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의성군 청년인큐베이팅 공간 G-town에서 관객들이 성광성냥공업사 흔적을 담은 작품들을 관람하고 있다. /박정일 작가

‘치익~’ 마찰하면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성냥. 요즘은 라이터가 워낙 대중화돼 생일 축하 케이크에 동봉된 성냥 말고는 일상에서 접하기 힘든 추억의 물건이 됐다.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경북 의성군 의성읍 소재 성광성냥공업사의 흔적이 사진을 통해 재탄생됐다.

사라져 가는 근대 문화유산을 기록해 온 박정일 사진작가는 지난 13일부터 의성문화원에서 사진전을 열고 있다. 8월 말까지 총 35점의 작품이 전시되는 사진전은 ‘프레임 속의 기호와 상징’, 무너진 시간의 잔해를 시각적 언어로 표현했다.

성광성냥공장 내 윤전부. 성냥을 만드는 과정 중 핵심 시설이다. 윤전기 안에 성냥개비가 촘촘히 박혀 돌아가면서 배합기에 두약을 제조하는 화학 공정도 이뤄진다. /박정일 작가

이번 전시에서는 기존보다 더 많은 신작이 공개됐다. 성광성냥공업사와 그 공간을 둘러싼 사물과 관계, 시간의 흔적이 작가의 시선으로 재조명했다.

작품 속 폐업한 공장 내부는 예전의 모습 그대로 앵글에 담았다. 찌그러진 양철 대문과 두터운 철문들, 위험해 보이는 담장과 곳곳에 놓여있는 소화기, 굳어 버린 벽시계, 차가운 공장의 시멘트 바닥을 비집고 자란 알 수 없는 잡초, 성냥 두약으로 사용했을 말라버린 약품, 수많은 녹슨 기계들은 당시 정지된 일상에 온기를 불어넣은 것처럼 느껴진다.

성광성냥 공장 내 재료창고 . 인과 황으로 두약을 만드는 곳이다. 공장장 등 허가받은 직원 외 출입이 엄격히 제한됐다. /박정일 작가

박 작가는 “이번 전시는 정지된 시간 속에 묻혀있는 장소를 소재로 미래를 함께 하는 묵시론적인 실제를 드러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성광성냥공업사는 1954년 2월 설립됐다. ‘경북 의성을 빛낸다’는 의미에서 ‘성광(城光)’이란 이름을 붙였다. 당시 성냥 머리에 바르는 두약에 그을음을 섞어 만든 성분 덕분에 습기에도 강한 제품이라 경북 전역은 물론 강원 동해안 일대까지 유통망을 넓혔다.

성광성냥 공장 내 대각부와 소각부. 대각부에선 1등급 성냥갑을 만드는 곳이고, 소각부는 주로 광고용 성냥갑을 만드는 곳이다. /박정일 작가

하지만 1980년대 이후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경북도는 2013년 5월 성광성냥공업사를 향토뿌리기업으로 선정했지만 결국 2020년 11월 24일 최종 폐업 신고 절차를 거친 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성광성냥 공장 내 축목부. 원목을 40cm 크기로 절단해 껍질을 벗기고 2.2mm 나무판으로 만든 후 잘게 썰어 건조기에 수분을 제거한 뒤 파라핀을 통해 성냥개비를 부드럽게 만드는 곳이다. /박정일 작가

박 작가는 “폐허가 된 장소, 기능이 정지된 사물, 관계 단절이 이루어진 공간들을 통해 결국 ‘영원함’이 아닌 ‘사라짐’ 자체가 존재의 본질임을 표현하고 싶었다”며 “이번 전시는 성광성냥이라는 공장을 통해 지역의 산업사와 삶의 기억, 존재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일 작가는 홍콩 민주화운동, 부산 사하구 홍티마을, 경주 희망농원, 대전 소제동 철도관사마을, 영덕 석리마을 등 도시와 마을, 근대 유산이 지닌 ‘소멸의 흔적’을 기록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