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일 했어, 원옥이. 아프지 말고, 잘 가, 잘 가.”
18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길원옥 할머니의 발인 현장을 찾은 이용수 할머니(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눈시울을 붉히며 고인을 태운 운구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이 할머니는 “(길 할머니가) 대한민국을 다시 찾는 데 큰 역할을 했다”며 인천가족공원 화장장으로 향하는 길 할머니를 배웅했다.
이날 오전 9시 30분 인천 연수구 인천적십자병원 장례식장에선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길 할머니의 발인이 엄수됐다.
빈소를 지켰던 길 할머니의 며느리는 발인식 중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면서 바닥에 주저앉으며 슬퍼했다.
길 할머니의 아들은 “어머니를 많이 사랑했다. 그동안 너무 감사했다. 천국에서 만날 때까지 편안하게 지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길 할머니는 1928년 평안북도 희천에서 태어나 평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13살 때 공장에 취직하는 줄 알고 중국 만주로 향했다가 일본군 위안부로 고통을 겪었다.
1998년 정부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한 길 할머니는 이후 일본군의 성노예제 진상을 국내외에 알리기 위해 활발하게 활동했다.
2004~2020년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쉼터인 ‘평화의 우리 집’에서 생활하며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집회에 꾸준히 참여했다.
또 유엔 인권이사회와 국제노동기구 총회 등에 참석해 피해 사실을 증언하고, 미국,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등을 돌며 전시 성폭력 피해자의 인권회복을 위해 노력했다.
그는 “내가 일본 정부에 요구하는 건 역사의 진실을 솔직히 인정하고, 그 진실을 기반으로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을 하라는 것”이라고 촉구해왔다.
길 할머니는 지난 16일 인천 연수구 자택에서 97세로 별세했다.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총 240명으로 이 중 길 할머니를 포함한 233명은 숨졌다.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이제 7명만 남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