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7일 오후 3시 35분쯤 112 종합상황실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아내를 죽였다. 아내가 목을 찌르려고 해 뺏어서 찔렀다. 어제 오후 10시쯤 그랬다.” 전화를 건 A(62)씨는 경찰에게 자신이 아내 B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고 털어놨다. 범행 17시간이나 지나 신고를 한 이유를 묻자 A씨는 “술에 취해 있어서 그랬다”고 답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집 안에서 숨진 채 쓰러져 있던 B씨와 극단적 선택을 한 채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던 A씨를 발견했다. A씨는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1심 재판부는 “범행 일체를 부인하고 반성하지 않고 있다”며 A씨에게 징역 24년을 선고했다.

춘천지법 전경 / 조선DB

◇외도와 경제적 문제… 비극 불렀다.

A씨와 B씨는 지난 1994년 부부의 연을 맺었다. 그러나 이 둘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A씨의 외도와 경제적 문제 때문에 이들은 자주 다퉜다. 이때마다 A씨는 B씨에게 욕을 하거나 물건을 던지는 등 폭력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했다. 사건 당일인 지난해 9월 6일에도 A씨 부부는 경제적 문제 등으로 말다툼을 벌였다. A씨는 아내 B씨와 술을 마시던 중 B씨가 “네가 뭔데 나하고 같이 사냐. 이 집에서 나가라. 돈도 못 버는데 나를 죽여서 보험금이나 타 먹어라”는 말을 하자 홧김에 B씨의 뺨을 때렸다. 이에 화가 난 B씨 역시 주방으로 가 흉기를 들고 A씨를 위협했으며, 이 과정에서 A씨의 목에 실수로 상처를 냈다.

B씨의 이 같은 행동에 순간적으로 격분한 A씨는 B씨가 들고 있던 흉기를 빼앗았고, B씨의 목을 찔러 살해했다.

A씨는 범행 17시간 만인 7일 112에 전화를 걸어 자수했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체포 과정에서 A씨는 손목을 자해한 채 숨진 B씨의 배에 머리를 베고 있었다. 살인 혐의로 기소된 A씨는 재판 과정에서 정당방위와 심신 미약, 제3자가 살해했을 가능성 등을 내세우며 무죄를 주장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사건 조사 과정에서 A씨가 B씨를 칼로 찔러 살해했다고 진술한 점, 제3자가 집 안으로 침입한 흔적이 없는 점 등을 이유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A씨에게 징역 24년을 선고했다.

◇”형이 무겁다” VS “형이 가볍다”

1심 판결 이후 A씨는 원심의 형이 너무 무거워 부당하며 항소를 제기했다. A씨 항소에 맞춰 검찰도 원심의 형은 너무 가벼워 부당하다며 항소했다.

A씨는 항소심 재판부에 정당방위와 심신 장애, 우발적 범행 등을 주장했다. B씨에게 칼을 빼앗아 B씨의 목을 찌른 행위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행동이란 것이다. 또 범행 당시 술을 마셔 취한 생태였고, B씨가 A씨에게 칼을 겨누는 과정에서 목에 상처를 입어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르게 됐다고 주장했다. 자수한 점도 양형에 참작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사건을 다시 살펴본 항소심 재판부는 정당방위와 심신 장애란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A씨가 범행을 자수한 부분 등을 인정, 원심의 판결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1심 재판부는 이 사건 범행을 살인 범죄의 유형 중 제3유형(비난 동기 살인)으로 판단했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이 사건이 제2유형(보통 동기 살인)으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 양형위원회의 양형 기준에 의하면 자수는 살인죄의 특별감경양형인자에 해당함에도 원심이 이를 반영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결국 항소심 법원은 A씨의 양형 부당 주장을 받아들여 A씨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원심은 이 사건을 제2유형이 아닌 더 중한 제3유형으로 봄과 동시에 유리한 특별양형인자는 배제함으로써 양형 기준상 권고형의 상한과 하한이 지나치게 높아졌다”면서 “양형 요소를 종합하면 원심의 형은 너무 무거워 부당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