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 30대 전 여자친구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달아난 20대 남성이 도주 24시간여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계획범죄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대전서부경찰서는 살인 혐의를 받는 A(20대)씨를 30일 오전 11시 45분쯤 대전 중구 산성동 한 도로에서 긴급 체포했다고 밝혔다. 차량을 이용해 도주하던 A씨는 체포 직전 차 안에서 음독을 시도했다. 검거 당시 의식은 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경찰은 A씨를 충북 진천의 한 병원으로 긴급 후송해 응급치료를 받게 했고, 조사를 이어갈 방침이다.
A씨는 전날 낮 12시 8분쯤 대전 서구 괴정동 주택가 길가에서 전 연인인 여성 B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전날 사건 현장에서 A씨가 버리고 간 휴대전화를 토대로 이들이 연인관계였던 점을 확인하고, A씨 가족과 지인을 통해 행적을 탐문하기도 했다.
경찰은 A씨가 전날 B씨의 주거지를 찾았다가 범행한 것으로 보고 범죄 현장 주변 방범카메라(CCTV) 녹화 영상 등을 확인하며 A씨 동선을 추적했다. A씨는 차와 오토바이를 갈아 타며 도주한 것으로 파악됐다.
A씨가 사전에 범행을 준비한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주택가에서 소지하고 있는 흉기를 갑작스럽게 꺼내 휘두른 후 도주했다는 점에서 우발적 범행 가능성은 적다는 지적이다.
범행 직후 A씨는 현장에 흉기와 자신의 휴대전화를 버린 채 골목길로 도주했다. 이어 인근에 주차해 놨던 공유자동차를 타고 사라졌다. 이 차량은 범행 전날 A씨가 빌렸고, 주차 장소가 피해자 주거지 인근이라는 점에서 범행을 계획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몇 시간 뒤 A씨는 대전에서 공유자동차를 버리고 오토바이로 갈아탔다. 이 오토바이는 A씨 소유는 아니었지만 평소 그가 타고 다녔다고 한다. 공유자동차와 오토바이를 미리 준비해 둔 점, 이동 수단을 바꿔가며 경찰 추적을 피한 점은 계획범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는 대목이다.
경찰은 CCTV를 통해 동선을 추적했으나 A씨가 서구 관저동으로 이동한 이후 화면에서 사라져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A씨는 대범하게도 범행 다음날 오전 10시30분쯤 피해자 B씨의 빈소가 마련된 서구의 장례식장을 찾은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A씨는 렌터카인 K5 승용차를 운전하고 있었다. 장례식장을 찾아간 사실이 신고로 드러나면서 꼬리를 밟히게 됐다. 경찰은 CCTV 등 여러 수단을 이용, 이 렌터카를 추적했고, 범행 하루만인 이날 오전 11시 45분쯤 대전 중구 산성동 한 도로에서 A씨를 긴급 체포했다. A씨는 검거되기 직전 차 안에서 미리 준비한 제초제를 마셨다. 그는 운전석에서 내리자 구토를 했고 응급실로 이송됐으나 생명이 위중한 상태는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계속 경과 관찰이 필요하다는 의료진 소견에 따라 A씨의 상태가 호전되면 조사 일정을 잡고 정확한 범행 동기와 사건 경위를 확인할 방침”이라고 했다.
경찰에 따르면 B씨와 연인 관계였던 A씨는 지난해 11월부터 최근까지 4차례 경찰 조사를 받았다. 그는 지난해 11월 초 재물 손괴 및 주거 침입으로 신고됐고, 지난달 27일에는 술을 마시고 편의점 앞에서 B씨의 팔을 강제로 잡아당기는 등 폭행을 했고, 출동한 경찰관에게 폭력을 행사해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입건됐다. 당시 경찰은 B씨에게 스마트워치 지급 등을 안내했지만, B씨가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B씨는 A씨에 대한 처벌 불원서도 경찰에 제출했다.
만약 한 달 전 사건에서 B씨가 처벌 불원서를 제출하지 않았거나, 스마트 워치를 지급받았더라면 참변을 피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다.
경찰 관계자는 “당시 B씨가 피해자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A씨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서류도 제출했다”며 “이후 범죄 예방 차원에서 B씨에게 3차례 연락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