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가 일제강점기 민족문화 말살정책에 의해 100년 전쯤 자취를 감췄던 제주목 관아 범종을 되찾아오는 방안에 대해 국가유산청과 협의를 벌이고 있다.
29일 제주도에 따르면 그동안 행방을 몰랐던 제주목 관아 범종의 존재는 제주역사문화진흥원에 의뢰한 제주목 관아 종 복원 고증학술용역을 통해 드러났다. 용역진은 옛 문헌 검토와 현장 조사 등을 거쳐 1916년 12월 일본인에 의해 철거된 제주영(현재 제주목 관아) 외대문 종이 현재 일본 내 사립 미술관인 네즈미술관 지하 1층 계단 아래 전시되고 있는 걸 확인했다.
용역 결과에 따르면, 이번에 존재가 확인된 종인 ‘미황사 종’은 1690년 경남 고성에 있는 은흥사에서 주조장인 김애립에 의해 주조된 ‘금종(金鐘)’이다. 이 종은 외대문 종각에 걸려 시각을 알리고 아침·저녁으로 성문의 개폐를 알리는 신호를 울리는 용도로 활용됐다. 제주에서 실제 활용된 기간은 1850년(철종 1)부터 1916년까지 60여년이었다. 이 종은 은흥사에서 만들어졌지만, 구입해온 절이 해남 미황사였기 때문에 미황사 종으로 불렸다.
미황사 종은 둘레 243.8cm(5척3촌), 두께 5.98cm(1촌3분) 크기로, 무게는 300kg(500근)에 달하는 중형 범종이다. 하나의 몸체로 연결된 쌍룡 모양의 고리인 ‘용뉴’가 있고, 용뉴 주위 천판엔 연판문이 장식돼 있다. 종 몸체엔 4개의 연곽대가 있는데, 각 연곽대에는 9개의 꽃봉오리 장식이 있다.
종 몸체 사방엔 ‘연곽(蓮廓)’을 두고 사이마다 합장하는 보살상을 새겨넣고, 보상살 옆에는 ‘주상전하수만세(主上殿下壽萬歲)’라는 문구를 양각했다. 다른 부분은 모두 철로 이뤄졌지만, 이 문구만은 금빛을 띠는 특징이 있다.
이 종이 종적을 감추게 된 것은 1916년 12월 포정사 종각을 허물 때 일본인이 가져갔다는 기록이 김선익의 ‘탐라기년’에 나와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유출 시점과 종을 가져간 인물에 대해선 조사가 더 필요하다.
종이 전시된 네즈미술관이 당시 조선에서 철도 부설 사업으로 돈을 벌어들였던 네즈 가이치로(東武根津嘉一郞, 1860~1940)가 그의 수집품을 전시하기 위한 용도로 1941년에 설립된 점이 확인되면서 유출과 무관하지 않다고 추론할 수 있다.
연구진은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에 의해 사라진 종의 복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제주목 관아는 탐라 시대 이래 제주의 역사와 전통을 상징하는 핵심적인 관부로서 역할과 기능을 수행해 왔다. 그러나 일제는 민족문화 말살 정책의 일환으로 제주에서는 가장 먼저 목 관아를 파괴했고 1916년 종각을 허물며 종은 일본인 손에 들어가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 2002년에는 마침내 조선시대 제주목 관아의 모습을 복원했지만, 복원된 지 20여 년이 지났음에도 관아의 상징인 종루의 종이 복원되지 않고 있다”며 “전국 17개 시·도 중 제야의 종소리를 들을 수 없는 유일한 지역이라는 안타까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고 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진 이후 제주도의회 일각에서는 종을 복원할게 아니라 반환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왔다. 이에 제주도 세계유산본부에서는 최근 국외 소재 문화유산 보호 환수 등을 담당하는 국가유산청과 협의에 나섰다.
그 결과 일제때 제주목 관아 종을 강탈했다는 증거가 없는 한 반환 추진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앞서 학술 용역에서도 일제 강점기에 제주목 관아가 파괴됐고 그 곳에 있던 종이 일본으로 유출된 것으로 봤지만 정확한 경로 등은 파악할 수 없었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관계자는 “해외 문화유산을 매입한 경험이 없어서 앞으로 국가유산청의 지원이나 협조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