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는 수년 만에 개발한 백신으로 돌파했습니다. 기후 변화는 다릅니다. 뚝딱 해결책이 나오는 게 아니에요. 당장 중장기적인 대응에 나서지 않으면 올여름과 같은 흉포한 날씨에 우리 농어촌은 살아남을 수 없을 겁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지난 20일 취임 1주년을 맞은 홍문표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사장은 27일 본지 인터뷰에서 기후 변화 대응을 강조했다. 홍 사장은 “취임 20일 만에 변화무쌍한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지속 가능한 체계를 구축했다”며 “특히 5200만 국민 먹거리를 책임진다는 자세로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일곱 가지 어젠다를 설정했다”고 말했다.
홍 사장 지시로 지난해 9월 10일 발족한 aT 내 ‘기후변화 대응 수급 태스크포스(TF)’는 이후 정규 조직 ‘기후변화 대응부’로 격상됐다. 기후 변화 7대 대책은 ‘친환경·저탄소 농어업 전환’, ‘씨종자, 신품종 개량’, ‘저온 비축 기지 거점별 광역화’, ‘온라인 도매시장·직거래 장터 중심 유통 구조 개선’, ‘식량 무기화 시대, 쌀 주식에서 5곡으로 전환’, ‘통계 농업으로 수급 관리, 사계절 스마트팜 활성화’, ‘농수축산식품 수출로 대한민국 식품 영토 확장’ 등이다.
그는 “농·어·축산민이 잘 살아야 대한민국이 강한 선진국이 된다”며 “기후 변화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유통의 디지털 대전환을 이루고 농수축산식품 수출을 확대해 우리나라 식품 영토를 확장하겠다”고 말했다.
-기후 변화 대응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취임 초기, 유통공사가 수급 조절만 잘하면 되지, 기후 변화를 왜 언급하느냐는 반응이 많았다. 1년 새 확 변했다. 요즘은 저명한 학자들이 먼저 전화를 한다. 지난해 ‘금배추’ ‘금사과’ 사태를 겪으면서 기후 위기가 우리 일상 먹거리에 미치는 심각한 영향을 모두가 체감했기 때문이다. 기후 변화는 우리의 전통적인 식생활 문화와 국민 삶의 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됐다.
단순한 농업 정책이 아닌 국가 차원의 식량 안보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덴마크, 네덜란드, 프랑스 등 유럽 복지 선진국들은 모두 탄탄한 농업 기반을 갖추고 있다. 5200만 국민의 먹거리를 지키는 것은 국가의 기본 책무다.”
-추가 ‘배추 대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지난해 8월 극심한 가뭄과 35도를 넘나드는 불볕더위로 배추 생산량이 30% 이상 감소해 포기당 1만원을 넘는 금배추 사태가 발생했다. 국민 먹거리 대표 품목 배추를 시작으로 종합적인 대응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신품종 개발부터 재배 적지 발굴, 정부 수매, 가공 실증에 이르는 종합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연구 인력이 있는 농촌진흥청과 손을 잡았다. 일반 배추보다 보름가량 수확이 빠른 ‘하라듀’를 개발했다. 무더위에도 강하다. 여름 ‘하(夏)’와 오래 견딘다는 뜻의 영어 단어 ‘듀러빌리티(durability)’를 합쳐 만든 이름이다. 강원도 평창·정선, 전북 남원 등 5개 지역 6농가에서 시범 재배 중이다. 속이 꽉 찼고, 식감이 좋다. 내년엔 이 배추가 상당히 보편화할 것이다.
특히 봄 배추 저장 기간을 기존보다 2배 긴 90일로 늘리는 포장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또 온도와 습도는 물론 산소와 이산화탄소 농도까지 조절하는 특수 냉장고도 만들고 있다.”
-폭염에 고랭지 농업도 위협을 받고 있다.
“올해는 강원도 태백마저 된더위가 덮쳤다. 기존 고랭지 중심의 생산 체계에서 고도가 좀 낮은 준고랭지, 전남 지역까지 재배를 확대하는 다양한 생산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새로운 재배 적지를 발굴할 것이다.
일본은 신품종 연구 기관이 열 곳이 넘는다. 우리는 농진청 한 곳뿐이다. 기후 변화에 대비해 배추뿐만 아니라 기존 농수산물을 대체하는 다양한 신품종을 개발해야 한다. 손을 놓고 있으면 김이 녹아 사라질 것이고, 바지락이 없어 칼국수도 못 먹게 될 것이다. 신품종은 최소 2년은 연구해야 가시적인 결과물이 나온다. 플라스틱처럼 곧바로 찍어낼 수가 없으니 연구를 서둘러야 한다.”
-K푸드 수출이 역대 최고 실적을 달성했다.
“지난해 역대 최대 수출 실적인 129억 달러(17조 8800억원)를 달성했다. 수출국은 208국에 달했다. 1억 달러(1390억원) 이상 수출국은 19국에서 21국으로 확대됐다. 최근 중동과 동남아 등을 겨냥한 수출에 주력하고 있다.”
-중동에 한우가 처음 진출한다는데.
“이제 ‘K-소고기’ 시대가 열렸다. 이슬람 율법에 따라 제조, 가공, 보관된 것이 ‘할랄 식품’이다. 강원도 횡성 한우가 할랄 인증을 받고 10월 말 중동 시장에 진출하게 된다. 대단한 성과다. 그동안 아랍에미리트(UAE) 요구 기준을 충족하는 공식 할랄 도축장이 국내에 없어 수출이 불가능했다. 2022년부터 현지 수요 조사와 제도 분석, 도축장 인증 절차 지원 분석 등을 통해 올해 1월 국내 최초로 횡성케이씨(KC)가 UAE 국제 할랄 도축장 인증을 획득했다.”
-‘유통의 디지털 대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5~6단계로 복잡한 기존 유통 단계를 2~3단계로 줄이고 있다. 유통 구조를 단순화하면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이익을 거둔다. 유통 구조가 단순한 농수산물 온라인 도매시장 매출은 지난해 목표 5000억원 대비 35% 초과한 6737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에만 243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15% 성장하는 성과를 거뒀다. 특히 정보기술(IT) 대기업 ‘카카오’와 협력해 온라인 도매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쌀에서 ‘5곡’으로 전환? 무슨 뜻인가.
“기후 위기 시대에 ‘식량은 무기’다. 기후 변화와 지진, 전쟁 등에 대비해 선진국들이 앞다퉈 식량을 ‘무기화’하고 있다. 이에 쌀 중심 식량 작물 생산 체계를 바꿔야 한다. 쌀에다 밀, 콩, 옥수수, 보리를 보탠 ‘5곡’을 육성할 방침이다. 식량 자급률을 높이고 식량 안보를 강화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