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수 체조. 대청소. 제1장 복장에 대검을 착용하고 수원사의 추모법회에 참석. 총검술 호격시합. 실탄 수령…
1910년 일제의 강점 이후, 수원에 주둔했던 일본의 조선 주둔군(조선주차군)이 남긴 1913년 9월 13일부터의 기록이다.
한국국학진흥원은 근대기록문화조사사업을 통해 최초로 발굴된 조선주차군의 병영 일지를 ‘근대기록문화아카이브’를 통해 공개했다고 28일 밝혔다.
184쪽 분량의 병영일지는 습자지를 이용해 선장(線裝) 형태로 제작된 기록물을 디지털 이미지로 촬영한 것이다. 이 일지는 임시조선파견보병 제1연대 제1중대 수원수비대 소속 곤도 사쿠조(近藤作藏)가 기록한 것으로, 1913년 9월 13일부터 이듬해 2월 28일까지 168일의 사건이 적혀 있다.
진흥원에 따르면 ‘조선주차군’은 일본 제국이 조선을 점령한 후 군사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주둔한 일본군이다. 1910년 일제 강점 이후 조선 내 군사적 통제를 강화하고 항일 운동을 억압하기 위해 조직됐다.
당시 조선인들에게 큰 고통을 안긴 이들의 존재는 3·1운동과 같은 저항 운동의 배경이 됐다. 1913년에는 의병장 노병직이 체포돼 징역 10년형을 선고받고, 독립의군부 사건의 판결이 이루어졌으며, 호남창의대장 이석용이 임실에서 체포되는 등 조선 전역에서 의병 활동이 활발했던 시기였다.
병영일지에는 병영 내 생활·교육·훈련 등 내용이 담겨 있으며, 당시 일본군의 군사 교육·훈련 장소·이동 경로·야영 방법 등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1913년 10월 21일에는 탄약고에서 실탄 120발을 수령한 후 과천 방향의 적을 수색했다는 내용이 있다. 같은 해 12월 28일에는 수원 읍내에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와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했다는 기록을 통해 수원지역에 전기 첫 보급 일시를 알 수 있다.
병영일지 말미에는 보병 제1연대 군기 약력 사항이 기록돼 있으며, 이들은 수원 장안문과 수원공립학교를 기점으로 군사 훈련을 진행하면서 시민들의 항일 투쟁을 억압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국학진흥원 관계자는 “이번에 발굴된 병영일지는 일본의 식민지 통치하 조선의 군사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라며 “일제강점기 역사 연구 및 교육 자료로서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관계를 조명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에 발굴된 조선주차군의 일지는 2021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민간 근대기록문화 조사사업을 통해 최초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