 호르몬을 줄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국립산림과학원과 고려대 통합의학센터가 2011년 유방암 환자 1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2주간 치유의 숲에서 산책, 명상 등을 한 환자는 암세포의 증식을 억제하는 면역세포인 ‘NK세포’가 3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김혜윤 교수팀이 2019년 실시한 연구에선 치유의 숲에서 5박6일간 머문 갱년기 여성의 ‘코르티솔’ 혈중 농도가 25% 감소했다. 코르티솔은 스트레스가 쌓이면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산림청 산림복지연구개발센터 김창휴 박사는 “숲은 피톤치드 향, 새소리, 햇빛 등이 어우러진 종합 처방”이라며 “우리 몸의 자율신경계를 안정시키고 면역 체계를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암 환자 커뮤니티 등에는 ‘복잡했던 머릿속이 맑아지고 마음이 평온해졌다’ ‘비슷한 아픔을 가진 분들과 숲 길을 걸으며 대화하니 위로가 됐다’ ‘자연 속에서 힘을 얻었다’ 같은 글이 많다.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임모(51)씨는 “평소엔 30분만 걸어도 다리가 풀렸는데 숲에선 이상하게 한 시간씩 걷게 된다”며 “집에 돌아와서도 피곤하지 않고 기운이 돌아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최근엔 임산부들 사이에서 ‘숲 태교’ 코스로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치유의 숲은 이용객뿐 아니라 지자체 경제도 살린다. 4만3000명이 사는 장성에는 한 해 2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다. 숲을 활용해 ‘축령산 산소 축제’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