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강원 화천군 간동면 파로호 선착장. 40t급 관광 유람선 ‘평화누리호’에 오르자 출발을 알리는 기적과 함께 평화누리호가 부드럽게 물살을 헤치고 나아갔다. 선착장을 지나자 파로호에 숨어있던 아기자기한 섬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다람쥐 모양과 거북 모양 등 저마다 독특한 모습이었다. 햇살에 반짝이는 호수와 짙은 녹음이 한데 어우러져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지난 5일 강원 화천군 파로호에서 유람선 평화누리호가 물살을 가르며 달리고 있다. 오는 6월 정식 운항하는 평화누리호는 간동면 파로호 선착장부터 평화의 댐 선착장까지 23㎞ 구간을 오가게 된다. 평화누리호에선 다람쥐 섬 등을 비롯해 두류봉과 구봉산 등 파로호 주변 야산의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장련성 기자

파로호(破虜湖)는 1944년 화천댐을 건설하면서 생긴 인공 호수다. 6·25전쟁 때 중공군을 무찌른 것을 기념해 이승만 대통령이 오랑캐를 무찌른 호수란 뜻의 ‘파로호’라고 명명했다. 박종현 화천군 관광홍보 담당은 “담수량이 10억t이나 돼 ‘산속의 바다’라고도 부른다”고 했다.

파로호의 풍광에 빠져들 때쯤 평화의 댐 선착장에 도착했다. 1989년 지은 평화의 댐은 북한의 수공(水攻)에 대비해 만들었다. 평화의 댐 한쪽엔 세계 평화의 종과 비목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2009년 완성된 세계 평화의 종은 인류의 평화를 염원하기 위해 전 세계 분쟁 지역에서 보낸 총알과 탄피를 녹여 만들었다. 비목공원은 6·25전쟁 당시 산화한 무명용사를 기리는 곳이다. 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은 최민용(43)씨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분단의 아픔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여행이었다”고 했다.

◇사계절 관광지로 거듭나는 화천

강원 화천군이 사계절 관광지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오는 6월부터 간동면 파로호 선착장을 출발해 평화의 댐 선착장 구간을 오가는 ‘평화누리호’가 물살을 가른다. 또 백암산 정상을 오가는 총연장 2.12km의 케이블카도 6월부터 관광객을 맞는다. 백암산 케이블카는 국내 최북단 케이블카다. 민간인 통제 구역에 있으며, 남방 한계선과 불과 1km 남짓 떨어져 있다. 케이블카가 놓인 백암산은 1954년 이후 민간인 출입이 통제돼 원시림이 잘 보존돼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이동하며 멸종 위기 야생동물 1급인 산양 등을 만날 수 있다. 정상에선 금강산 댐 등 마음대로 오갈 수 없는 북녘 땅을 볼 수도 있다.

강원 화천군 백암산 케이블카가 산 정상으로 올라가고 있는 모습. /장련성 기자

화천군은 6·25전쟁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교암산 전투 등 당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특히 화천은 군사분계선이 맞닿은 특수성 때문에 전체 면적(909㎢)의 43%가량이 군사 보호 시설로 묶여 있어 도시 개발은 더뎠다. 2003년 화천은 지역의 청정함을 관광 자원으로 개발했다. 쪽배를 주제로 물에서 펼쳐지는 여름 축제인 ‘쪽배 축제’와 겨울 축제인 ‘산천어 축제’다. 두 축제는 첫해 관광객을 30여 만 명 끌어모았고, 지난 2020년까지 누적 2266만여 명을 기록하며 화천을 우리나라 대표 축제 도시로 성장시켰다.

하지만 코로나 여파로 두 축제는 2020년부터 취소됐다. 축제가 사라지며 화천군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화천군에 따르면 축제 취소로 매년 약 1000억원 이상 경제 효과와 약 3000명 고용 효과가 사라졌다. 화천군은 이런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사계절 체류형 관광이란 카드를 꺼내 들었고, 케이블카와 유람선 등 다양한 관광 콘텐츠를 개발했다.

파크 골프도 화천군의 새로운 관광산업이다. 파크 골프는 나무로 된 채와 공을 이용한 골프 놀이다. 화천군은 지난해 북한강변 일원 3만7544㎡ 부지에 18홀 규모의 산천어 파크 골프장을 조성했다. 하남면 용암리에서도 18홀 규모의 파크 골프장을 운영 중이다. 화천군은 올 상반기에도 북한강변 2만9840㎡ 부지에 18홀 규모 파크 골프장을 추가로 만든다. 지난해 7월부터 올 1월까지 4만5235명이 파크 골프장을 찾았으며, 이 중 66.8%가 외지인으로 분석됐다.

화천군은 화천댐 일원에 역사 탐방로도 조성 중이다. 6·25전쟁 당시 화천댐 발전량은 34만Kw로 국내 전체 발전량의 40%를 차지하는 국가 중요 시설이었다. 이 때문에 전쟁 당시 이곳을 사수하기 위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탐방로는 파로호 선착장부터 화천댐까지 4km 구간에 조성되며, 이곳에선 전쟁 중 발생한 탄흔(탄환을 맞은 자국) 등을 볼 수 있다. 수상 데크 길과 전망대, 야간 조명 등도 설치된다.

◇고속철도로 서울에서 화천까지 50분

오는 2027년 서울과 속초를 잇는 동서고속화철도가 개통되면 서울에서 화천까지 이동 시간은 50분으로 줄어든다. 지금은 자동차로 2시간 30분가량 걸린다. 특히 인천국제공항을 통한 외국인 관광객들의 유입도 기대할 수 있다. 또 화천역이 들어서는 간동면과 화천읍을 잇는 지방도 463호 확장 공사도 진행 중이다. 공사가 마무리되면 산천어 축제장과 파로호 등 지역 대표 관광지로 이동하는 시간이 크게 단축될 전망이다. 춘천~화천 국도 5호선 확장 공사도 진행돼 길이 넓어진다. 확장 공사가 완료되면 춘천에서 화천까지 20분 이내에 주파할 수 있다.

화천군은 코로나 이후 관광객을 불러들이기 위한 준비도 하고 있다. 체류형 관광을 이끌어 내기 위해 올 상반기 중 화천군에서 숙박하는 20명 이상 단체 관광객에게 1인당 1만원의 지역 상품권을 지급할 수 있도록 조례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또 여행사와 유튜버 등을 대상으로 지역의 주요 관광지를 소개하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최문순 화천군수는 “화천만의 독특한 관광 상품을 개발해 여름과 겨울뿐 아니라 1년 내내 관광객이 찾을 수 있는 곳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화천=정성원 기자