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부지에 청사를 나란히 신축해 동반 이전을 추진하던 강원 춘천지방법원과 춘천지방검찰청이 더 높은 터를 차지하려는 기 싸움을 벌이면서 동반 이전이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두 기관이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한 상황에서 춘천지법이 최근 단독 이전 추진 방침을 밝혀 전국 18곳의 지방법원과 지방검찰청 청사 가운데 법원과 검찰 청사가 분리되는 첫 사례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춘천시와 춘천지법, 춘천지검은 지난 2020년 춘천시 석사동 옛 군부대 6만6200㎡ 부지로 춘천지법과 춘천지검 청사를 동반 이전하기로 협약했다. 1975년 춘천시 효자동에 자리 잡은 춘천지법과 춘천지검 청사가 준공 후 47년이 지나 건물이 낡고 주차장이 좁다는 문제가 불거지면서 신축 이전 필요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춘천지법과 춘천지검이 맺은 협약에 따라 춘천시는 옛 군부대 부지를 매입해 기반 공사를 한 뒤 법원과 검찰에 매각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어 설계 등을 거쳐 2023년까지 춘천지법과 춘천지검의 신축 이전을 마무리할 계획이었다.
춘천지법과 춘천지검의 신축 이전 사업은 양측이 협약을 맺어 순조롭게 진행될 듯 보였다. 하지만 두 기관이 이후 청사 신축 부지 위치를 놓고 갈등을 빚으면서 동반 이전은 첫 삽을 뜨기 전부터 표류하기 시작했다. 양측의 갈등은 청사 신축 부지 중 상석을 차지하기 위한 두 기관 간 신경전에서 비롯됐다. 춘천지법과 춘천지검이 청사를 신축해 동반 이전하려던 춘천시 석사동 옛 군부대 부지는 지형이 경사진 탓에 오른쪽 부지가 왼쪽 부지보다 8m가량 높다.
청사 부지 위치를 놓고 춘천지법은 법원이 통상 오른쪽, 검찰이 왼쪽에 위치한다는 관행을 들어 오른쪽 부지에 법원 청사를 신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춘천시에 부지 평탄화 작업을 해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청사 신축 부지의 높이가 다르다”면서 “이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이 있었고 논의를 이어왔다”고 했다.
두 기관이 입장 차를 보이자, 춘천시가 중재에 나서 흙을 쌓는 성토(盛土)를 대안으로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두 기관은 성토 높이를 놓고 또 주장을 달리하면서 갈등이 계속 이어졌다.
두 기관 간 미묘한 신경전으로 동반 이전 사업이 표류하자 춘천지법은 지난달 7일 ‘법원 청사 단독 이전’ 카드를 꺼냈다. 춘천지법은 입장문을 통해 “춘천법원은 2020년 3월 석사동 일원에 춘천법원 및 춘천지검의 신청사를 나란히 신축해 동반 이전하기로 협약을 체결했지만, 이전 사업이 법원의 꾸준한 협의 노력에도 별다른 진척 없이 장기간 지연됐다”며 “더는 춘천지검과 동반 이전을 위한 협의를 이어가기 어렵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부지 조성 사업 기간인 2021년 12월 31일이 지나 협약의 효력도 사라졌다”며 법원과 검찰이 동반 이전해야 할 근거도 없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달 16일 한창훈 춘천지법원장이 춘천 학곡지구 공공 업무 시설 용지를 찾아가 춘천지법 신축 이전 부지에 대한 실사에 나서는 등 단독 이전을 위한 행보를 시작했다. 한창훈 춘천지법원장은 이 자리에서 “주민들이 이용하기 편리하고 접근성이 좋은 터를 고르려 한다”며 “최대한 빨리 이전을 추진해야 하며, 춘천에서 대안 부지를 살펴보려 한다”고 밝혔다.
반면 춘천지검은 여전히 춘천지법과 동반 이전하기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춘천지검은 춘천지법의 단독 이전 추진 움직임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거나 의견을 낼 계획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다만 춘천지검 관계자는 “효율적인 업무를 위해 동반 이전이 필요하다”면서 “올해 예정된 강원도청 신청사 부지 선정 결과를 지켜보며 이전 계획을 결정하겠다”고 했다.
춘천시는 지역 발전과 법조 서비스 접근 편의성 등을 고려해 양측을 설득해 두 기관의 동반 이전을 이끌겠다는 입장이다. 춘천시 관계자는 1일 “법원과 검찰의 동반 이전을 통해 법조타운을 조성하려는 춘천시 계획에 변함이 없다”며 “두 기관의 고충을 잘 알고 있고 갈등을 원만히 해소하도록 시 차원에서 계속 노력할 방침”이라고 했다.
/정성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