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영해면 승내2리 원당골 제당에서 영덕군 주도로 전쟁 승리를 기원하는 올해 첫 둑제를 지내고 있다. /영덕군

‘둑 제사’는 한자로 ‘깃발둑(纛)’이란 글자에서 유래했다. 둑 제사는 결국 큰 깃발에 지내는 제사란 뜻이다. 이 때 깃발은 임금이 타고 가던 가마 또는 군대의 대장 앞에 세웠던 크고 특별한 것이다.

대개 정벌 대상의 머리를 창에 꿴 형상으로, 이를 통해 왕의 위엄과 군의 위용을 보이고자 했다. 조선 시대 군대를 출동시킬 때 전쟁 승리를 기원하기 위해 임금이 직접 깃발에 제사를 지냈고, 군 주둔지에선 최고 지휘관이 봄·가을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경북 영덕군은 조선 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이 둑 제사를 민간 차원에서 관 주도로 지내고 무형문화재 지정 등록에 나선다고 9일 밝혔다.

영덕군에 따르면 조선 초기 영해읍성(영덕군 영해면)에는 왜구 침입을 막기 위해 병마절제사(태조6년 1397년)가 지휘하는 군영이 있었다. 이곳에 주둔한 최고 지휘관과 병사들은 군영 남쪽에 군사들이 훈련하는 강무당이란 곳에서 둑 제사를 지냈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병마영이 철폐되면서 군사들이 모두 떠나고 제당이 방치되자 마을 주민은 방치된 제당에서 둑제를 지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인 1916년 읍성 내 강무당에 있던 제당은 성 밖으로 1km 떨어진 원당골로 옮겨 세워졌다. 영덕군 관계자는 “당시 일제가 왜구를 막기 위한 제당이라서 눈에 거슬려 성 밖으로 내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23일 영해면 승내2리 원당골 제당에서 김덕순 어르신(가운데)이 생전 마지막 둑제를 지내고 있다. /영덕군

그래도 둑 제사는 2006년까지 영해 주민들이 이어왔다. 하지만 원로 어르신들이 하나둘 별세하면서 2007년부터는 정상적인 제사 대신 간단히 술을 올리는 형식으로 남았다.

그마저도 홀로 둑 제사를 이어오던 김덕순(90) 어르신이 지난해 12월 말 고인이 되면서 사실상 명맥이 끓길 위기에 처했다.

이에 영덕군은 김덕순 어르신과 그 집안에서 대대로 남긴 기록들을 토대로 매년 봄·가을에 이 둑 제사를 이어가기로 했다. 지난해 10월 23일 관 주도로 첫 제사를 지낸 데 이어 지난 5일에도 제사를 지냈다. 영덕군 측은 “영해 둑 제사를 보존·계승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또 영덕군은 학술조사를 거쳐 ‘영해 둑 제사’의 문화재 지정 등록에 나설 계획이다. 엄재희 영해면장은 “둑 제사 계승은 호국정신을 일깨워주고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데 큰 의미가 있다”며 “철저한 고증을 통해 둑 제사를 재현하고 역사문화관광 자원으로 승화시킬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