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사건 피의자 이춘재가 살해 사실을 자백한 '화성 실종 초등학생' 김모양의 아버지가 2020년 7월 7일 오전 실종 당시 피해자의 유류품이 발견된 경기도 화성시의 한 공원에서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1989년에 발생해 단순 가출사건으로 종결됐지만 30년만에 이춘재의 자백으로 살인 사건으로 드러난 초등생 피해자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배상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당시 경찰이 피해자의 사체를 발견하고도 단순 가출사건으로 종결하는 등 진상을 조직적으로 은폐·조작했기 때문에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수원지법 민사15부(재판장 이춘근)는 17일 김모(사망 당시 8세)양의 부모와 오빠 등 유족이 “경찰의 조직적인 증거인멸로 살해사건에 대한 실체 규명이 지연됐다”며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1심에서 김양의 부모에게 각 1억원, 오빠에게 20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고 판결을 내렸다. 김양의 부모는 이미 사망했기 때문에 위자료는 오빠가 받게 된다.

1989년 7월 7일 당시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에 살던 김양은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다 실종됐다. 김양의 시신은 발견되지 않고 12월 20일 옷가지와 책가방 등이 인근 야산에서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이른바 ‘화성 연쇄살인사건’과는 관련이 없다고 보고 실종 사건으로 종결했다

그러나 2019년 경찰의 미제 사건 증거물에 대한 DNA 분석에서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으로 확인된 이춘재가 자신이 김양을 성폭행하고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재수사에 나선 경찰은 당시 담당 경찰관들이 김양의 유류품과 사체 일부를 발견하고도 은폐한 것으로 판단했다. 당시 담당경찰관 2명을 사체은닉, 증거인멸 등 혐의로 입건했으나 공소시효가 만료돼 형사책임은 지지 않았다.

그러자 김양의 유족들은 2020년 3월 2억5000만원의 국가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유족측은 “사건을 담당한 경찰관들이 사체은닉, 증거인멸 등을 저질렀으나 공소시효가 만료됐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담당 경찰관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실상의 유일한 방법으로서 국가배상 청구 소송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당시 경찰이 양팔 뼈 등 김양의 사체를 발견했음에도 은닉하고, 살해 가능성을 충분히 인지했음에도 단순 가출 사건으로 종결하는 방식으로 진상을 조직적으로 은폐·조작했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경찰관들의 위법 행위로 인해 유족이 애도와 추모를 할 권리, 사인에 대해 알 권리 등 인격적 법익이 침해됐으므로 국가는 유족에게 정신적 손해에 따른 위자료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또 “유족은 김양의 사망을 확인하지 못하고 장기간 고통받고 사체를 수습하지도 못한 피해는 어떤 방식으로도 회복되기 어렵고, 수사기관이 조직적으로 증거를 은닉한 행위로 국가에 대한 신뢰가 현저히 훼손된 만큼 금전적 보상으로나마 손상된 신뢰를 회복시킬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소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김양의 모친은 타계했고, 부친도 1심 선고를 불과 두 달 앞둔 지난 9월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유족 측은 “부모로서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는 등) 마지막 희망까지 무너지니 크나큰 정신적 충격을 받아 사망에 이르게 된 것”이라며 손해배상 청구금액을 4억원으로 변경했다.

이날 선고 공판 이후 오빠 김씨는 “동생의 소식을 기다린 30년보다 소송 판결까지 2년 8개월을 기다리는 게 더 힘들었다”고 밝힌 뒤 “재판부가 국가 책임을 인정하긴 했으나, 당사자인 경찰들이 이 사건에 대한 사죄를 꼭 했으면 한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