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울산 남구 동서발전 울산화력발전소 보일러 타워 붕괴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매몰자 수색 및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20251107 김동환 기자

“한 숟가락이라도 뜨시죠. 기다리려면 힘이 있어야 하잖아요.” 지난 6일 발생한 한국동서발전 울산화력발전소 보일러 타워 붕괴 사고 현장. 하염없이 철제 구조물만 바라보는 가족들 곁엔 손과 발이 되어 주는 심리 상담가들이 있었다.

10일 대한적십자사 울산지부에 따르면, 울산화력발전소 사고 현장에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 소속 심리 상담 전문가 75명이 투입됐다. 이들은 6~9명씩 돌아가며 피해 가족과 생존자, 구조대원 등에게 심리 상담 등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잔해 속에는 4명이 남아 있는 상태다. 가족들은 그 곁을 지키고 있다. 일부 가족은 너무 큰 상실감에 오열하다 쓰러지거나 경련을 일으키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리 상담가들은 이들 곁에 머물며 ‘심리적 응급처치(PFA)’를 하고 있다. 마음 심폐 소생술(CPR) 같은 것이다.

이번 현장에서 심리 상담가로 활동한 이은정 대구대 청소년 심리학과 교수는 “너무 큰 사고를 겪으면 지금 있는 곳이 어딘지, 안전한 곳에서도 공포감을 느끼는 등 상황 인지 능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또 과호흡을 일으키기도 한다”면서 “상담가들이 가족 곁을 지키며 얘기를 들어주고 필요한 것을 가져다주는 것이 심리적 응급처치”라고 했다.

상담가들은 피해 가족들이 울음을 터뜨리면 곁에서 안아주거나 손을 주물러줬다. 또 가족들이 경찰이나 소방에 요구할 사안이 있으면 대신 전달해 주고 곁에 머물며 그들의 손발이 되어줬다.

이 처치를 통해 심리 골든타임인 72시간 안에 조금이나마 마음을 안정시켜 주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줄여주는 것이다.

아울러 이들은 심리 재난 2차 피해자인 소방관이나 경찰에게도 심리 상담을 지원해 준다. 전날도 소방관 7명이 심리 상담을 받았다고 한다.

적십자사도 잔해 앞을 지키는 가족들을 위해 사고 현장 근처에 실내용 소형 텐트인 ‘쉘터’ 5곳을 설치했다.

전문가들은 사고 당사자나 목격자 등 직접 경험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PTSD 등을 겪을 수 있다고 한다. 또 PTSD는 완전한 회복이 없기 때문에 심리 상태를 지속적으로 추적·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TV를 통해 재난 현장을 목격하는 사람들도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다. 그럴 경우 심리 상담을 받아야 한다”면서 “특히 직접 현장에 투입된 구조대원들은 트라우마를 겪을 가능성이 높다. 당장 발생하지 않더라도 특정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트리거(방아쇠)가 있다면 언제든 PTSD를 겪을 수 있다. 미국처럼 사건 당사자와 가족뿐만 아니라 구조대원 등의 심리 상태를 장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추적·관찰하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