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아내 김혜경씨의 ‘경기도 법인카드 사적 유용’ 의혹의 핵심인 전 경기도 5급 공무원 배모(45)씨의 구속영장이 31일 새벽 기각됐다. 경찰은 약 6개월 동안 수사를 진행했지만 중요 피의자의 신병 확보에 실패하고 수사를 마무리하게 됐다. 또 배씨의 ‘윗선’으로 지목된 김씨의 혐의 입증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경찰은 빠르면 이날 배씨를 검찰에 불구속 송치할 전망이다. 3월 대선 관련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의 공소시효(9월 9일)가 임박해 추가 수사나 구속영장 재청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경찰은 배씨와 법인카드 유용을 공모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씨도 함께 검찰로 넘길 방침이다. 검찰은 촉박한 기일 안에 수사기록을 검토해 기소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지난 24일 배씨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고, 검찰은 당일 법원에 영장을 청구했다. 배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업무상 배임과 공직선거법 위반이었다. 배씨는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로 재직할 당시인 2018년 7월부터 2021년 9월까지 약 3년 동안 경기도 총무과 별정직 5급 공무원으로 근무했다. 그러나 실질 업무는 김씨의 수행비서였고, 이 과정에서 경기도 법인카드로 음식 등을 구매해 김씨의 집에 전달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와 배씨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은 지난 1월 공익제보자인 전 경기도지사 비서실 7급 직원 A씨가 “작년 4~10월 성남과 수원의 백숙 전문점, 중식당, 초밥집 등 식당 7곳에서 11건을 개인카드로 결제한 뒤 구매한 음식을 김씨 자택으로 배달했다”고 폭로하면서 불거졌다. 경기도청 의무실에서 타인의 명의로 김씨의 약을 처방받고, 사적인 심부름도 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특히 당시 배씨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내역도 두루 공개했다.
지난 2월 국민의힘 등의 고발로 본격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4월 경기도청을 압수수색하는 등 강제수사에 나섰다. 또 배씨가 법인카드를 사용한 음식점 129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벌여 결제와 구매내역도 확보했다. 경찰은 배씨의 경기도 업무추진비 유용을 100건 이상, 2000만원으로 확인했다. 수사 과정에서 김씨의 법인카드 유용 행위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경기도 총무과 소속 공무원 2명도 업무상 배임 방조 혐의로 입건했다.
수원지법 김경록 영장전담판사는 배씨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현재까지 수집된 증거자료들에 비추어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할 필요성이 있고, 현 단계에서 구속의 필요성과 상당성이 충분히 소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배씨가 자신이 유용한 것으로 지목된 2000만원을 공탁하는 등 배임 혐의를 대체로 인정했고, 경찰이 자료를 충분히 확보해 증거인멸 우려도 적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그러나 경찰은 배씨와 김씨의 공모 부분에 대해서는 수사가 미흡한 상태로 종결했고, 기소와 공소유지 부담을 검찰로 떠넘겼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경찰이 배씨에게는 구속영장을 신청하면서, 실질적으로 이득을 얻은 김씨는 불구속 송치로 가닥을 잡은 것을 두고 법조계 일각에서는 “주범과 종범의 처분이 뒤바뀐 상황”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경찰은 배씨에 대해 영장을 신청하기 전날인 23일 김씨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약 5시간 동안 조사했다. 그러나 김씨는 배씨의 법인카드 유용을 지시하거나 묵인한 사실이 없다고 일관되게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 소환 조사 이후 이 대표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제가 부하 직원을 제대로 관리 못 하고 제 아내가 공무원에게 사적 도움을 받은 점은 국민께 다시 한번 깊이 사죄드린다”면서도 “아내가 법인카드를 쓰거나 부당 사용을 지시하지 않았다”고 거듭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